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가 물결치는 세계에서 건네 온 손길
대상 수상작 「아가미에 손을 넣으면」은 케토라인 나와 지구인 유나의 경이로운 첫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단체 생활이라고는 없이 일평생 홀로 바다를 유영하며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 온 케토라인 ‘나’는 케토라에 불시착한 외계 생명체인 유나를 관찰하기 위해 만난다. 음성 언어가 아닌 초음파로 소통을 하던 ‘나’는 타인과의 접촉이 낯설지만 유나가 건넨 첫 악수에 두려움 대신 짜릿함을 느낀다. 생경한 존재와의 만남은 오히려 “감격 어린 환호”가 되며,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지구로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자신과 다른 상대를 배척하는 최근 사회 경향에 비추어 볼 때 이 작품의 등장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이분법적으로 가르지 않고 낯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케토라인과 지구인의 태도는 오늘날 다양한 약자에게 가해지는 차별적 시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환대하는 마음은 김나은 작가의 신작 「나란한 두 그림자」에서도 이어진다. 죽은 이들이 살아 돌아오자, 사람들은 ‘유령’과는 함께 살 수 없다며 갖은 혐오를 퍼붓는다. 짝사랑했던 윤화의 귀환에 연우는 그를 도와주고 싶지만 자신도 모르게 주변인들과 같은 편견을 내비치고 있었음을 깨닫고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살아 돌아왔을 뿐인데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고 이전처럼 돌아가야 한다는 소리를 듣는 유령들의 모습은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 노동자 등 사회의 약자들이 처한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계속해서 자신의 존재를 내비쳐야 하는 이 시대의 약자들에게 김나은 작가는 이야기를 통해 유령이자 외계인으로 치부되는 이들 곁에 나란히 서 있고자 한다.
“제가 쓴 사랑이 누군가에게 닿는다면, 그래서 자신의 사랑을 향해 고개를 들도록 돕는다면 저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입니다.” - 김나은, 대상 수상 소감 중에서
사랑과 우정을 끊임없이 찾아내는 청소년들의 여정
고도로 과학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 AI에 고민 상담을 하는 등 비인간 존재와의 교류는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신진 작가들은 로봇과 밀접하게 살아갈 청소년들에게 앞으로 경험하게 될 다양한 화두를 내비친다. 박선혜의 「몽유」는 로봇과 함께 돌봄 노동을 도맡는 영케어러 한별의 현실을 담았다. 인간의 무의식을 로봇들이 행동으로 옮기는 ‘로봇 몽유병’ 사태가 일어나고 급기야는 인간들이 실현하는 지경에 이르자 한별은 극심한 불면증을 겪는다. 이 세상에 영영 혼자가 되어 버릴까 봐, 자신만이 끔찍한 악몽을 꾸는 걸까 봐 두려운 한별은 속내를 털어놓고 싶지만, 자신과는 달리 늘 “창창한 미래”를 꿈꾸는 친구 세나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괴롭다. 로봇이 돌봄을 대신하게 되더라도 영케어러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별처럼 고립되어 지낼 수밖에 없을 영케어러들은 어디에 자리할 수 있을까. 한별의 고백을 듣고 별다른 말 없이 그저, 친구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며 힘을 보탠 세나처럼, 작가는 영케어러들이 자신의 불안한 현실을 토로할 수 있는 상대를 마주하기를 바란다.
은숲의 「고백 시나리오」는 고백을 대행해 주는 안드로이드 ‘고백봇’을 사용하며 펼쳐지는 좌충우돌 연애담을 담았다. 나인은 고백봇을 통해 소꿉친구 정후에게 고백하기로 결심한다. 고백 시나리오만은 직접 써내 고백도 성공적으로 이뤄진 것도 잠시, 나인의 고백 시나리오가 일파만파 퍼져 모두가 제 진심을 그대로 복제하는 상황에 치닫고 만다. 실수 없이 고백을 끝마칠 수만 있다면 괜찮을까? 나를 똑 닮은 로봇을 통해 고백을 전하는 나인의 모습은 대면하는 상황이 두려워 SNS상에서 고백을 대신하는 오늘날 청소년들의 모습과도 겹쳐, 진심의 척도를 되짚어 보게 만든다. 미래의 청소년들은 로봇뿐만 아니라 다양한 비인간 존재의 울타리 안에서 사랑과 우정을 배우며 삶을 지탱해 나갈 터다. 대상 너머 소통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진심’에 닿아 있음을 소설 속 인물들이 마주한 관계를 통해 깨칠 수 있을 것이다.
‘발견하는 눈’을 지닌 신진 작가들의 등장
SF소설은 생경한 타자를 발견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기억 속에서 지운 존재들을 불러온다. 김해낭의 「플루토」는 하루아침에 태양계에서 이름을 잃어버린 명왕성에 주목한다. 마빈 박사는 어린 시절 아홉 번째 행성에 플루토라는 이름을 붙였던 베티 할머니와 친구가 되어, 우주라는 너른 세계를 마주한다. 각박한 상황 속에서도 변치 않는 우정의 가치를 보여 준 이들의 모습은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하더라도 변함없이 한자리를 지킨 플루토를 연상시키며, 늘 존재했지만 필요에 의해 지워지는 존재가 비단 인간만은 아님을 조명한다.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 한낙원과학소설상이 오늘날의 청소년들에게 계속해서 SF소설을 전하고자 하는 이유다. 올해로 11회를 맞이한 한낙원과학소설상은 앞으로 청소년 독자만을 위한 SF소설의 장을 이어 나가려 한다. 누구보다 빠르게 미래를 접하게 될 청소년들. 그들이 SF소설을 통해 희망찬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한낙원과학소설상은 미래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존재들을 예리하게 발견해 내는 신진 작가들을 계속해서 발굴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