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무성 시인의 시조집 『저 푸른 바람 소리』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정서의 결을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낸다. 전통 시조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현대적 언어 감각을 결합한 그의 작품들은, 푸른 바람처럼 잔잔히 독자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다.
시인은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삶의 거울로 삼아, 민들레나 대나무, 밤바다, 초승달에까지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입힌다. 그 속에서 우리는 상처 입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어쩌면 조금은 치유되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대나무」나 「민들레」 같은 작품은 견디는 삶에 대한 애정을 절절히 드러내며, 우리가 잊고 있던 가치들을 상기시킨다.
한편, 그의 시 속에는 따뜻한 유머와 해학도 숨어 있다. 「간고등어의 변론」이나 「김장 날」 같은 시편에서는 일상의 평범한 소재를 통해 인간사의 아이러니와 삶의 씁쓸한 진실을 재치 있게 풀어낸다. 이는 시조가 갖고 있는 형식적 제약을 오히려 유머와 풍자로 역전시켜, 독자로 하여금 한 편의 시 안에서 웃음과 울림을 동시에 맛보게 한다.
무엇보다도 인상 깊은 것은, 그의 시조가 ‘그리움’과 ‘기억’이라는 감정의 파편을 얼마나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는가이다. 어머니의 장독간, 추억의 간이역, 할미꽃 같은 시들은 독자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만들고, 어쩌면 누군가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시조라는 정형시는 박무성에게 있어 형식이 아니라 정서를 담아내는 그릇이며, 그 그릇 안엔 삶의 희로애락이 진하게 우려져 있다.
『저 푸른 바람 소리』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풍부하면서도 단정한 언어로, 누구나 한 번쯤 지나온 인생의 골목길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따뜻한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