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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르핀 골목

엔도르핀 골목

  • 김형순
  • |
  • 시와사람
  • |
  • 2025-06-30 출간
  • |
  • 144페이지
  • |
  • 125 X 200mm
  • |
  • ISBN 9788956657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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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 작품론

굴곡진 골목에서 올라오는 푸른 봄의 서정
- 김형순 시인의 『엔드로핀 골목』의 미학


강 대 선
(시인)


다양한 삶의 해석으로의 확장
김형순 『엔드로핀 골목』은 시인 특유의 익살맞은 표현과 삶의 해석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확장하고 있다. 시인은 “삼삼오오 뽕뽕다리 건너오던 아가씨들 눈에 선한데/ 흑백 영화처럼 추억도 희미해지는데/ 굴곡진 한 시대를 지나던 그리운 사람들은/ 어디에서 뽕뽕다리를 건너고 있을까”(「뽕뽕다리 연가」)에서 추억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이는 시인의 시가 ‘굴곡진 한 시대를 지나는 그리움’에 미학적 특성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어마다 옹골차게 들어찬 경험에서 올라오는 시적 토양은 시인이 뿌리내린 자연과 이웃, 그리고 연민과 그리움에 있음을 토로하고 있다. 그만큼 김형순 시인에게 ‘굴곡진 한 시대’는 연민에서 비롯된 사유와 감각을 넘어 그리움을 담은 심미적 언어와 이웃과 사회, 더불어 위대한 자연과 지구를 향한 마음이 시를 구축하고 있다. 특별히 김형순 시인은 일상의 삶을 통한 깊이 있는 성찰을 시적 이미지로 구현해나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형순 시인의 시는 일상의 경험, 어머니에 대한 서사, 자아의 각성, 시대를 바라보는 비판 등, 남다른 시의 문양을 그려내고 있다. 시인은 우리가 살아가는 구체적 일상을 시로 옮기면서도 깊은 사유와 감각, 그리고 웃음이 담긴 해학을 심층의 언어로 구현하고 있다. 시인은 ‘굴곡진 골목’으로 이미지화된 자신의 이미지를 거울에 비추듯 현상해 나가면서도 의미를 확장해 아포리즘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감각적인 묘사로 드러내기도 한다. 시의 곳곳에 드러난 시인의 의지는 현 상태를 응시하면서 미래로 나아가려는 희망의 전언이다. 따라서 시인의 시를 만나는 일은 경험의 형식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확장하는 특별한 일이다.

나를 응시함으로써 이루어내는 성찰적 의지
먼저 김형순 시인을 깊이 살펴볼 수 있는 시를 살펴보자. 자신을 보는 일은 거울을 보듯 성찰과 깨달음의 언어로 새롭게 구현하는 방식이다. 자신을 복원함과 동시에 일상에서는 알 수 없던 자아의 새로운 형상이 구현되기 때문이다.

나는 한 줌의 기력마저 시들어진 몸으로

흙더미 꽁꽁 언 땅에 뿌리를 박고 서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두 눈 감고

숨 멈춘 듯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내 안 깊숙한 곳에 있는 온기를 감싸고 있는 가시 손바닥

깡마른 손금 줄기로 인내의 시간이 흐른다

살아 숨 쉬는 일은 말라 부서지는 절망에도 무릎 꿇지 않는 것

나는 깡마른 몸으로 겨울 한복판에 서 있다

가지에 링거 꽂고 눈보라 치는 정월의 들판에 몸을 떨면서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것만 같은 자리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다

