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마지막 여정에 오른 이육사에게
피와 살, 목소리를 입히다
『이육사 1943』은 생애 마지막 여정에 오른 이육사의 시선을 따라 그의 삶의 궤적을 되짚어가는 장편소설이다. 역사 속 위인으로 박제되어 굳게 닫혀 있던 그의 입에 목소리를 부여했다. 이육사의 단정하고 나직한 목소리는 독자의 귀에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의 노래를 들려줄 것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1943년은 이육사가 생애 마지막 여정에 나선 해이다. 그해 7월 체포되어 동대문경찰서에 구금되어 있던 이육사는 늦가을 북경으로 압송되었고, 다시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가 북경의 감옥에서 숨을 거둔 1944년 1월 16일은 음력으로는 아직 1943년이었으니, 1943년은 그가 인생이라는 여정의 끝에 다다른 해이기도 하다.
소설은 1943년 북경으로 가는 기차 안에 있는 이육사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그는 기차 안에서 지난 삶을 되돌아본다. 독자들이 보게 되는 것은 이육사가 보았을 차창 밖 풍경이 아니라 그가 이야기하는 지난 삶의 장면들이다. 이 책은 소설이기에 물론 그 장면들은 이육사 자신이 아니라 작가가 재구성한 것들이다. 하지만 완전한 허구나 완전한 상상은 아니다. 이육사 자신이 남긴 글과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구절들 사이의 행간, 행적들 사이의 공백은 상상으로 메웠다. 이육사문학관 상주 작가로 10개월을 보냈던 작가는 이육사문학관과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이육사의 자녀 이옥비의 도움을 받아, 치밀한 조사와 치열한 집필 끝에 이 소설을 완성해 냈다.
소년을 투사이자 시인으로 만들어 낸 시대
그 시대 속에서 새롭게 보는 이육사의 삶과 시
각 장의 제목은 이육사의 작품 제목이거나 그의 삶 속 주요 키워드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들이 모여 그의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한다. 이육사가 남긴 글 중 23편의 시와 한 편의 시조, 한 편의 한시, 한 편의 수필에 얽힌 이야기, 그 작품을 만들어 낸 행적들이 모여, 이육사의 마흔한 해 짧은 생을 재구성한다. 본문에 실린 이육사의 시구들은 그의 단정하고 굳은 마음 한 조각 한 조각을 한 구절 한 구절씩 전하고, 작가는 그 구절에 얽힌 뒷이야기들에 자신의 상상을 더해 독자에게 전한다.
이육사의 시를 만들어 낸 것은 이육사 개인의 감성과 예술적 재능만이 아니다. 그가 살아간 시대가 그에게 드리운 어둠으로 인해, 그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시를 썼다. 작가는 그의 개인사와 그를 둘러싼 시대의 흐름을 촘촘히 엮으면서 그의 삶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간 시대를 재구성한다. 평화롭던 어린 시절부터 조금씩 스며들던 시대의 어둠은, 일본 유학 시절 일본인들의 살기 등등한 시선에서 선명하게 드러나고, 이육사가 처음 감옥에 갇히던 순간부터 그의 삶을 침범하고 좀먹는다.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글을 쓰고 행동하고 투쟁한다. 낙동강에서 형제들과 고기잡이하길 좋아하던 소년 이원록이 그렇게 투사이자 시인 이육사가 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독자들은 그저 공부해야 할 수많은 것 중 하나였던 이육사의 시들을 이전과는 다르게 느끼게 될 것이다.
비 한 방울 나리지 않는 광야와 같던 시대,
홀로 노래의 씨앗을 뿌린 시인
소설 속 북경 가는 열차 안에서 이육사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일본 관동군의 군가에 치를 떤다. 일본뿐만 아니라 동맹국의 평화까지 지켜 주겠다고 노래하지만, 사실 그것은 약탈의 노래이자 야만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소설 곳곳에 자리를 잡고 소설의 뼈대가 된 이육사의 시들은 그에 맞서는 평화의 노래이자 희망의 노래다. 작가가 그리는 이육사는 단순히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비 한 방울 나리지 않는 광야와 같은 시대에 홀로 노래의 씨앗을 뿌린다. 이 소설을 읽으며 그 노래의 씨앗이 피워 낸 꽃의 찬란한 빛깔을 보고 아득한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