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집에서도 어김없이 유기택 시인 특유의 농담과 농담 속의 진경 혹은 진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면서, 박제영 시인은 유기택 시인과 그의 시를 이렇게 퉁친다.
“그는 개와 늑대의 시간에 산다. 그는 너스레와 고수레 사이, 몽니와 몽리(蒙利) 사이, 맷돌과 어처구니 사이, 창과 방패 사이, 칡나무와 등나무 사이, 삵과 고양이 사이, 낭(狼)과 패(狽) 사이, 유와 류 사이, 엠마누엘과 칸트 사이, 는개와 안개 사이, 삭(朔)과 망(望) 사이, 밀물과 썰물 사이, 비굴과 굴비 사이, 침과 시치미 사이, 블랙홀과 화이트홀 사이, 망원경과 현미경 사이, 돌과 달 사이, 허무와 맹랑 사이, 23쪽과 24쪽 사이, 샘과 밭 사이에 산다. 물론 정황증거일 뿐 물증은 없다. 공개수배를 해도 그를 찾기란 바늘구멍에 낙타 들어가기다. 그가 세상을 어지럽힐 위조 시집을 여러 권 냈다는 소문만 파다하다.”
시인 유기택은 시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롯이 자기만의 시 농법을 고집한다. 그 결과 그의 시 저변에는 ‘유순(柔順)’이라는 유기택만의 서정이 흐른다. 유기택의 시적 정서는 유(柔)함과 순(順)함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런 유순을 변주하면서 매 시집마다 조금씩 새로운 색깔을 입히는 것, 그것이 시 노동자이자 시 농부인 유기택의 시 농사법이다.
유기택의 시집들을 줄곧 분석한 바 있는 오민석 교수(문학평론가)는 “‘움직이는 세계의 불확실성’을 시인 특유의 어법으로 잘 그려냈”고 이번 시집을 통해 유기택의 시 세계가 또 한 번 껍질을 벗고 나온 듯하다”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움직이는 세계의 불확정성을 통해서 유기택이 포착하는 것은 사람살이의 애틋한 풍경들이다. 그곳에는 대문자 진리도, 유일한 진리도 존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는 것 자체의 소소한 의미들조차 부재한 것은 아니다. 유일한 진리가 없으므로 세계는 오히려 다양하고, 절대적인 진리가 없으므로 세계는 오히려 넓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정지되어 있는 것도 아니므로 세계는 늘 새롭다. 그는 세계의 이 유동성을 움직임 그대로 풀어놓고 하나도 심심하지 않게(!) 세계의 간을 본다. 세계는 때로 외롭고, 따뜻하고, 슬프고, 정겹지만,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지 않는다. 세계는 그저 흐르고 주름을 만들며 계속 변할 뿐이다.”
순수와 열정의 반칙
마모의 방향을 관찰하다 날을 발명했다
도루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무엇이건 최소의 통증으로 잘려 나갔다
방향이 운명을 결정한다
문명이라는 변명에 날을 숨기면
침묵하는 양들의 인내를 제물로 삼았다
과거와 현재의 양상은 미래의 반영
이제 곧
호모 데우스의 발명으로 쓸모를 잃은
대개 호모 사피엔스들이 사라질 것이다
슬기로운 사람들이 무심히 잘려 나가는
무통 세상의 배반을 맞이하게 될 터였다
소문에는 벌써 어딘가에
호모 사피엔스 박물관을 짓고 있더라는
대부분 헛소문으로 뒤가 밝혀지겠지만
방향의 우스갯소리들이 먼저 도착했다
발명은 늘 그렇게 농담의 태도를 취했다
너무 일찍 깼다
많은 천재 시인들이 요절했다
느린 자살이었을 거란 평판이 돌았다
요절은 애초에 물건너갔다
다만, 어떤 시의 발견이
호모 사피엔스의 멸종을 막을 수 있기를
동업자 정신으로 살아남는
슬기로운 사람들의 세상이 남기를 바랐다
그러나 결국
코나투스의 농담이 멸종을 발명할 거였다
더 자자
- 「호모 루덴스」 전문
유기택 시인은 말한다. “호모 루덴스인 당신만이 내 시집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독자”라고. 그러니 독자여, 당신도 호모 루덴스가 되어 이 유쾌하고 통쾌하고 상쾌하다 마침내 즐거운 이 시집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 달아실출판사는…
달아실은 달의 계곡(月谷)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달아실출판사”는 인문 예술 문화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종합출판사입니다. 어둠을 비추는 달빛 같은 책을 만들겠습니다. 달빛이 천 개의 강을 비추듯, 책으로 세상을 비추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