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한인촌에서 엄마와 살고 있는 안드레이, 조선 이름 한용남은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만으로도 버겁다. 새벽부터 일어나 당근 밭을 일구고 난 후에는 양조장으로 출근해 박씨 아저씨의 일을 돕는다. 조선 노비였던 아버지는 용남이 어렸을 때 블라디보스토크 항에서 배에 물건을 싣는 일을 하다가 추락사했다. 끝까지 시신을 찾지 못했기에 어딘가에 살아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얼마 전부터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용남은 시간이 날 때마다 아버지가 남긴 세계 지도를 들여다본다. 언젠가는 배를 타고 먼 곳으로 가 드넓은 세상을 마음껏 구경하길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제삿날 밤 양조장 박씨 아저씨가 피살당한다. 양조장에서 일할 때 알게 된 페치카 아저씨(최재형)의 소개로 고기를 가공하는 공장으로 출근하게 된 용남은 그곳에서 박씨 아저씨의 친구였다는 이상설을 만난다. 그로부터 박씨 아저씨의 죽음이 조선 독립운동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상설은 용남과 용남의 어머니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이 작품은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아 네덜란드로 향한 ‘헤이그 특사단’을 소재로 한 팩션이다. 제목으로 쓰인 ‘73일’은 특사단이 조선을 떠나 본격적인 외교 활동을 끝낼 때까지 걸린 실제 임무 기간으로 1907년 4월 22일 이준 열사가 남대문역에서 부산행 열차를 탑승한 날로부터 3인의 특사단이 만국평화회의장 입장 거부를 최종 통보받은 7월 3일까지를 헤아린 숫자이다.
가상의 인물인 주인공 용남의 시선을 통해 러시아로 이주해 살아남았던 당시 한인들의 애환과 일본의 온갖 계략 속에서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헤이그로 향했던 특사단의 활약이 소설적 상상과 재구성을 통해 마지막까지 긴박하고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 조약(을사조약)은 무효입니다!“
광복 80주년, 2025년에 돌아보는
대한제국의 독립을 향한 사투, 그리고 외교 전쟁
우리의 임무가 실패로 끝났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황제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비록 내가 죽음을 당하더라도, 계속 일을 진행시켜라. 오백 년 동안 유지해 온 독립을 되찾고, 이천만 인민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_헤이그 특사단 인터뷰 중(『만국평화회의보(Courrier de la Conference)』, 1907. 7. 5.)
2025년 을사년인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는 해이다.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헌신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있었다. 헤이그 특사단 이준, 이상설, 이위종 열사도 그들 중 하나였다. 1907년 고종의 비밀 외교 사절단으로 헤이그에 간 이들은 일본의 계략으로 끝내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당시 세계의 언론인들과 외교관들에게 대한제국의 자주권을 호소하며 일본의 침략과 만행을 알렸다.
헤이그 특사를 소재로 한 문학, 비문학 저작들이 많지만 『73일의 비밀』은 조선 말기 수탈과 핍박을 피해 두만강을 건너 삶을 개척한 고려인과 그들이 끝까지 놓지 않은 민족 교육, 타지에서의 독립운동의 역사까지 폭넓게 담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또 부록으로 구성한 자료들도 눈길을 끈다. 헤이그 특사단의 이동 경로와 작품 속 역사 인물들에 대한 상세한 소개를 비롯하여 헤이그 특사단의 주요 연설문과 인터뷰 내용도 정리해 수록하였다. 특히 1907년 당시 일본의 유력 언론사인 마이니치 신문에 보도된 기사들을 처음으로 공개하였다. 헤이그 특사단과 관련된 이슈를 매일 실시간으로 타전한 일본의 특파원 타카이시 신고로의 기사문 이미지와 함께 내용을 번역 요약하였는데 당시 현장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 역사 교육 자료로도 활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