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설 】
「통영, 무한히 펼쳐진 동화적 형상화의 바다」
정영자 문학평론가 (한국문협·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고문)
고향은 사람을 기르고 사람은 고향을 빛낸다. 한려수도 통영은 300년 삼도수군통제영이 진지를 구축하고 이순신의 몸 바쳐 이룬 이순신 정신이 꽃피고 열매 맺은 호국의 성지이면서도 예술의 고향이다. 그냥 예술이 아닌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 가며 현대적 감각으로 창작되고 조율된 섬세하면서도 예술혼으로 이루어진 예술의 고향이다.
빼어나게 아름답고 깊은 지형적 자연 요소와 함께 다양한 예술의 흐름이 한결 멋과 맛을 이룬 곳이기에 통영은 예술가를 키우고 예술인들은 고향을 빛내고 있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 시조시인 강명호 시인의 창작 활동은 어쩌면 당위적이라 할만하다.
강명호 시인은 통영 출신으로 2017년에 《한맥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하였고, 2023년 《부산시조》로 등단하여 열심히 시조 창작에 빠져 있다. 시집 『동피랑에 바람이 분다』(2022)를 발간한 바 있고 다시 첫 시조집 『멸치, 꿈을 날다』(2025)를 발간한다.
그의 시조집은 고향 통영을 중심으로 바다, 향토성, 불교적 사유, 문화탐방, 존재론적 성찰, 동화 같은 유년의 복원과 이상향을 꿈꾸는 자의 푸르름이 역동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특히 3.1운동 이후 1926년 시조의 부흥 운동과 함께 작은 도시였던 통영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시조 동인지 《참새》와 고두동, 탁상수, 김상옥, 박재두, 서우승, 김보한 등의 시조시인들이 남긴 전통을 이어 갈 강명호 시조시인의 역할은 기대된다.
그의 시조는 밝고 따뜻하다. 그리고 맑고 훈훈하다. 시어 선택은 구체적인 생활언어이며 뜬구름 잡는 애매모호한 동사나 수식어의 나열이 아니다. 중언부언 따지지 않는 문체여서 더 깔끔하게 다가온다.
1. 통영, 꿈과 맛과 호국의 문학적 형상화
굴 요리, 꿀빵, 충무김밥, 도다리쑥국, 시락국, 복국, 멸치조림, 멸치구이, 건 멸치 등 통영의 별미는 많다. 통제영 300년의 지속이 다른 문화는 물론 음식문화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긴 세월의 전통 미식은 풍부하고 신선한 음식 재료로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 가운데도 통영 멸치는 서민과 부자들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음식이고 다양하게 활용되던 만백성이 좋아하는 어종이다
시인은 요리라는 거창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마른 멸치 상태로 그냥 먹는 보통의 사람들이 평범하게 즐기는 고추장 찍어 통째로 먹거나 “ 똥 떼고 머리 떼고 다글다글 볶아서” 안주로 먹는 맛의 절정을 시조의 짧은 시편에 담았다. 특히 여리고 작은 몸에 한 바다에서 놀았지만 “똥 떼고 머리 떼면 남는 게” 없이 앙상하고 더 작아지는데 “덩치 큰 대왕고래에게 시집가고 싶다”라는 자존심은 높아 꿈꾸는 자의 포부를 상징하며 다부진 결의를 보인다. 이미지를 통한 멸치의 상징성은 그래도 넓은 태평양 바다를 유영한 그 넓은 포부는 멸치의 비상으로 확대된다. 멸치가 꿈꾸는 세상은 시적 자아가 다지는 시인의 이상이면서 꿈꾸는 사람만이 가지는 이상 세계를 현실화하려는 노력과 의지의 결과이기도 하다.
멸치는 음식 재료 혹은 자체가 하나의 보조 음식 재료로서 역할이 있다. 꺾이지 않는 꿈의 설정은 이루고자 하는 도전적인 저돌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여리고 쪼매해도 태평양서 놀았는데
똥 떼고 머리 떼면 남는 게 뭐 있다고
차라리 고추장에 찍어 통째로 삼키던지
화끈한 땡추 장에 깐마늘 잔 파 넣고
똥 떼고 머리 떼고 다글다글 볶아서
해장술 깔딱 안주로 또 한 번 더 죽이네
아무리 그래 봤자 자존심이 있는데
똥 떼고 머리 떼고 뼈까지 발라내도
덩치 큰 대왕고래에게 시집가고 싶다고
- 「멸치, 꿈을 날다」 전문
이번 시조집의 표제작이다.