봄이 오면 나는 발가락부터 꼼지락거릴 것이다

한 줄기 빛으로 자물쇠로 잠가놓은 숨통 열고

엄마의 젖 줄기처럼 따사로운 공기를

폐 깊숙이 빨아들이며
초록 잎을 등불처럼 매달 것이다

나는 모든 꿈과 희망의 분신으로 곧고 정하게 서 있을 것이다
-「나목」 전문

나목을 ‘나’로 표현한 이 시는 시인이 살아온 삶을 비유로 표현한 뛰어난 시편이다. 나목裸木은 잎이 다 떨어져서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나무를 의미하지만 죽은 나무가 아니다. 다시 말해, 봄이 오면 다시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나무를 의미한다. 시인은 “나는 한 줌의 기력마저 시들어진 몸으로/ 흙더미 꽁꽁 언 땅에 뿌리를 박고 서 있다”고 말한다. 언 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왔듯이 시인의 삶이 그만큼 고되고 힘들었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두 눈을 감고/ 숨을 멈춘 듯 미동조차 하지 않는” 상태로 서 있는 나목이 시인과 겹쳐지는 이유는 시인의 삶이 ‘굴곡진 골목’이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안 깊숙한 곳에 있는 온기를 감싸고 있는 가시 손바닥”이 깊이 곳에 남아 있다. “깡마른 손금 줄기로 인내의 시간”은 시인이 선택한 길이다. ‘깊숙한 곳에 있는 온기’를 발견하는 일과 인내의 시간으로 견디는 일은 시인에게는 새로운 길을 향한 여정이다. 비록 지금은 희망조차 없는 듯 보이지만 온기 한 줌을 지니고 봄을 기다리는 나목의 시간은 시인의 자세를 선연하게 보여준다. “가지에 링거를 꽂고 눈보라 치는 정월의 들판에 몸을 떨면서/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것만 같은 자리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다”라고 말함으로써 탁월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링거를 맞고서 죽을 것만 같은 자리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의지는 이육사 시인의 의지를 생각나게 한다. “봄이 오면 나는 발가락부터 꼼지락거릴 것이다/ 한 줄기 빛으로 자물쇠로 잠가놓은 숨통을 열고/ 엄마의 젖 줄기처럼 따사로운 공기를/ 폐 깊숙이 빨아들이며 / 초록 잎을 등불처럼 받치어 들 것이다”라고 말한다. 희망과 기대 속에 시인이 말하는 가장 큰 숨통은 ‘엄마의 젖 줄기’다. 다시 말해 온기는 엄마의 젖 줄기로 이어지고 등불로 이어지는 이미지를 구축한다. 그러면서 시인은 자기 암시처럼 “나는 모든 꿈과 희망의 분신으로 곧고 정하게 서 있을 것이다”고 말한다. 새로운 삶의 자세를 새롭게 꿈꾸고 있는 이러한 의지는 “무릎 꿇고서 기도합니다. 당신은 세상에 메마른 나를 태우는 사랑입니다. 이 밤도 저는 불타고 있습니다. 성화를 밝히며 눈물을 태웁니다”(「성화」)에서도 드러난다. 이러한 절망이 희망으로 승화된 시편을 살펴보자.

꽁꽁 묶은 보자기에서 피어난 눈물 꽃

눈 감으면
저 어두운 벽을 돌아
수술대 향해 가는 네가 보인다

전광판 이름이 초조하게 지나가고
예고 없이 찾아온 죽음의 사자에
몸 떨었던 열아홉 살

나는 죄를 많이 지었나 보다

풀 물든 생의 끝자락에 매달려 바동거린다

죽음을 이기고 나에게 온 너

내 눈물과
네 눈물이
하나로 만나 빛나는
이 순간, 우리는

다이아!
- 「다이아」 전문

이 시는 수술실이라는 공간을 통해 새로운 ‘나’를 발견함과 동시에 죽음과 삶의 대비를 통해 삶의 희열과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눈 감으면/ 저 어두운 벽을 돌아/ 수술대를 향해 가는 네가 보인다”에서 ‘너’는 내가 아닌 상대를 지칭할 수도 있지만, ‘나’를 ‘너’라고 지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죽음의 사자에/ 몸을 떨었던 열아홉 살”을 회상하면서 시인은 “나는 죄를 많이 지었나 보다”라고 고백한다. 이러한 고백은 어머니의 심정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 열아홉이 되어 죄를 고백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풀물 든 생의 끝자락에 매달려 바동거리는” 너의 애탐을 나는 응시하고 있다. 너는 너이지만 너로만 끝나지 않고 나로 전이된다. 마침내 너는 “죽음을 이기고 나에게 온 너”가 되고 “내 눈물과/ 네 눈물이/ 하나로 만나 빛나는/ 이 순간, 우리는//다이아!”라고 말함으로써 너와 나는 마침내 하나로 만난다. 내가 봄을 만나듯 너를 만나는 일이고 내가 죽음을 이기고 봄을 만나는 일이 바로 ‘다이아’가 되는 일이다. 이처럼 놀라운 시적 확장과 상상을 보여준다.

