“매일이 지겹고 권태롭게 느껴지는 당신이 꼭 명심해야 할 한 가지”
설계도가 주어지지 않는 인생 위에 오늘 하루치의 벽돌을 쌓는다는 것
쇼펜하우어는 ‘건축’에 빗대어 삶을 이야기한다. 인생이란 설계도가 주어지지 않고 이루어지는 건축과 같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건축 현장의 노동자처럼, 자신이 얹는 벽돌이 건물의 어느 곳에 놓이게 될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설계도를 본 적도 없고, 전체의 윤곽에 대해 말해주는 이도 없다. 하지만 매일 돌을 들고, 시멘트를 바르고, 무너진 것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하루는 어떤 구조의 완성을 위해 소모된다.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자신 스스로도 모르는 어떤 의미를 감당하며 살아간다.
그러하기에 삶에서 가장 필요한 지식은 설계도 전체를 내려다보는 전지적 통찰이 아니라, ‘지금 손에 들린 벽돌을 어디에 내려놓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따라서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질문도 결국 ‘나는 오늘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삶의 진실은 지금 우리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어쩌면 위대한 삶이란, 전체를 꿰뚫는 완성된 사유가 아닌 한 조각의 진실을 버티며 그 자리에 머무르는 끈기를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순조로운 일상이 유지되는 것은 어쩌면 큰 목표를 향해서가 아니라 ‘꾸역꾸역’ 한 장의 벽돌을 쌓아 올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때로 인생은 어처구니없이 흘러가고, 기대는 늘 배반당한다. 하지만 해야 할 당장의 작은 일 하나를 차곡차곡 그리고 꾸역꾸역 쌓아나가는 그 과정 중에 무언가 이루어지고 있다. 삶은 그냥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쌓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하루하루와 주변 풍경 속에서 권태로움이 느껴질 때, 왜 내 삶에는 큰 목표나 성취가 없는지 회의감이 들 때, 그런 날들의 쌓임 속에서도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심지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순간조차도. 그리고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시간 속에서조차도.
“사는 게 고통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철학이다”
고통에서 통찰로, 욕망에서 해탈로,
시대를 앞서간 비관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전하는 삶의 본질
쇼펜하우어는 역사에 기록된 철학자 중 가장 문제적인 인물이다. 그는 인생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묻기보다 되도록 빨리, 그리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어떻게 ‘이 불합리한 현실의 굴레에서 사라질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살아생전 그의 철학은 외면과 냉대를 받았으나, 역설적으로 오늘날 그는 대중이 열광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당시 철학이 법, 윤리, 종교처럼 관념만을 인정하는 소모적 논쟁에 갇혀 있었던 반면,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실존’ 그 자체를 철학의 목적이자 궁극적 진리로 삼았기 때문이다. 동시대 철학자가 철학을 위한 철학을 고집할 때, 그는 인간의 ‘의지’와 ‘표상’이라는 내면의 실존적인 문제에 깊이 주목했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가 노년에 쓴 대표 저작 《여록과 보유(Parerga und Paralipomena)》 중 일부와 그의 철학적 단상을 엮은 것이다. 물론 그의 철학은 온전히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비관을 통해 오히려 삶과 세계를 더 진실하게 비춘다. 애초에 불행이나 고통은 사라지거나 없앨 수 있다고 말하지 않으며, 오히려 행복을 부정할 때 비로소 평정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적이며, 타인을 용서하지도 못하고, 타인 역시 나 자신을 결코 이해할 수 없으며, 우리 모두가 관계가 만들어낸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차갑지만 분명한 통찰을 제시한다.
그렇게 쇼펜하우어는 ‘태어난 것 자체가 이미 최초의 불행’이라고 단언하며, 고통 없는 삶의 기술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대신 그런 비극으로 가득한 생을 철학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시선의 깊이를 틔워주고, 멈춰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건넨다. 철학은 고통을 없애주지 않지만,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바꿔줄 수 있다. 바로 그 사실을 쇼펜하우어만큼 절실히 알았던 이는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