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최후, 존재의 바닥을 비추는 언어 - 이문길 『구름』론”
이문길의 시는 문학이 품을 수 있는 가장 낮고 오래된 진실에 닿아 있다. 『구름』은 삶의 겉모습이나 현상보다, 그 밑바닥에 오래 침잠해 있던 감정, 생의 실감, 그리고 ‘존재의 무게’를 응시한다. 그는 감정을 쏟기보다는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사물을 시화한다. 그 들여다보는 시선은 다정하지 않으나 결코 차갑지 않으며, 잊힌 것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품고 있다.
『구름』의 시편들은 대부분 서사와 묘사의 경계를 걸으며 독백처럼 흐른다. 화자는 흔히 늙은 몸, 홀로 남은 자, 이승에 남겨진 생명체, 또는 사라진 누군가로 등장한다. 그는 구체적인 장소(팔공산, 봉선사, 주문진), 사물(개밥그릇, 초파리, 고동색 잠바), 순간(저녁답, 첫눈, 밤중) 속에서 무엇이든 ‘존재한다는 것’의 조건과 고통을 질문한다.
흥미롭게도 이 시집은 세련되거나 새로운 형식에 매이지 않는다. 이문길은 시를 기술이나 장르로 보지 않는다. 그에게 시란 살아낸 자의 고백이며, 애도와 고독의 도구다. 『구름』은 죽음과 결핍을 말하지만 동시에 그 결핍을 견뎌낸 존재들에 대한 고요한 찬가다.
이 시집에서 죽음은 결코 무거운 주제가 아니다. 오히려 시인은 죽음을 이미 일상 안으로 불러들인다. 죽음은 “눈 뜨고 바라보아야 할 것”, “노잣돈 없이 떠나가는 일”, “풀숲에 던져주는 산새”, “머리 없는 까치”로 등장한다. 그것들은 모두 과장되지 않고, 거룩하지 않으며, 인간의 눈높이에서 -구름처럼- 흘러가고 있다.
『구름』은 노시인이 쓴 회고록 같은 시집이 아니다. 오히려 말년의 시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진실성의 정점에 있다. 이것은 시가 어떻게 삶을 끝까지 담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조용한 증거이며, 시의 존재론적 깊이에 대한 한 작가의 마지막 응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