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목적지만을 향하느라
현재를 잊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는 종종 ‘어디까지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느라 ‘지금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놓치는 경우가 많다. 《여기저기》는 정해진 목표 없이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들이 얼마나 풍요롭고 찬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엄마 캐릭터는 아이가 어디에서 멈추든 그 순간을 충분히 살아보게 한다. 엄마는 “어디 가?”라는 아이의 질문에 뚜렷한 대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아이와 분수대 물을 맞으며 놀고, 풍선과 함께 춤을 추고, 아이스크림을 떨어트려 울고 있는 아이를 놀리기까지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는 현재 느끼는 감정을 충분히 즐기고 다스릴 수 있게 된다. 아이를 ‘지금 여기’에 머물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엄마의 모습은 여타의 작품들에서 쉽게 보지 못하는 양육자의 모습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빛나는 순간의 감각, 정해진 목표 없이도 충만할 수 있는 하루. 그 끝에 아이는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성장하게 된다.
비눗방울에서 바이킹까지!
연결된 장면 속 디테일을 찾는 재미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어 심통난 아이의 하루는 무채색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분수대에서부터 날아온 비눗방울이 ‘톡’ 터지는 순간 눈앞에 쨍한 여름이 펼쳐진다. 분수대에서 물을 맞으며 놀고, 물에 젖은 옷을 말리다가 과일 가게에 들르고, 과일 가게에서 산 수박을 먹으며 숲으로 향하고, 입가에 묻은 수박씨가 바이킹을 타며 날아가 버리는 등 아이의 경험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층층이 쌓이며 하나의 크고 선명한 추억이 된다. 분수대의 파란 물줄기는 시원하고, 숲의 초록은 청량하며, 과일은 알록달록하다. 하루의 끝, 아이는 여름의 다채로운 색이 섞인 멋진 노을을 마주하게 된다. 독자는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자신만의 멋진 하루를 떠올리거나, 혹은 앞으로의 멋진 하루를 기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