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에서 시작된 글쓰기, 삶의 경험과 감각에 뿌리내린 언어들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의 고통에 예민한 시인이 포착한 세상
박정숙 시인은 소위 말하는 ‘제도권 문학’에 속하는 작가가 아니다. 그 스스로 “시를 공부한 적도 없고, 시 쓰는 형식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형식과 자격을 갖추어야 시를 쓸 수 있고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시를 읽을 때 우리는 자주 그 ‘말의 형식’에 주목한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것은 ‘누가 말하고 있느냐’이다(윤지영, 해설).”
박정숙 시인은 장애인 야학과 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자신의 장애 정체성을 정립하고, 그 경험과 감각 속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내 시 세계를 구축했다. 『통증일기』에는 “사회가 부정적으로 낙인찍은 정체성을 자기 언어로 명명함으로써 오히려 그 낙인의 구조에 저항하고 스스로를 드러(윤지영, 해설)”내는 시들이 눈에 띈다.
“누군가 / 병신이라 내친다 한들 / 기어오를 오기 가진 것이 / 너 말고 또 있으랴” _「다리에게」
“벗어나지 못해 죽어가는 장애, 나다 / 환장할 세상 왜 태어났을까 / 이유도 모른 채 왜 살고 있을까 // 빌어먹을, 혐오로 가득 찬 개 같은 세상” _「개 같은 세상」
또한 그의 시는 노골적인 혐오와 차별만큼이나 장애인을 힘들게 하고 그들을 교묘하게 배제하는 ‘극복 서사’의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비장애인 중심주의의 모순과 사회 환경, 법, 제도의 불공평함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본질로 직진하는 단순하고 단단한 언어들이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어우러져 박정숙 시인의 고유한 시 세계를 보여준다.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 체념하거나 포기하거나 / 인정하거나 최면을 걸거나 / 순간순간 참는다 // 사람들이 오해하는 건 / 뭔가를 해야만 대단하고 / 웃어야 천사 같고 / 교회 잘 다녀야 / 복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 극복이 아니다 / 언제나 주어진 하루하루는 / 투쟁일 뿐이다” _「장애인」
“장애를 비관하지 않는다 / 장애인을 배제해 버린 / 환경과 법, 제도를 비관한다” _「평등」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의 고통에 예민한 시인의 시선은 주변으로 더 확장된다. 『통증일기』에는 늙은 노숙자, 쫓겨나는 노점상, 폐지 줍는 노인, 농부, 철거민, 발달장애 여성, 극우 집회 속 노인들도 등장한다. “누구도 불러주지 않아 존재마저 희미해져 가는 이들을 시인은 자신의 시로 불러(윤지영, 해설)”들인다. 그의 시가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 것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이자 투쟁인 이유를 여기서도 알 수 있다.
박정숙 시인은 20년 전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비장한 각오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후배들이 더는 투쟁하지 않고 각자 주어진 삶을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고, 투쟁이며, 그의 삶 자체가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