이처럼 김형순 시인은 시련과 고통의 시간을 ‘다이아’로 아름답게 재현해 놓았다. 시는 어떤 순간을 특권화하는 것이라면, 김형순 시인은 ‘나목’과 ‘다이아’를 통해 자신의 깨달음을 예술로 승화시킴으로써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깊은 곳에 깃든 ‘온기’, 어머니
시는 서정이다. 서정은 시인의 원형질이며 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시인에게 드러나는 일관된 서정 가운데 한 부분이 어머니다. 김형순 시인은 자신의 시에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연민 의식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그리움은 애틋하고 은은하고 간절하게 느껴진다. 다음 작품을 먼저 읽어보자.
어머니는
참빗으로 반질반질 내 머리
빗고 또 빗고
나는 그게 좋아
거울 보며 놀았지
내 머리는
토끼처럼 순해졌다가
갈기처럼 솟았다가
삐삐 롱스타 말괄량이처럼
양 갈래로 따졌다가
빨간 머리 앤처럼 붉어지기도 했지
지금도 그때처럼
거울 보며 노는데
어머니는
어디로 가셨나
하늘에서 보고 계시나
참빗으로 빗겨주시듯
헝클어진 내 마음도
빗어 주시려나
- 「참빗」 전문

참빗은 어릴 적 어머니가 시인의 머리를 빗겨주셨던 빗이다. “빗고 또 빗고/ 나는 그게 좋아/ 거울 보며 놀았지”를 통해 시인은 행복했던 유년을 떠올린다. “내 머리는/ 토끼처럼 순해졌다가/ 갈기처럼 솟았다가/ 삐삐 롱스타 말괄량이처럼/ 양 갈래로 따졌다가/ 빨간 머리 앤처럼 붉어지기도 했”다를 통해 놀이로서의 참빗이 드러나 있다. 그 놀이가 즐거운 이유는 엄마와 함께였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이에게는 친구이자 우주였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어머니는/ 어디로 가셨나”를 통해 부재한 어머니를 드러낸다. 이제는 혼자 남은 나는 참빗과 함께 있어도 즐겁지 않다. 엄마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보고 계시나/ 참빗으로 빗겨주시듯/ 헝클어진 내 마음도/ 빗어 주시려나”를 통해 헝클어진 화자의 마음을 드러낸다. 이 헝클어진 마음이 연민이자 그리움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빼어난 시편을 한 편 더 살펴보자

엄마는
靑靑이고 싶어
그늘 한 점 없는 靑靑으로
남도의 靑에 안겨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고

나는
靑靑이 싫어
엄마 없는 청푸른 대지의 노래가 싫어
고목에 붙은 매미처럼 쓰리게 울지
- 「靑靑」 전문

시인은 “엄마는/ 靑靑이고 싶어/ 그늘 한 점 없는 靑靑으로/ 남도의 靑에 안겨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고”라고 말한다. 엄마의 죽음을 ‘靑靑’으로 표현한 부분이 낯설면서도 깊은 시적 울림을 준다. 그 죽음이 그늘 한 점 없는 청청이고, 남도의 청이 되어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표현은 남도 시의 절창이라고 할 만하다. 1연과 대조되어 나타난 “나는/ 靑靑이 싫어/ 엄마 없는 청푸른 대지의 노래가 싫어/ 고목에 붙은 매미처럼 쓰리게 울지”를 통해 화자의 점층 된 감정을 보여준다. 엄마와 달리 나는 청청이 싫다. 엄마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없는 대지의 노래도 싫다. 자신의 쓰린 슬픔으로 고목에 붙어 우는 매미로 표현한 이 구절은 비유를 통해 형상화한 빼어난 절창이다.

