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뿌리 끝에서 만나리』는 뿌리를 찾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하나는 민족의 뿌리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뿌리이다. 이도형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 6. 25 때 불탄 옛집터와 마을 본향 경주 나정 박바위 등을 헤매고 다니었고 희연은 어머니 유골분을 고성 해금강 앞바다에 뿌린다. 함께한 이들은 이 여인의 슬픔은 우리 모두의 비극이라고 하며 통곡을 한다. 한국전쟁 후유의 편린이다.
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 분단의 골은 갈수록 더 깊어지고 심각하다. 민족이기를 포기하고 동포가 아니라고 하고 있다. 철조망 콘크리트로 담을 점점 높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내용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남과 북이 서로 거부반응이 없는 것이 있다. 쌀과 술이다. 그리고 단군이다. 단군사상은 뼈 속까지 피 속까지 일치한다. 생각이 같다. 이것은 기적에 가까운 민족의 자산이며 가능성이다.
단군은 아득한 과거이자 우리의 먼 미래이다. 단군을 뿌리 끝까지 추적하고 신화의 숲을 넘어 헤매고 다닌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군은 낡은 주머니 속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발을 딛고 있는 현실 이야기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기대의 지평이다. 통일은 지금 우리 민족 이 시대의 최대 과제이기 때문이다.
김치홍 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평론
이 소설에는 특별하게도, 필자가 만난 『환단고기』는 물론이고 그 외에 정사正史에서는 소외당해 온 『규원사화』 『단기고사』 등과 정사에서 인정하는 신라 때 박제상이 지은 『부도지』 고려 때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 등을 비롯한 무수한 역사책들이 깊이 있게 거론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관심의 표적에 놓이는 것은 47대에 이르는 단군들의 이름과 그 활약상이다. 중화 이데올로기를 떠받들던 고려나 조선 시대에도, 일제 강점기에도,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 민족의 굳건한 뿌리에 대해 실체적으로 설명하고 기록해 놓은 그 책들이 소외당해온 과정 또한 이 소설의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환상을 매개로 한 시공時空의 여행을 통해 ‘단군세기’의 시대며 그 실체적 강역을 답사하기도 하고, 또 오늘날 북한에서 주장하는 단군릉을 답사하기도 하면서 남북 통일의 명분을 ‘단군의 나라’로 대표되는 뿌리깊은 민족 동질성에서 확인시키고 있는 이 소설의 문학 작품으로서의 명분 또한 그만큼 확고한 것이다. 방대하고도 오랜 역사 답사 끝에 남과 북으로 갈린 사랑의 비극을 씻김을 통해 사랑의 화합으로 승화시키게 됨으로써 장장 원고지 삼천팔백장 가까운 이 커다란 장편소설이 통일을 향한 아주 근거 있는 정신적 좌표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단군 이야기만 나오면 맹목적 국수주으로 몰아붙이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단군을 내세우는 민족주의 주창자들 중에는 현실성 없는 한민족 절대주의자들이 없지 않고, 그 때문에 단군을 실체로서보다 오히려 신화 속의 존재로 부각시키는 결과가 빚어지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종교적 갈등까지 낳아서 사회 문제로 비화된 상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으려는 노력 자체를 부정해서는 곤란한 일이다. 이 소설에서 다루어지는 상당수의 역사책은 실제로 역사의 실체를 부여하고자 노력한 결과로 얻어진 산물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천하면서 1500년간이나 나라를 잘 다스리고는 신선이 되어 2000년을 더 살았다는 단군을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1대 단군에서 47대 단군으로 통치자를 이어오면서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천하고 있었던 우리의 나라, 단군의 나라를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이 좋은가. 그 어느 쪽도 사실이 아니어서 부정돼도 좋지만, 우리는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위해 부지런히 우리 시대의 참다운 역사를 세워나가는 한편으로 단군찾기로 대표되는 뿌리 찾기에 대해 더욱 더 구체적으로 실제적인 노력을 기울여 가야 할 것이다.
고집스러운 민족 절대주의도 근거 없는 민족적 비하론도 함께 반성하면서, 우리는 더 겸허해져야 한다. 우리의 ‘개천절 노래’는 더욱 어김없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불려져야 한다. 우리는 왜 여기 있고, 우리는 왜 다시 하나가 되어야만 하는가를 그 어떤 사실보다 더 명백하게 알려줄 것이 바로 우리의 뿌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동희의 역작은 국수주의자의 단군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뿌리에 대해 우리의 통일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해 줄 뜻깊은 단군 이야기이다.
박덕규 소설가 단국대 명예교수 평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