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의 시간성과 공간성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었으며 『법화경』의 시간성과 공간성에 대해서는 2장과 3장에서 자세히 다룬다. 특히 ‘겁(劫, kalpa)’이라는 방대한 시간 개념을 단순히 헤아릴 수 없는 모호한 무한의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고, 구체적인 실재의 시간, ‘수치(수)’로 환산하여 설명하였다. 실재적 시간으로서의 겁을 나타낸 것이다.
예를 들어 『법화경』에서 언급되는 가장 큰 수인 석가여래가 이미 성불한 세월인 ‘무량무변백천만억나유타아승기겁(無量無邊百千萬億那由他阿僧祗劫)’은 숫자로 환산하면 43.2×10²⁰⁹이며, 붓다가 도를 닦은 기간인 무량억겁(無量億劫)을 숫자로 환산하면 43.2×10⁸⁴이다. 따라서 ‘겁’을 단지 허구가 아니라, ‘시간의 본질을 상징하는 실재적 언어’로 보고 있다.
법화경』의 공간 개념은 시방(十方)과 시방세계(十方世界)를 중심으로 해석된다. 세계는 시공(時空)을 의미하며 세(世)는 시간, 계(界)는 공간을 뜻한다. 따라서 시방의 세계(世界, lokadhātu)는 단순한 공간 개념을 넘어, 사건이 발생하는 의미 있는 장소로서, 붓다의 설법이 펼쳐지는 전 우주를 상징한다. 『법화경』에서 묘사된 공간과 장소, 그리고 그 중심과 전개 양상을 면밀히 살펴보면, 붓다가 언급한 세계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장소가 아니라, 실존하는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세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정토, 지금 이 자리에서 구현 가능한 현실 유토피아
이 책의 핵심 중 하나는 정토의 세계와 유토피아 개념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데 있다. 4장과 5장에서는 법화경의 정토관이 단지 사후세계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구현 가능한 이상사회로 제시되고 있다. 특히 ‘일불승(一佛乘)’의 가르침을 통해 모든 인간 존재의 평등성과 성취 가능성을 강조한다. 사리불의 ‘이구(離垢)’, 마하가섭의 ‘광덕(光德)’, 수보리의 ‘보생(寶生)’ 등 다양한 정토의 세계를 서술하였다.
저자는 또한 『법화경』에서 묘사된 정토의 세계를 서양의 유토피아 사상, 동양의 무릉도원, 유가에서 말하는 대동세계 등과 비교하며 법화경이 단지 내세 지향적인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적 실천을 촉구하는 사상임을 강조한다. 이상사회는 단순히 미래에 실현될 꿈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의 수행과 깨달음을 통해 구현 가능한 실천적 이상임을 밝히는 것이다.
『법화경』이 제시하는 세계는 정적이고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사건과 인식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열리는 가능성의 세계다. 고정된 시공간 구조가 아니라, 인연과 작용에 따라 유동적으로 구성되는 장이며, 정토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수행과 전환의 자리로 기능한다. 이때 ‘일불승’은 모든 존재가 성불할 수 있는 보편적 가능성을 상징하며, 이상세계는 외부가 아닌 우리 내면에서 실현될 수 있는 현실임을 말하고 있다.
《법화경의 세계와 유토피아》는 단순한 경전 해설이나 교리 중심의 설명을 넘어서, 『법화경』을 다층적인 철학적 틀로 분석하고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한 점에서 독창적이다. 불교와 수학, 우주론을 접목해 시간과 공간 개념을 보다 철학적으로 탐색하고, 정토와 유토피아의 개념을 창의적으로 연결함으로써, 법화경이 말하는 정토를 ‘지금 이 자리에서 구현 가능한 현실 유토피아’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