김형순 시인의 그리움은 어머니를 찾는 작업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시인의 시는 다양한 상상력과 만나게 된다. 이러한 상상의 확장으로 기후 위기에 처한 지구를 어머니로 비유해 쓴 시를 살펴보자

퍼붓는다

옹벽이 터졌다는 뉴스에 잠을 못 이룬다

도로는 황토물에 잠기고

양동이를 들고 나올 틈도 없이 집이 잠긴다

구조대의 손길도 막아 버린다
천둥 번개가 인간들에게 경고를 날린다

어머니인 지구를

헛된 욕심으로 파괴하지 말라고

화난 짐승처럼 밤새 으르렁댄다
- 「한여름의 특보」 전문

한여름에 비가 퍼붓는다. 시인은 옹벽이 터졌다는 뉴스에 잠 못 이룬다. 도로는 황토물에 잠기고 집이 잠긴다. 기후 위기, 천둥 번개가 인간들에게 경고를 날린다. 이 경고를 날리는 주체는 “어머니인 지구”이다. 자식에게 따끔한 훈계를 하듯 “헛된 욕심”으로 파괴하지 말라고 “화난 짐승처럼 밤새 으르렁대”는 지구는 어머니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

이웃을 향한 연민의 시선
다음으로 김형순 시인의 시는 이웃과 함께 하는 넉넉한 시적 성숙으로 발효된다. 이러한 이웃과의 결속은 사유와 감각의 예민성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시인의 인생론이 오롯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때 시인은 자연스럽게 상황을 보여주면서도 독자의 가슴에 가닿는 공감과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남대문 시장, 한 귀퉁이에 자리를 펴고 앉는다

주물 사업에 실패한 강 여사,

용달차에 황금 양은 냄비 주전자 다라이 압력밥솥 따위를 싣고 와 좌판을 벌인다

결혼할 때 가져온 패물들, 쌈지 목걸이, 돌 반지, 털어 금은방에 간 것은 지난달

성질머리 고약한 바람의 발로 차대자 노랑 냄비가 날아간다

허겁지겁 잡아 오면 다시 날아가는 노랑 주전자

강 여사의 시린 손이 눈물을 잡고 있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는 반품이 되려나

세 살배기 아기의 웃음이 강 여사의 눈물을 훔친다

- 「노점상 강 여사」 전문

남대문 시장, 한 귀퉁이에 자리를 펴고 앉은 강 여사에게 화자의 시선이 머무른다. 강 여사는 “용달차에 황금 양은 냄비 주전자 다라이 압력밥솥 따위를 싣고 와 좌판을 벌인다/ 결혼할 때 가져온 패물들, 쌈지 목걸이, 돌 반지, 털어 금은방에 간 것은 지난달”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상황 제시는 강 여사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강 여사를 괴롭히는 것은 “성질머리 고약한 바람”이다. 노점이다 보니 바람에 “노랑 냄비”가 날아가고 그 냄비를 잡기 위해 강 여사도 같이 날아간다. “강 여사의 시린 손이 눈물을 잡고 있다”는 표현은 역발상을 통해 강 여사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는 반품이 되려나”라고 묻는 강 여사. “세 살배기 아기의 웃음이 강 여사의 눈물을 훔친다”를 통해 비장미를 더 심화시킨다. ‘여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한때는 여사님 소리를 들었을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야자수 열매가 유혹하는 대낮

마차가 사원을 빠져나가는 귀퉁이에 꼬마 아이들이 모여 있다

오색 팔찌를
팔에 끼고
마른 아이들이 검은손을 내민다

1달러! 1달러!

다른 아이들과 멀어져 혼자 달려오는 아이가 한국어로 외친다
저만 하나도 못 팔았어요

1달러! 1달러!

짧은 곱슬머리 그 아이

먼지 속으로
그 아이 사라질 동안

마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 「1달러」 전문

시인은 “1달러, 1달러”를 외치는 아이들에게 연민을 드러낸다. “저만 하나도 못 팔았어요” 어눌한 한국어로 외치는 아이를 통해 “짧은 곱슬 머리 그 아이”를 바라보는 애잔한 눈물을 통해 ‘1달러’가 지닌 비정한 삶을 고발하고 있다. “마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를 통해 아이들을 남겨놓고 떠나는 마차가 다름 아닌 비정한 세상의 모습이 아니냐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시인은 따뜻한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그 안에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역동적인 삶의 무늬
나아가 김형순 시인은 삶에 대한 해학을 시에 풀어놓는다는 점에서 독특한 발화의 지점을 지닌다. 가장 돋보이는 고갱이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따뜻하면서도 활달한 사유와 상상은 독자들에게 삶을 넉넉하게 치유하는 힘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형순 시인의 역동적 기운과 해학을 품고 있는 시편을 살펴보자.

