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토록 포근한 결핍에 관하여
『숭숭이와 나』는 크고 작은 결핍을 지닌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노소를 불문하고 결핍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니 이것은 오롯한 ‘아이들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세 편의 이야기는 아이들의 내밀하고 연약한 부분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내 독자에게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그뿐 아니라 각각의 작품 속 숨겨진 메시지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 내 안’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실마리 또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숭숭이와 나」, 나의 결핍 마주하기
진원이는 어릴 적 사고로 엄마를 잃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아기 때부터 함께 지낸 원숭이 인형 숭숭이는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특별한 애착의 대상이다. 하지만 동시에 숭숭이의 존재는 감추고 싶은 비밀이기도 해, 절친 태윤이와 다투게 되는 계기가 된다. 진원이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결핍을 똑바로 응시하고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한여름의 냉장고」, 지금 내 곁의 소중한 것 알기
가족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과정 속에서 혼자 남겨지는 시간이 많았던 여름이에게는 마음의 허기를 인스턴트 식품으로 채우는 버릇이 있다. 인스턴트 식품이라면 질색을 하는 새할머니와 에어컨 하나 없는 낡고 낯선 집에 남겨진 여름이는 짧은 가출을 감행한다. 어떻게 만났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엮인 울타리의 소중함과 포근함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짜릿한 카메라」, 다른 사람의 결핍까지 헤아리기
친구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즐거워하던 하진이는 타인의 아픔에는 무감해 보인다. “장난인데 왜 그래?”라는 말로 가볍게 상황을 피해 가는 하진이에게는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뜻밖의 상황에서 뜻밖의 오해에 휩싸인 하진이는 난생처음 타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경험을 한다.
■ 눈부신 성장의 순간을 포착하는 문학
숭숭이는 원래 숭숭이이기도 했고, 새로워진 숭숭이이기도 했다. 말끔해진 숭숭이의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다크했던 내 마음도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_ 본문 중에서
진원이와 태윤이의 다툼으로 팔이 찢어진 숭숭이는 인형 병원에서 봉합 수술을 거쳐 말끔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수술을 마친 숭숭이를 바라보는 진원이의 모습은 『숭숭이와 나』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독자의 모습과도 겹쳐 보인다. 작품 속 아이들 역시 숭숭이처럼 아픔을 겪고 상처를 봉합하는 과정을 거쳐 한층 단단하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숭숭이와 나」의 진원이는 일련의 사건으로 숭숭이가 없는 밤을 지내고 난 뒤, 시연이를 만나 늦은 사과를 전하고 태윤이에게도 감춰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 놓을 용기를 낸다. 진원이에게 숭숭이의 부재는 고통스럽지만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셈이다. 「한여름의 냉장고」 속 여름이도 할머니와 한바탕 싸운 뒤 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 낸 뒤에야 ‘여름이네’ 집으로 발걸음을 뗀다. 「짜릿한 카메라」의 하진이와 민준이는 한 친구의 진솔한 고백에 지난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고 달라지기로 결심한다.
아이들의 내일은 언뜻 보기에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함께한 독자라면 아이들이 슬픔과 괴로움, 분노와 미숙함을 거쳐 얼마나 성장했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성장통 뒤에는 반드시 성장이 있음을 이야기하며 저마다의 사정에 놓여 있을 독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 제16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단편 부문 대상 수상작
날카로운 시선이 빛나는 신예 작가 지윤경의 첫 단편집
『숭숭이와 나』는 제16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단편 부문 대상 수상작으로, 202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지켜보고 있다」가 당선되며 등단한 작가 지윤경의 첫 번째 책이다.
인형을 고쳐 주는 병원, 혈연을 벗어난 새로운 가족, 깜짝 카메라 등의 소재를 문학적으로 완성도 있게 풀어냈다. 익숙한 상황도 낯설게 만드는 독특한 시각이 매력적이었다.
또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으며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는 점에서 믿음이 갔다.
_심사평에서
작가는 익숙하고 보편적인 상황 속에서 무심히 지나칠 법한 순간 속에 깃든 아이들의 결핍과 흔들림, 그리고 섬세한 감정의 결을 포착해 이야기로 직조해 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공감이 가되, 또 한 발짝 물러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 내는 시선의 힘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심사위원 모두의 호평을 받았다. 오랜 시간 어린이 곁에서 애정을 가지고 그들을 지켜본 작가이기에 아이들을 향한 시선은 깊고도 따뜻할 수밖에 없다. 작가가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길 기대하며, 그 첫 번째 여정에 아낌없는 추천과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