정형시의 기조를 유지하되 결코 그 틀 안에서 멈추고 갇히지 않는 유연한 시조 형식은 다양하고 세밀한 표현을 더욱 선명하게 하는 특성이 있다. 특히 고향의 특산물인 멸치를 객관적 상관물로 활용하여 작지만 큰 바다에서 놀았고 술안주에는 죽여주는 맛 자랑과 그래도 대왕고래에게 시집가겠다는 웅대한 꿈을 제시한다. 멸치의 꿈이 우리 모두의 꿈이요 자존심이 아닐까.
볼강스런 가스내가
엄벙한 총각 *중우에
애쑥의 여린 잎을
별일 없듯 붙여 놓네
맛깔난,
국 한 대접에
복닥대며 살자고
*중우: 바지의 통영 사투리
- 「도다리쑥국」 전문
도다리쑥국은 통영 앞바다 섬에서 해풍 맞고 자란 쑥과 살이 통통하게 오른 도다리를 넣고 담백하게 끓여내는 봄철의 별미다. 갓 잡아 올린 싱싱한 도다리와 바다향 가득 머금은 섬 쑥의 혼합은 바다와 땅의 합일이라는 조화와 최고의 궁합이다. 차가운 겨울을 이기고 돋아난 쑥의 귀환은 봄의 전령사이면서도 은근한 향이 약품처럼 귀하지만 통영인에게는 봄철이면 빠지지 않고 먹는 보양식이요 봄의 영접이기도 하다. 향기롭고 뒷맛이 단 특미는 처녀 총각의 은근한 로맨스와 댓귀로 어울린다.
특히 한시적으로 두어 달 봄날에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에 시기가 지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어린 쑥잎으로 정표를 보내는 귀여움까지 더한다. 도다리쑥국으로 은근한 프러포즈의 이심전심이 담긴 향토적이면서도 소담한 서사가 감칠맛 나게 형상화되고 있다. 음식의 이미지로 대신하는 해변의 풋사랑이 도다리쑥국으로 재현된다.
옴마야,
남의 줄에 빌붙어 삼시롱
숭시런 꼬라지에 물까지 칙칙 싸고
같잖고 넘사시럽아도
그 빳빳한
자존감
수많은
해적생물 떼 지어 괴롭혀도
뽐내며 건들건들 춤추는 댄서 있다
도도한
자부심 세운
카사노바의 그 본류
- 「카사노바 본류 - 미더덕」 전문
‘카사노바’라는 단어는 바람둥이, 호색가의 대명사처럼 사용된다. 평생 수십 명의 여자와 사랑을 나누었던 그는 호색가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삶과 자유를 사랑했고 타고난 방랑벽을 가지고 여행을 좋아하는 모험가이자, 40여 권의 저서를 남긴 저술가이기도 하다. ‘미더덕’을 호색한 카사노바에 비견한 시인의 날카로운 대입은 놀랍다. 진한 통영 사투리를 그대로 시어로 사용하면서 미더덕의 생태를 관능적으로 표현하여 자존심 강한 인간에 비유하고 있다.
‘옴마야’, ‘삼시롱(살면서)’, ‘숭시런 꼬라지(보기 흉한 모습)’, ‘같잖고 넘사시럽아도(아니꼽고 남 보기 좋지 않아도)’ 등의 시어는 발음이 세고 억양이 강한 경사도 사투리의 특징보다 부드럽고 익살스러우면서 성적 이미지가 강하게 나타난다. 미더덕은 우렁쉥이(멍게)에 비하여 얕은 바다에서 서식하며 로프나 조개껍데기에도 부착해서 갈색이나 검은색 띠는 길쭉한 주머니모양의 해양생물로 멍게보다 더 작고 단단하며 ‘바다의 인삼’이라고 할 정도로 영양가가 높다. 그래서 시인은 미더덕의 특성을 카사노바의 본류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은유와 상징은 대담하면서도 치밀하다.
