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연 시인의 시집 『꽃으로 와서 바람으로 지다』는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언어화, 시간과 존재의 관계, 소멸과 영속성의 변증법, 인간과 자연의 동화, 생명의 순환적 세계관, 언어와 존재의 관계에 대한 탐구 등에 몰입한다. 내용 면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모색하면서 기법 면에서는 역설과 상징, 신체적 은유, 시간의 공간화, 언어적 실험 등이 허무주의를 관통하면서 펼쳐진다. 시인은 시집 『꽃으로 와서 바람으로 지다』에서 고독과 상실의 이미지를 통해 파괴와 황폐화 속에서도 감정의 잔해를 응시하는 심미적 태도를 보여준다. 『꽃으로 와서 바람으로 지다』는 이원론적 세계관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면서 이미지의 다층성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실존적 부재로 인한 상실의 미학을 역설적 구조와 은유 및 상징으로 풀어내고 있다.
『꽃으로 와서 바람으로 지다』는 실존적 고독과 생명의 덧없음을 자연 이미지와 결합해 표현하며, 특히 빛과 어둠의 이분법을 초월한 통합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부재와 상실의 미학’을 보여주는 것이 시집 『꽃으로 와서 바람으로 지다』의 특징이다. 시 「잔향」에서 “쓰러지지 않은 비석”, “백색의 무음”은 죽음 이후의 부재를 상징하며, 통화 버튼과 신호음은 실존적 고독을 강조한다. 「내 영혼의 뼈」에서는 “영혼의 뼈”라는 이미지로 상처와 기억이 쌓인 실존적 정체성을 탐구한다. 시 「꽃으로 와서 바람으로 지다」에서 “꽃잎은 스스로의 부고를 쓴다”라는 표현은 생명의 덧없음과 순환을 불교적 무상無常과 연결한다. 「슬픔은 가을에 피는 꽃처럼」에서는 “상실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선언하며, 고통과 새로움의 공존을 자연의 리듬으로 승화시킨다. 빛과 어둠의 변증법을 꾀하는 「빛과 어둠의 랩소디」는 “금단의 어둠”과 “공허가 반짝이는”의 대비를 통해 대립적 요소의 조화를 추구한다. 「백색의 무음」에서 “백색”은 절대적 부재이자 순수한 가능성을 상징하며 이로써 어둠과 빛의 이분법을 해체한다.
『꽃으로 와서 바람으로 지다』에 나타난 시적 기법과 특징은 역설과 상징이다. 역설적 이미지로서 “부서진 목소리의 파편들”(「잔향」)은 소리의 부재를 강조하며, “떨어지는 것보다 높이 떠오른다”(「꽃으로 와서 바람으로 지다」)라는 표현은 생명의 순환을 역설로 표현한 것이다. 자연물이 상징화된 예로는 꽃과 바람을 들 수 있다. 꽃은 덧없음과 재생(“슬픔의 꽃이 지고 나면 새로운 희망이”)을, 바람은 시간과 변화(“바람은 부재의 문법을 배운다”)를 상징하고 있다. 감각적 이미지와 공감각적 표현도 『꽃으로 와서 바람으로 지다』에서 보여주는 시적 기법이다. “수화기 너머로 바람이 스며든다”(「잔향」)라는 표현은 청각과 촉각의 중첩이다. “줄기는 허공의 지문을 새긴다”(「꽃으로 와서 바람으로 지다」)라는 구절은 시각적 이미지를 생명의 흔적으로 확장한 예이다. 또한 시어의 반복을 통하여 시적 리듬을 획득하는 것도 한 특징이다. 그 예로 「슬하에서 슬을 잡다」에서 “무릎”의 반복은 정체성의 굴레를 강조하려는 의도이며, 「빛과 어둠의 랩소디」의 단문 연속은 내적 갈등의 리듬을 형상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여연 시인이 시에서 추구하는 것은 상실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상처를 품은 채로도 강하게 나를 일으킨다”(「내 영혼의 뼈」)와 같이 고통을 정화하는 시적 화해를 도모하는 것이다. 또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것도 여연 시의 특징이다. 꽃, 바람, 비 등의 자연 요소를 통해 생명의 유한성과 영속성을 동시에 포착한다. “백색의 무음”처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을 이미지로 전달하여 언어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도 『꽃으로 와서 바람으로 지다』에서 보여주는 특징이다. “시는 상처를 꽃피우는 일이다.”라는 말은 여연 시인의 시적 신조를 압축하는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