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힘
살구가 이사 온 마을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다. 형제자매가 없는 살구는 이전과는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살구는 이곳이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맛있는 과일을 먹고 신기한 곤충들과 동물들을 따라다니고, 아름다운 꽃을 감상하는 삶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마음은 어떻게 생겨날까? 기대에 부푼 살구의 모습에서 그 답을 알 수 있다. 바로 오늘에 집중하는 것이다. 살구는 오늘의 날씨와 오늘의 만남, 오늘의 놀이를 그때그때 떠올리고 받아들일 수 있다. 떠오르는 멜로디로 자신만의 놀이를 만들고, 삽을 들고 정원으로 나가서 땅을 팔 수도 있다.
어릴 때는 누구나 살구처럼 좋아하는 것이 있다. 모두가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을 궁금해하고, 알아가고, 때로는 용감하게 부딪히며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왔다. 그중에는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무척 좋아하고 아끼게 되는 것도 있고, 한편으로는 실망해서 마음속 한구석에 넣어두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굉장히 좋아해 본 경험은 우리 안에 큰 힘과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살구는 우리 마음에 있는 그 공간에 즐거움과 사랑을 채워 넣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낯선 세계에서 새로운 친구 사귀기
마을을 누비며 혼자 놀기를 좋아하던 살구에게도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 형제자매가 없는 살구에게 좋은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은 부모님은 하얗고 작은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온다. 살구는 강아지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만두’를 이름으로 지어주고 혼자 하던 일들을 만두와 함께 하기 시작한다. 만두는 어른들 앞에서 평범한 강아지이지만, 어린아이들과 있을 때는 말을 할 수 있다. 살구의 부탁을 들어주고, 살구를 돌보고, 감정을 표현하며 특별한 우정을 쌓아나간다. 살구는 만두를 편하게 대하면서도 만두가 가진 능력에 감탄하고, 때로 의지하거나 본받기도 한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산책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얻어서 먹던 살구와 만두는 또 다른 친구를 만난다. 먼저는 풀숲에서 만난 남자아이와 싸우게 되는데,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새로운 것을 경계하는 마음이 만나 이전에는 없던 미운 감정도 느낀다. 한편, 또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소년과 만나고 나서는 동경과 호기심을 가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거짓말과 호기로움을 직면하고 부끄러움을 얻기도 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변화하는 살구의 모습을 보면 투명하고 순수한 어린이의 성장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친구를 만들고 조금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순간이 반짝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어떤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다
땅의 구멍을 파 놓으면 웅덩이가 될 수도, 두더지의 집이 될 수도, 씨앗의 뿌리를 내릴 수도, 누군가를 빠트리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살구는 알고 있다. 『살구와 만두』는 이런 살구의 대사를 통해, 한 아이가 자랄 때 어떤 환경과 경험이 주어지느냐에 따라 아이의 존재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에게는 그런 특권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껏 저지르고, 회복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권리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따르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또 다시 변화할 수 있는 권리다. 이 책에 나오는 어린이들은 자신의 부족함과 실수에 얽매여 나아가지 못하는 인물들이 아니다. 서툴고 부족한 모습을 보였더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 용감하게 뜀박질을 하는 인물들이다.
이런 일상이 가능한 것은 주변에 아이들을 지켜보는 좋은 어른들이 있기 때문이다. 살구에게는 새로운 경험으로 마음이 달라졌을 때 스스로 뭔가를 만들고 성취하면서 위로를 얻고 환기하도록 돕는 어른이 있다. 배가 고프고 지칠 때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고, 맛있는 음식을 내어주는 어른도 있다. 살구의 거짓말을 모른 척 넘어가 주는 어른도, 무모한 여정을 걱정하면서도 함부로 개입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어른도 있다. 모두가 푸른 바다 섬 안에 사는 이웃들이다. 우리 주변의 아이들에게도, 이미 성장한 이들에게도 이런 어른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살구의 마음속에 있는 소중한 것을 꼼꼼히 관찰하는 사이 자신에게 있는 반짝이는 힘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