시방, 딸내미 효도 덕으로 충북 영동 포도 축제에 부부 동반 기차여행을 간당께. 아이고 말도 말어. 송정역 무궁화호를 기다리는디, 괜시리 고딩 수학 여행 맹키로 가심이 설레발친당께. 포도시 진정시키는디 아, 글씨 고딩 때 내가 좋아했던 국어 선상님과 똑 닮은 선상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것어. 심장이 뚝 떨어지는 줄 알았당께. 달려가서 말이라도 한 자리 걸치고 싶었는디 이 붉어진 마음을 낭군님한테 들킬까 봐 포도시 참았당께. 생각하면 말이여, 포도시 세상을 살아온 것만 같어야. 가고 잡아도, 붙들고 싶어도, 영감하고 붙어서 포도시 살다 보니 영감도 나도 항꾸네 물드는 갑서. 영감도 나하고 포도시 사는 건지도 모르잖여. 설레발치는 가심을 붙들고 포도시 기차를 탔당께. 그려 포도시.
- 「포도시」 전문

충북 영동 포도 축제에 남편과 함께 가는 상황인데 시인이 구사하는 남도 사투리가 가관이다. “시방, 딸내미 효도 덕으로 충북 영동 포도 축제에 부부 동반 기차여행을 간당께. 아이고 말도 말어. 송정역 무궁화호를 기다리는디, 괜시리 고딩 수학 여행 맹키로 가심이 설레발친당께. 포도시 진정시키”고 있다. 그러니까. ‘포도시’는 ‘겨우’ 진정시키고 있다는 의미로 그만큼 설렌다는 의미인데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아, 글씨 고딩 때 내가 좋아했던 국어 선상님과 똑 닮은 선상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것어. 심장이 뚝 떨어지는 줄 알았당께”로 고등학교 수학여행과 좋아했던 ‘국어 선상님’을 연결한다. “달려가서 말이라도 한 자리 걸치고 싶었는디 이 붉어진 마음을 영감한테 들킬까 봐 포도시 참았당께.”를 통해 ‘붉어진 마음’이 어디에서 왔는지 드러낸다. 여기에서 시가 끝났다면 시적 울림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시인은 여기에 살짝 인생을 끼워 넣는다. “생각하면 말이여, 포도시 세상을 살아온 것만 같어야. 가고 잡아도, 붙들고 싶어도, 영감하고 붙어 포도시 살다 보니 영감도 나도 항꾸네 물드는 갑서. 영감도 나하고 포도시 사는 건지도 모르잖여. 설레발치는 가심을 붙들고 포도시 기차를 탔당께. 그려 포도시.”를 통해 인생을 산다는 일이 ‘포도시’ 부여잡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 어떻게 서로 기대로 살 수 있을까. ‘포도시’는 인생을 대하는 시인의 자세를 드러내면서 해학을 선사한다. 우리도 포도시, 포도시, 이 하루를 건너는 것은 아닐까.

발산마을과 임동을 잇는 길

철판에 구멍이 숭숭 뚫린 뽕뽕다리였지

조약돌 감는 실개천이 흐르는 그 위를 방직공장 오가는 아가씨들이 조심조심 건넜지
구멍이 숭숭 뚫려 처음 건너가는 사람들은 발 디디기가 무서웠지

균형 틀어지면 삐거덕 쇳소리 들려오고 먼저 지나가는 발걸음이 철판 위에서 출렁였지

행여나 빠질세라 친구 붙들고 웃음 반 울음 반

뾰족 신발 벗고 건너던 아가씨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발산마을 골목집 달방 얻어 자취하던 방직공장 아가씨는 부모님 그리워 날마다 울었다지