바람을 짓이기며 물결이 치오른다
철첨에 독을 갈아 장대에 기를 꽂고
거북선 용두에 서서
나를 따르라 호령한다
만 냥을 가지고도 천 냥을 탐을 내다
뭍으로 도망가고 바다로 숨던 왜적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서슬 퍼런 그 현장
괭이잠 설치면서 어머니 안부 묻고
통곡의 흐느낌을 가슴에 묻어 둔 곳
죽음이 두렵지 않던
학익진의 피바다
- 「한산해전」 전문
한산해전의 승리로 왜적은 제해권을 빼앗기고 보급로를 잃게 된다. 한 편의 시로써 이순신 장군의 기상은 물론 죽음도 두렵지 않은 결기를 보여준 시조는 지나친 왜적의 탐욕은 물론 어머니에 대한 효심과 학익진의 전술까지 표현하여 호국과 지략의 이순신 장군의 정신 계승을 노래한다. 격침 또는 나포된 적선 59척과 6천~9천 명의 일본 수군의 수장된 한산해전의 승리를 담담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2. 밝고 따뜻한 동심의 근원
책보 매고 뛰어가면
달그락 달그라악
연필심 부러질까 조바심도 났지만
침 발라 꾹 눌러 써서
백 점 만점 받았지
숯검정 양손으로
통지표 받아들고
우리 아들 최고라며 온 동네 자랑하던
작아서 더 커 보이는
어머니를 닮았다
- 「몽당연필」 전문
유년의 추억에 나타난 몽당연필은 동시조 같은 느낌이다. 정형성을 바탕으로 강명호 시조시인의 시조는 철저하게 고전적 형식을 지키면서 책보 매고 뛰어가던 날의 연필심 부러질까 걱정하고 심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침 발라 눌러 글 쓰던 날의 동심을 재현하고 있다. 백 점 받아 오던 날, 일하느라 새까맣게 숯검정 된 양손으로 통지표 받아 들고 “우리 아들 최고”라고 자랑하던 날의 키 작은 어머니같이 더 크게 보인다는 몽당연필을 이미지화하고 있다.
어머니의 근면과 헌신이 종장의 역설적인 기법으로 더 역동적인 순간을 표현한다. 3장 6구 12음보, 45자 내외의 형식이 어김없이 맞아떨어지는 정형성을 주요시하고 있다. 시조는 엇시조와 사설시조 등의 장르 확대가 가능하지만 역시 시조의 근본 형식 틀을 지키면서 은유와 상징으로 사람과 사물을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며 압축하였기에 더 큰 감동의 전율이 확산할 수 있는 것이다.
좌우로 나누어서 미적분 풀어봐도
좋은 님 나쁜 놈을 가를 수가 없구나
때려야 바로 서는 넌
어디에서 살다 왔니
빨간색 파란색을 어르며 또 때리니
피눈물 흘리면서 더 때려 달라는데
맞아야 바로 서는 넌
어디에서 돌다 왔니
- 「팽이 돌다」 전문
때려야 바로 서고 맞아야 바로 서는 팽이의 특성을 우리들의 삶과 동일선상에서 사유하는 내용이다. 아이들의 놀이인 팽이 돌리기의 유희를 통하여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돌기 위하여 다시 더 때려달라는 팽이를 도무지 이 세상과는 별개 지대의 초월적 존재로서 형상화하여 시인은 혹독한 자기 연마에 돌입하며 허물어지지 않는 인내를 표현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교시적 기능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시인은 더 넓고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며 한 생의 가르침이 짧은 시조 한 수로 정리되고 있다.
3. 존재론적 성찰
꺽이지 않으려고 밟혀서 숨을 쉰다
찬 바람 등 굽혀서 자식 뜻 키우시니
복수초 금강초롱도 뒤따르며 자랑이다
봄볕이 가려주니 속 말은 묻어 두고
흔들리지 않으려고 땅을 보고 낮춘다
수줍은 웃음 뒤켠에 겨울 혼이 있었다
그늘진 삶 견디시며 황금꽃 내민 몸짓
동자승 눈동자의 노오란 꽃 연화보살
삼천 겁 결기로 서서 어머니로 피었다
- 「민들레」 전문
우수 경칩 지나면
봄바람도 사달 나서
낮달이 빠진 술잔
첨잔으로 보탠다
사는 게 다 그런 건데
흥얼흥얼 살자고
- 「낮술 한 잔」 일부
내공 있는 삶의 엄정함은 물론 존재론적인 성찰이 내재한 위의 시조들은 삶의 여유와 그동안의 세월 속에서 만들어진 시적 화자의 현재이다. ‘꺾이지 않으려고 밟혀서’ 숨을 쉬는 민들레의 이미지는 지혜로운 선택의 하나이었고 ‘흔들리지 않으려고 땅을 보고 낮춘’ 민들레의 생태적 특성은 세상 살아가기의 한 지표를 충분히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핍박한 환경을 견딘 민들레는 노란 꽃의 연화보살로서 삼천 겁의 결기로 피어난 어머니로 변환시키고 있다.
