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서버〉 선정 가장 위대한 소설 100선
피터 박스올 선정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1001권의 책
인간 영혼의 심연을 해석한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사상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대표작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주인공, 친절하고 인정 많은 의사 헨리 지킬 박사는 금지된 과학 실험
을 통해 마침내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을 분리하는 약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자기 내면에
숨겨진 악한 자아 ‘에드워드 하이드’라는 또 다른 인격으로 변모한다. 하이드는 지킬과 달리 폭
력적이고 비열한 성향을 지닌 인물로, 점차 그 영향력을 키워간다. 지킬은 점차 통제력을 잃어
가는 자신의 이중적 삶을 끝내려 하지만 하이드의 존재는 점차 그를 잠식하고, 결국 끔찍한 범
죄와 파멸로 이어진다.
〈병 속의 악마〉에서 하와이에 살며 가난하지만 용감하고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청년 케아웨는
어느 날 소원을 이뤄주는 대가로 인간의 영혼을 요구하는 신비로운 병을 손에 넣는다. 그 병에
는 조건이 하나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그 병을 산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만 팔 수 있다.
병을 갖고 있는 한 어떤 소원도 이뤄주지만, 죽기 전에 누군가에게 병을 되팔지 못하면 지옥에
떨어진다. 병을 사고 되파는 과정을 둘러싼 윤리적 딜레마와 인간 욕망의 위험성을 다룬 이 작
품은, 환상과 도덕, 공포가 뒤섞인 스티븐슨 특유의 색채가 잘 드러난 명작이다.
인간 영혼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선과 악, 이성과 광기, 소망과 저주의 이중적 구조를 날카롭게
꿰뚫는 두 편의 걸작, 스티븐슨의 대표 노벨라를 함께 엮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이중인
격이라는 심리학적 개념을 문학적으로 구현한 최초의 작품으로, 단순한 공포 소설을 넘어 현대
심리 소설과 모더니즘 문학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병 속의 악마〉는 하와이 설화의 토대를 빌
려 이국적 환상과 기독교적 구원 의식을 절묘하게 결합한 우화이자 철학적 환상 소설이다.
“환상 문학의 예술에 관한 완성된 연구!”
무의식과 상상력의 힘으로
문학의 경계를 확장한 스티븐슨의 작품 세계
당대 대중을 매혹하면서도 마크 트웨인, 조지프 콘래드, 잭 런던 등 후대 문학에까지 지대한 영
향을 미치는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이름을 현대 독자에게까지 각인시킨 작품은 단연
《지킬 박사와 하이드》다. 이 작품은 1885년 말에 먼저 1실링짜리 문고판으로 나왔고, 대중의 열
렬한 호응 속에 이듬해 1월 정식 출간되었다.
영국의 일간지 〈타임스〉는 이 작품을 두고 “환상 문학의 예술에 관한 완성된 연구!”라는 열광적
인 서평을 실었고,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는 이 소설에 바탕을 둔 설교가 이뤄지기도 했다. 단 6
개월 만에 약 4만 부가 팔렸고, 스티븐슨은 훗날 “파산할 지경이었는데, 지킬 덕분에 살았다”라
며 회상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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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무엇이 대중을 그토록 매혹적으로 사로잡았던 것일까? 스티븐슨의 아내가 전한 일화
에서 스티븐슨 문학 창작의 출발점을 엿볼 수 있다. “어느 날 한밤중에 루이스가 공포에 찬 비
명을 지르는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깼다. 그가 악몽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를 깨
웠다. 루이스는 성을 내며 ‘왜 나를 깨우는 거요? 멋진 악령이 나오는 꿈을 꾸고 있었단 말이
야’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일화는 무의식 속 저변에서 솟구쳐 오른 영감과 상상력의 힘이 작품
의 기원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스티븐슨이 살던 시대에 위대한 심리학자는 학자가 아니라, 상상력이 뛰어난 작가였다. 도스토
옙스키, 디킨스, 호손, 멜빌, 포의 계보를 잇는 그는 펜이라는 도구와 상상력이라는 창조의 에너
지를 통해 삶에서 마주한 문제들을 문학적으로 직관하고, 내면의 불안을 서사로 승화시켰다. 입
센이 말했듯, 그는 “자신을 비판하기 위해 글을 썼다.” 중세 혹은 그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문학적 전통을 따라, 스티븐슨은 자신의 통찰을 교훈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녹여 훌륭
한 우화로 표현했다.
지배 계급의 위선과 제국주의의 이면을 꿰뚫으며
선과 악, 인간 존재의 균열을 탐색한
스티븐슨의 문학적 실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문학은 모험과 환상, 도덕성과 심리적 갈등이 얽힌 복합적 구조 위에
세워졌다. 특히 〈지킬 박사와 하이드〉와 〈병 속의 악마〉는 단순한 스릴러나 도덕적 우화를 넘
어, 빅토리아 시대 제국주의와 근대 시민사회가 숨기려 한 어두운 진실을 꿰뚫어 본 작품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선량하고 존경받는 의사인 지킬 박사가 비열한 하이드로 분열하는 과정
을 통해 당시 지배 계급이 내세운 도덕성과 품위 이면에 감춰진 위선, 억압된 욕망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허울에 불과한 도덕적 이상 아래 잠재된 폭력성과 일탈 욕망이 인간을 얼마나 쉽게
잠식하고 ‘괴물’로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병 속의 악마〉는 소원을 이뤄주는 대신 저주를 짊어지게 되는 신비스러운 병을 통해 인간의 욕
망과 구원의 역설을 다룬다. 병은 물질적 풍요를 안겨주지만 영혼을 위태롭게 하고, 계약과 거
래의 형식을 띤 이 구조는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착취의 논리와도 교묘하게 맞닿아 있다. 타자
의 세계에서 가져온 병이 주는 축복과 저주는 곧 서구의 지배 논리와 도덕적 자기기만의 은유로
도 볼 수 있다. 스티븐슨은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윤리적 선택과 맞부딪히는지를 드러내며, 문
명과 종교, 자본이 얽힌 복잡한 도덕적 구도를 탐색한다.
스티븐슨은 그의 작품을 통해 개인의 심리적 분열을 넘어, 빅토리아 시대 지배 계급의 위선, 즉
겉으로는 도덕적이고 품위 있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식민지 착취와 이중적 윤리를 내면화한 영국
사회의 집단적 분열을 고발한다. 또한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그로 인한 자기 파멸의 과
정을 통해 행복과 자기희생의 진정한 의미를 묻고 인간 존재와 사회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끈다.
이처럼 스티븐슨의 문학은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적 억압과 제국주의의 폭력성, 그리고 인간 내
면의 분열과 악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조명해 근대 문명의 이면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선구적 실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