그 많던 방직공장 아가씨들은 모두 어디로 건너갔을까

실타래 감는 소리 지금도 들려오는데

끊어진 실을 교체하며 이어가는 빠른 손놀림처럼

끊어진 다리를 다시 이어볼 수 없을까

삼삼오오 뽕뽕다리 건너오던 아가씨들 눈에 선한데

흑백 영화처럼 추억도 희미해지는데

굴곡진 한 시대를 지나던 그리운 사람들은

어디에서 뽕뽕다리를 건너가고 있을까
- 「뽕뽕다리 연가」 전문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은 다리처럼 놓여 있다. 시인은 “발산 마을과 임동을 잇는 길”에 놓인 뽕뽕다리를 시의 소재로 삼았다. 이 다리를 “방직공장 오가는 아가씨들이 조심조심” 건넌다. 조금만 잘못 디뎌도 구두의 굽이 빠져 중심을 잃기 십상이다. “지나가는 발걸음이 철판 위에서 출렁”이면 무서워서 “친구 붙들고 웃음 반 울음 반”하던 다리. 그 다리의 추억이 삼삼하다. 시인은 방직공장 아가씨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리워 날마다 울었”던 아가씨들은 이제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실타래 감는 소리 지금도 들려오는데/ 끊어진 실을 교체하며 이어가는 빠른 손놀림처럼/ 끊어진 다리를 다시 이어볼 수 없을까”하고 그리움을 드러낸다. ‘끊어진 다리’를 ‘잇는 일’은 그리움을 잇는 일이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굴곡진 골목’은 “굴곡진 한 시대를 지나던 그리운 사람들은 어디에서 뽕뽕다리를 건너가고 있을까”를 통해 연민과 연대를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김형순 시인은 자신이 경험한 기억에 의미를 부여함으로 독자들과 공감의 폭을 넓히고 있다. 당시 힘들게 살았던 방직공장 아가씨들이 겪어온 고통의 굴곡을 재현하면서 그 안에 흐르는 따뜻한 연민을 노래한다.

나를 새롭게 인식하는 바라봄
시간은 흐르고 나는 변하기 마련이다. 살아가면서 나는 정말 나일까, 하고 물음을 던지게 된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그 자체로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주관적인 흐름이 작용한다. 시인의 시는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구체화하고 있다.

못난 인형을 바다로 던져버렸다
두려운 삶의 현장에
물결이 출렁이고
중심을 잡으려고 몸부림쳤던 못난 인형은
바다 한가운데서 도달해
소녀의 노래를 부르며
온기를 느꼈다
태풍 불어
숨통 쥐어짜며
파도가 절벽 칠 때
허우적거리며 변덕으로 들끓는 것들을 피해
세상을 하직하고 싶었으나
물결은 다시 잠잠해져
못난 인형을 다독였다
마음의 물결을 따라 다시 바다로 나간다
희열과 파멸의 바다에서
못난 김형순은 춤을 추고 노래한다
생의 바다를
한바탕 휘저어볼 판이다
살아 있음으로
못난 인형이 일렁인다
- 「평전」 전문

제목이 ‘평전’이다. 시인이 자화상을 그리듯 자신을 그려내고 있는데 첫 행부터 심상찮다. “못난 인형을 바다로 던져버렸다”라고 말한다. 왜 던져버렸을까. 시인은 뒷이야기를 쏟아낸다. “태풍 불어/ 숨통 쥐어짜며/ 파도가 절벽 칠 때/ 허우적거리며 변덕으로 들끓는 것들을 피해/ 세상을 하직하고 싶었”던 못난 인형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못난 인형을 바다에 던지는 일은 생을 하직하겠다는 못난 생각을 버리는 일이다. 이제 인형은 “마음의 물결을 따라 다시 바다로 나간다/ 희열과 파멸의 바다에서/ 못난 인형은 춤을 추고 노래”하는 인형으로 삶의 자세가 바뀐다. 이제 남은 생으로 “생의 바다를/ 한바탕 휘저어볼 판이다”라고 말한다. 생의 의지와 활력으로 제2, 제3의 인생을 꿈꾸고 있다. “살아 있음으로/ 못난 인형이 일렁”이는 바다. 그 바다에서 시인은 삶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김형순 시인은 깊이 탐색하되 탐색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삶의 자세로 나아간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세상을 하직’하고 싶었을까, 하는 대목에서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지금은 쉽게 말할 수 있어도 그 당시에는 죽도록 힘들었을 시인의 얼굴을 만나기 때문이다. 자아를 탐색하는 시인의 노력은 독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공감의 지점을 확보하고 있다.