이처럼 단단한 이미지로서 존재를 드러내지만 「낮술 한 잔」에서는 “사는 게 다 그런 건데/ 흥얼흥얼 살자고” 풍류와 낭만을 압축하고 있다. 시조 문학의 전통을 이어 가되 보다 유연한 형식의 그릇에 충분히 담고 있는 절제되고 단단한 이미지의 구사는 현대적 감각을 잘 표현하고 있다.
4. 핏줄에 각인된 원형으로의 바다와 종교적 체험
찬물에 둘둘 말아 선 채로 뜬 밥 한술
오늘은 만선 하러 쪽배 타고 나서는데
손등을 할퀴는 바람
콧잔등이 벌겋다
바다가 기침한 날 운수가 대통한 날
아이들 옷 한 벌에 학용품도 한가득
밤새운 *황천 항해에
조상님께 빌고 빌어
만선기 높이 달고 사립문 빗장 연다
풍랑에 엉킨 밧줄 스멀스멀 풀리며
아버지 웃음소리에
흔들리는 서까래
*황천 항해 荒天 航海: 비바람이 몹시 부는 날의 항해
- 「아버지의 바다」 전문
통영이 고향인 강명호 시인은 태어나자마자 바다를 보고 자랐다. 바다가 시인에게는 놀이터이며 아버지의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새벽밥을 먹고 만선을 기대하며 출항하는 아버지의 어깨에 대가족의 생계와 아이들의 옷이며 학용품이 매달려 있었으니 얼마나 무거웠을까. 아버지의 바다가 만선의 기쁨을 알리는 날에는 온 가족이. 온 마을이 들썩였음을 시조를 통해 알 수 있다. 아니 얼마나 기뻤으면 대들보까지 들썩였을까. 시인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바다는 우주보다 더 큰 보물섬이었을 것이다. 이같이 유년의 기억은 조상 대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원형 체험으로 고향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만선의 기쁨으로 불러오고 있다.
부처님 미간 사이
그려 낸 붓 한 자루
삼천 겁 날줄 되어
노 보살로 탄생했나
꽃 지고
잎 피는 날에
나를 보듯 널 본다
- 「상사화」 전문
상사화相思花는 ‘꽃과 잎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꽃이 질 때 잎이 피고 잎이 질 때 꽃이 피어 결코 만나지 못하는 슬픈 인연을 상징한다. 불교에서 이 모습은 윤회輪廻를 떠올리게 한다. 무수한 생을 거듭 돌고 돌면서도 본질을 깨닫기 전에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참나(眞我, 불성)’와 같다.
부처님의 미간은 깨달음을 상징하는 자리이며 거기서 빛이 나와 중생을 비춘다고 한다. 종장에서 “꽃지고 잎 피는 날에 나를 보듯 널 본다”는 구절은 윤회의 수레바퀴 안에서 늘 엇갈리는 중생과 깨달음 혹은 사랑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상사화처럼 끝내 만나지 못하는 슬픈 인연이자 동시에 그 안에서 자비慈悲와 공감을 피워내는 모습을 시조로 표현하여 불자로서 부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중생의 이미지와 종교에 기대어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 시인은 상사화를 통해 결국 나(중생)와 너(부처, 혹은 깨달음, 혹은 다시 태어난 노 보살의 자아)를 동일시하여 불교에서 모든 존재가 서로 인연으로 얽혀 있음을 깨닫는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편들은 유년의 원형 체험과 종교에 기대고 있는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강명호 시인의 시조집 『멸치, 꿈을 날다』에 실린 시편들은 밝고 따뜻하며 광활한 바다를 닮아있다. 이 특성을 잘 살려서 바다를 닮은 깊고 넓은 시인의 길 걸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