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처럼 맑고 투명한 위로의 언어,
시인이자 수도자가 삶으로 길어 올린 사랑과 기도의 시편들
올여름, 눈처럼 맑고 투명한 언어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집 한 권이 우리 곁에 다시 도착했다. 『눈꽃 아가』는 이해인 수녀의 61년 기도 위에 피어난 영문시집이다. 1970년 등단 이후 2005년까지 펴낸 일곱 권의 시집 가운데 자연을 주제로 한 시 60편을 골라 엮어 그해 출간된 이 시집은, 2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금 독자 곁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눈꽃 아가』는 영문시집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 이해인 수녀의 시 세계를 국내를 넘어 세계 독자에게도 건넬 수 있는 다리로 확장하고자 한다. 시인이 오랜 수도 생활 속에서 써 내려간 시의 숨결과 기도의 결이 자연의 언어로 응축된 이 책은, 한 편의 시이자 한 권의 기도이며, 한 사람에게 조용히 건네는 마음의 편지이다.
시집은 ‘자연’, ‘사랑’, ‘고독’, ‘기도’라는 네 가지 주제로 나뉜다. 시인은 자연 속에서 삶을 성찰하고, 고요한 고독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며, 그 사랑을 기도로 승화시켜 왔다. 이는 단순한 분류가 아니라 이해인 시 세계의 본질을 구성하는 네 개의 축이다. 작은 풀꽃 하나, 가시 돋친 선인장, 겨울나무, 눈 내리는 풍경조차 그의 시 안에서는 삶을 품고, 신과 마주하는 창이 된다.
“뿌리 깊은 외로움을 견디어냈기에
더욱 높이 뻗어가는 눈부신 생명이여”
이해인 수녀의 시에는 유난히 나무와 꽃이 많이 등장한다. 이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친숙하게 마주할 수 있고, 사계절을 따라 변화하며 인간의 삶을 반추하게 하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외로움을 견디어냈기에 / 더욱 높이 뻗어가는 눈부신 생명이여”(「숲에서 쓰는 편지」)와 같은 구절은 자연 속 생명체를 통해 시인이 배운 성찰의 깊이를 보여준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민들레의 영토」에서는 “기도는 나의 음악 /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이라며, 기도와 사랑이 시의 출발점이자 본질임을 고백한다. 「석류꽃」에서는 “초록빛 잎새마다 불을 붙이며 꽃으로 타고 있네”라며 사랑의 찬란함을 노래하고, 「동백꽃이 질 때」에서는 “피 흘려도 / 사랑은 찬란한 것이라고” 말하며 사랑이 때로는 고통과 함께 온다는 진실을 정직하게 전한다.
낮은 자리에서 피어나는 고요한 기도
이 시집은 무엇보다 ‘기도의 시학’으로도 읽힌다. 고독 속에서 자라나는 성찰,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내면의 목소리,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이 기도처럼 흘러넘친다. 「선인장」에서는 “가장 긴 가시에 / 가장 화려한 꽃 한 송이 / 피워 물게 하셨습니다”라며 고통의 축복을 받아들이고, 「눈꽃 아가」에서는 “맑고 투명한 물이 되어 흐를까”라는 구절로 삶 전체를 사랑의 물줄기로 녹이고자 하는 시인의 간절한 기도가 담겨 있다.
수녀는 시인의 말에서 “『눈꽃 아가』는 그런 제 시의 결 한 자락을 담아 조심스레 꽃피운 책”이라며, 자연과 고독, 사랑과 기도 속에 숨은 은총의 빛을 담고자 애썼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 시집이 낯선 이들의 마음에도 잔잔한 울림을 전할 수 있기를, 그래서 새로운 시의 벗이 생길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인다.
시라는 창문을 통해 피워내는 사랑
자연은 인간에게 우주의 질서를 일깨워주는 거울이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 순환하는 존재임을 자각할 때 우리는 겸손과 정직함을 배우고, 초월적 위안을 얻게 된다. 이해인 수녀의 시는 이 진리를 결코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 작은 풀 한 포기, 나뭇잎 하나에 마음을 기울이며 낮고 조용하게 속삭인다.
그의 시를 읽는 이는 “아, 내가 사랑받는 사람이로구나” 하는 마음을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이는 시를 통해 독자와 삶을 나누고, 세상과 연대하고자 하는 수녀의 오랜 기도이자 실천이다.
“앞으로도 나는 시라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보고 이웃을 이해하고 신을 섬기며
일생을 헌신하는 한 송이의 민들레가 되리라.
내가 사는 민들레의 영토, 민들레의 바다에서
나는 늘 잠들면서도 깨어 있는 사랑의 시인, 사랑의 구도자가 되고 싶다.”
- 이해인 수녀, 『눈꽃 아가』 시인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