굴곡진 삶을 꽃피우는 시적 통찰
지금까지 시를 통해 김형순 시인의 시는 경험을 통해 길어 올린 시간을 삶의 성찰과 새로운 삶의 태도로 이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인이 노래하는 것은 한결같이 그리움과 연민, 그리고 절망하지 않는 삶의 자세다. 이러한 자세는 다양한 시적 상상으로 자라나 완성도 높은 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평의 안개 짙은 개울가

새벽길을 걷는다

설레고 들뜬 벚꽃이 품에 안겨온다

산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인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린다

자작나무 숲에서는 한 치 앞을 못 보고 넘어지기도 했지

개미 돌부리에 넘어져 무릎 깨지기도 했지

진홍 피가 질퍽하게 가슴팍 파고들 때도 있었지

그래도 살만하다고 중얼거린다
붉은 겹꽃이 되어 꽃꽂이가 되듯이 좋은 날도 왔지

시가 있기에, 울먹이던 거친 바닥에서 일어섰지

벚꽃이 길을 하얗게 물들인다

꽃길이었다
- 「빨간 양산」 전문

이러한 시적 승화의 과정을 통해 김형순 시인은 이제 아포리즘을 얻게 된 모양이다. “그래도 살만해”라고 중얼거리는 시인의 독백은 인생론적 가치가 부여되어 있다. 이 세상을 하직할 만큼 힘들고 어려운 고비가 곳곳에 있었다. 그러나 살아보니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독백은 이 세상이 혼자만의 고립된 섬이 아니라 서로 마음 나누는 연대의 장이며 끊임없이 소통하는 공간이자 시간이라는 새로운 인식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진홍 피가 질퍽하게 가슴팍 파고들 때도 있었지만” 그 시간을 견디면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 아니던가. 그래도, 그래도, 하면서 한 생이 건너가지 않던가. 김형순 시인의 서정은 은은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시인 특유의 익살맞은 표현과 삶의 해석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확장하고 있는 이번 『엔드로핀 골목』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다이아
엔도르핀 골목
나목
하얀 집
성화
송정 바다에서
초행길
삼동교 다리
봄날 상무공원 벤치 옆으로
포도시
할미꽃과 개나리 공주
석류가 열린 빈집에서
광안리 바다에서
로밍콜
낙서 공화국
노을의 강
버드세이버, 비둘기


제2부

노점상 강 여사
한라산
수국 닮은 언니의 숨결
닭장 속의 여자들
연둣빛 약속
생강
문화전당 카페에서
1달러
시대 유감
참빗
만나지 말았어야 할 인연은 없다
평전
김장 배추의 기분
빗자루
미싱 밟는 소리
서울발 노루발을 돌리며
아버지
고비 사막을 건너는 낙타


제3부

한여름의 특보
말랑한 가슴
뽕뽕다리 연가
횃댓보 숨바꼭질
靑靑
꼬부랑 초능력자
사월의 물기
한쪽 날개를 남겨두고
화려한 외출
초록 개울가
엄니가 불어와요
사회복지사 꽃순이
자귀나무꽃
하얀 풍경
사거리 반점
구순의 완두콩
가을 호수는 데칼코마니
하얀 거짓말


제4부

창가에서
돌아온 꿈의 다리
망부석
눈 속에 핀 우산
등불
엄마의 빈방
소녀를 낳는 집
초당 캠퍼스에서
민주주의
청포도 송이
그날의 기억은 현재형이다
바다의 눈물
빨간 양산
위대한 건축학
붉은 입들
소문난 감나무집
초여름의 식탁
피고 진 꽃도 꽃이다


작품론
굴곡진 골목에서 올라오는 푸른 봄의 서정 / 강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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