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난 키메라 영 님의 인생과 예술을 접하며 “나에게 있어 ‘기억의 성형’은 우울한 기억의 재해석, 삶의 통합적 치유, 그리고 새로운 삶의 시도에 대한 자기 암시이며, 스스로에게 주는 응원이다.”
- 키메라 영 -
키메라 영(김미영) 님과의 첫 만남은 2023년 7월 토요일 청평 청담헌에서 열리는 윤경식 건축회장님의 세미나 모임이었다. 덥고 습한 여름 토요일 점심 경, 30여 명이 잠실종합운동장 앞에서 청평 청담헌으로 가는 대형 대절버스를 탔고, 그날따라 길이 유난히 막혔다. 천천히 2시간여를 가던 버스는 목적지를 1/3 정도 남겨 놓고 급기야 엔진이 꺼져 버렸고, 처음 보는 30여 명은 에어컨도 안 나오는 버스 안에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모두가 망연자실한 그때 일행 중 여자 두 분이 나섰다.
한 분은 대체교통편을 구하려고 주최 측과 연락하며 동문서주 하였고, 화려한 옷과 멋진 패션 챙모자를 쓴 다른 한 분은, 사회를 보며 각자 자기소개와 함께 즐거운 진행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그날 그녀는 청담헌에서도 밝고 활달한 모습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려 보였다.
두 번째 만남은 한 달 정도 지난 후 그녀가 개인전으로 그림 전시 및 콘서트를 여는 자리였다. 그 날도 수준 높은 작품전시와 함께 작품설명, 클래식 노래 공연 등 종합 예술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다. 역시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멋진 분이라 생각했다. 그 후 송파구 의사회보에 본인의 인생과 작품을 소개하는 기고를 하며 인연이 이어져 왔다.
이번 자서전적 에세이를 쓴 글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어려움이나 사연 없는 인생이 있을까마는, 밝고 화려해 보이는 예술가의 인생이 이토록 처절한 고통으로 가득할 줄은 몰랐다. 어려서부터 20대까지는 부모를 모두 여의는 슬픔과 지독한 가난으로, 30대에는 똑똑하고 성실한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두 아들을 얻으며 행복을 찾는 듯 했으나, 교회성직자로 살아갈 결심을 한 남편을 따라 개척교회를 일구며 가난, 육아, 전도의 가시밭길을 이겨낸다. 이후 유전성 신장질환으로 인한 수차례의 수술 등 보통 인간의 몸과 마음이 겪을 수 있는 고통의 총량을 훨씬 초과한다. 신은 왜 이토록 가혹한 시련을 주시는 것일까?
그럼에도 그녀는 결코 굴하지 않았고, 40대 이후 본인의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고 문화예술교육사와 수채화 화가를 거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에 입학하여 정식으로 회화를 공부하며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나서게 된다. 여기까지 이르는 길은 실로 길고도 험난한 길을 따라가는, 고독하고 거룩한 순례자요 구도자의 길과 같다고 할 것이다.
키메라(chimera)의 라틴어 어원은 한 개체 내에 다른 성질(유전자)을 가진 두 가지 조직을 의미한다. 키메라 영의 인생도 하나님과 교회에 봉사하던 전반기의 인생과, 영혼의 목소리를 따라서 그림과 화가로서의 삶에 전념하는 후반기의 인생 두 가지가 혼재한다, 결핍과 고난의 인생에서 아름답게 피어난 연꽃 같은 화가로서의 남은 인생을 응원해 본다.(잠실 삼성안과 원장 김병진)
마치 구약성서의 〈욥기〉를 연상하게 하는 키메라 영 님의 글을 접하고 “아! 자기연민과 사랑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잃어버린 것, 내가 간절히 찾던 사랑, 그것은 진정 무엇일까? 내 뒤통수를 치듯 말했다. 그것은 공허로부터의 도피요. 나 자신의 그 무언가로부터의 도피이며, 내가 사랑하지 못한 그림자, 나의 어떤 모습으로부터의 도피였다고.”
- 키메라 영 -
나는 김미영 선생님을 수년전 윤경식 회장님의 가평 청담헌에서 만났다. 그런 후, 한참 세월이 흐른 뒤,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김 선생님께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자전적인 에세이를 모아 책을 출판할 예정이며, 추천사를 써 달라는 부탁이었다. 보내주신 에세이 제목만 보아도, 김 선생님은 흔하지 않은 인생의 골목길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분투하고 계시는 것이 분명했다. 제 글이 힘이 된다면, 무조건 쓰겠다고 약속해버렸다.
자신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김 선생님의 글은 마치 구약성서의 〈욥기〉를 연상하게 만든다. 자신을 삶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용기있는 자는 흔하지 않다. 김 선생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가만히 보고, 그 안에 슬픔과 기쁨, 좌절과 행복, 불운과 행운, 죽음과 삶이 중첩된 인생을 덤덤하게 써내려 갔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삶을 깊이 볼 용기가 없어, 가면을 쓴다. 그리고 세상에라는 가면무도회에 참석해, 가면 뒤에서 다른 인간들을 부러움, 시간, 질투로 바라본다.
김 선생님의 글은 용기있다. 맨 처음부터 자신의 오장육부까지 보여준다. 자신에게 던져진 우연한 운명을 제3자가 되어 표현한다. 인간이 자신을 저 멀리서, 저 높이서, 저 깊이서 볼수 있다면, 불행을 행복을 위한 발판으로, 행복을 불행을 준비하라는 경고로 여길 것이다.
김 선생님의 글은 너무 덤덤하여 읽는 사람을 당혹하게 만든다. 누가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자신의 삶에 대한 대담하고 자세한 표현들이 오히려, 그녀의 삶을 구원하여 빛나게 만든다. 읽다 보면, 내가 그녀와 같은 삶에 던져진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를 자꾸 떠오르게 만든다.
그녀는 이제 인생의 두 번째 산을 올라 가고 있다. 첫 번째 산이, 그녀가 선천적이며 고질적인 질병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수술이었다면, 두 번째 산은, 인생의 질곡에서 벗어나, 불행과 행복이 하나이며, 죽음은 삶의 다른 이름이란 사실을 깨닫기 시작할 때, 비로소 모습이 드러나는 삶이다. 이 산을 올라가기 위한 장비는 자기신뢰와 자기연민이다.
이 두 가지는 타인신뢰와 타인연민의 기반이 된다.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더욱 더 빛나는 두 번째 산을 보여주면 좋겠다. 아니, 첫 번째 산이 두 번째 산의 또 다른 이름이란 사실을 알려주면 좋겠다.(2025. 7. 7. 아침, 더코라대표. 작가 배철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