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구절마다 핀 기억의 시-고래억 시인의 아름다운 첫 고백”
고래억 시인의 『기억의 꽃이 피어날 때』는 삶의 가장 조용한 자리에 놓인 언어들로 엮은 시집이다. 외치지 않으면서도 깊게 스미는, 화려하지 않되 단단한 언어로 써 내려간, 이 시편들은 시인의 삶 자체를 닮았다.
총 8부로 구성된 이 시집은 시대의 상처와 사회적 고뇌를 담은 시에서 시작해, 고향의 풍경과 가족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거쳐, 병상에서의 사유와 종교적 성찰로 나아간다. 한 편 한 편이 한 시절의 조각이며, 한 송이 기억이다.
1부 ‘시대의 눈물’에서는 정치와 교육, 사회적 진실에 대한 뼈아픈 질문이 담긴다. “꽃도 느낄 줄 아는데”에서는 생명에 대한 시인의 윤리적 고민이 응축되어 있고, “체벌 유감”은 교육자로서의 뼈아픈 고백이다.
2부부터 4부까지는 고향과 가족, 제자들과 손자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이어진다. “보리밭의 어머니” “당신이라는 봄” “큰딸, 여전히 너는 빛이다” 같은 시편들에서는 시인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타오른 사랑과 감사를 읽을 수 있다. 5부 이후는 시인의 내면을 더 깊이 파고든다. “암 선고”나 “죽음의 새로운 시작”에서는 병과 마주한 인간의 연약함과 초월적 희망이 절절하게 서려 있으며, 마지막 8부에서는 도가적 사유를 통해 존재의 본질에 다가가는 시도가 인상 깊다.
이 시집의 미덕은 바로 ‘진정성’이다. 겉멋이나 언어의 과잉이 없다. 대신 오랜 세월을 통과해온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맑고 투명한 시선이 있다. 시인의 시는 어느새 독자의 마음 깊은 곳으로 흘러 들어가, 오래된 기억을 깨우고, 잊혔던 감정을 불러낸다.
이 시집은 특별한 문학적 기교보다는 삶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의 언어로 이루어진 시집이다. 그 언어는 독자의 마음에 한 송이 조용한 꽃이 되어, 어느 봄날 문득 피어나고 있을 것이다.
*에필로그
꽃은 피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도는 흐르기 위해 계획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존재하며,
모든 것을 살게 한다.
이 시집이 당신 안에 있는 ‘도’와 ‘꽃’을
조용히 불러내는 울림이 되기를 바란다.
텅 빈 자리에,
당신만의 꽃이 피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