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빠름을 능력이라 부르고, 명패를 성공이라 말한다.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은 쉬이 지워지고, 느린 것들은 뒤처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구본결 시인은 그 반대편에서 시를 쓴다. 그는 이름 없는 들풀을 닮았다. 그 풀은 누군가의 눈에 들기 위해 서둘러 피어나지도 않고, 세상에 자취를 남기기 위해 스스로를 과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제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바람과 해와 비와 별빛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충만하게 살아간다.
「국화꽃 안부를 묻는다」는 이름 없는 풀처럼 살아가며, 다정한 시선으로 세상에 안부를 건네는 느림의 시학이자, 존재의 시학이다. 그 안부는 단순한 문안이 아니라, 존재가 존재를 살게 하는 방식이며, 사랑이 사랑을 기억하게 하는 문장이다.
구본결의 시는 급하지 않다. 그 말들은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줄 알며, 가난한 손끝으로 안부를 묻는다. 그 물음은 위로보다 깊고, 축복보다 단단하다. 그것은 존재가 존재에게 건네는 가장 오래된 위로이며, 사랑의 방식이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민달팽이와 풀, 열매와 무덤, 나무와 철새, 모두가 이름 없이 살아가며 서로를 살게 한다. 그들은 다만 거기 있을 뿐이지만, 거기 있음이야말로 살아 있는 증거이고, 사랑의 가장 낮은, 그러나 가장 깊은 자리다.
구본결 시집에 등장하는 자연의 존재들은 인간의 속도를 모른다. 그러나 그 느릿함 안에서 타자의 숨소리를 듣고, 바람과 별빛, 빗방울과 잎사귀의 말에 귀 기울인다. 느림은 세상과 화해하는 시간이다. 구본결 시인의 시는 그 화해의 시간을 언어로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