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학이 태동하는 그 현장에,
언제나 여자들이 있었다”
처음 만나는 여성 고전문학의 세계
『비포 제인 오스틴』
고전문학을 읽다 보면 항상 의문하게 된다. ‘아무리 여성의 활동이 제약되었던 옛날이라지만, 여성 작가가 쓴 작품을 찾아보기가 이렇게나 힘들단 말인가?’ 실제로 ‘여성 고전문학 작가’라고 하면 대부분은 18~19세기에 활동한 브론테 자매, 메리 셸리, 제인 오스틴 등을 떠올리는 데 그치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 앞에도 문학적으로 풍성하고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룬 여성 작가들이 많이 있었다. 이 책은 제인 오스틴 이전의 여성 작가들이 거의 발굴되지 않았고, 그들의 업적이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호주의 페미니스트 학자 데일 스펜더는 과거의 여성 작가들을 연구할수록 제인 오스틴은 여성 문학의 시발점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여성 문학의 전통을 계승한 인물임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나아가 이들 여성 작가들은 단순히 존재하였을 뿐 아니라, 새로운 문학 장르가 태동·발전하던 순간마다 중요히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차례대로 10~12세기 헤이안 여성 문학, 중세 수녀들의 문예 활동, 15세기에 집필된 크리스틴 드 피장의 『여성들의 도시』, 12세기 르네상스와 16~17세기 영국 르네상스기에 활동한 여성 작가들, 마거릿 캐번디시의 『불타는 세계』, 라 파예트 부인의 『클레브 공작부인』 등을 소개한다. 그로써 그간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문학의 유산을 되찾고, 문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널리 퍼뜨리고자 한다.
여성 문학, 어디서부터 어떻게 읽어야 할까?
지금 여성 고전을 읽고자 하는 당신을 위한
1타 20피 문학 안내서
이 책은 총 여섯 개 장으로 이루어진다. 1장에서는 10~12세기 일본 헤이안 시대의 문학을 다룬다. 『사라시나 일기』 『청령일기』 등 일기 문학과 함께, 최초의 소설로 알려진 『겐지 이야기』를 쓴 무라사키시키부와 최초의 수필 『베갯머리 서책』을 쓴 세이쇼나곤 등 당대 궁중 여성들의 문학 활동을 소개한다. 이 시대의 여성들은 단순히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해부하여 진실로서 후대에 전하고자 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그 시대의 삶이 이토록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전해져 오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2장은 독일의 로스비타와 프랑스의 엘로이즈, 멕시코의 소르 후아나의 일생과 문학 활동을 소개하며, 3장은 중세 유럽 문학사 최초의 여성주의 논쟁에 참전하여 혐오와 곡해로부터 여성들을 변호하고 지키기 위해 글을 썼던 크리스틴 드 피장의 삶과 그의 대표적인 작품 『여성들의 도시』를 다룬다.
4장은 르네상스 역사가 조안 켈리의 말을 빌려 질문하는 것으로 서두를 연다. ‘문예부흥기라 하는 르네상스가 과연 여성들에게도 르네상스였는가?’ 그리고 비록 남성들과 함께 찬란한 르네상스기의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으나, 엘리자베스 케리와 애프러 벤 등 여성 작가들은 결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으며, 그로써 세상에 새로운 목소리를 더하였음을 말한다.
5장과 6장은 각각 ‘최초의 SF’와 ‘로판(로맨스판타지) 장르의 시조’라는 주제로 마거릿 캐번디시의 『불타는 세계』와 17세기 궁정 문학을 다룬다. ‘여성에게 이성이 있다’는 당연한 명제조차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시대에 마거릿 캐번디시는 여성의 몸으로 ‘이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어떤 원리로 운행되는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물질에는 이성이 있다’는 자신의 세계관을 담은 작품을 선보였으니, 그것이 바로 『불타는 세계』다. 이어지는 6장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은 편지로 서간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낸 세비녜라는 인물을 조명한다. 또 라 파예트 부인의 『클레브 공작부인』을 통해 ‘사랑, 연애, 결혼’이라는 오래된 테마 안에 여성의 삶과 욕망, 성장과 투쟁이 반영되는 양상을 주목한다.
『비포 제인 오스틴』은 국내에 번역된 문학 작품들을 저본으로 한다. 이 책을 통해 흐름을 파악한 뒤, 본문에 소개된 여성 문학 작품들도 읽어본다면 여성 문학을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다.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기초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을 만큼 알찬 내용을 담아내면서도, 누구나 편히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였다는 것이 특장점이다. 그 과정에서 단순히 개개 작품의 내적 맥락만을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쓴 여성 작가의 삶과 당시의 시대상, 사회·문화적 배경까지 폭넓게 다루어 총체적인 이해를 이룰 수 있게 했다.
오늘 우리의 ‘독서’가 고전을, 나아가 역사를 만들 것이다
지금 우리가 여성 고전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
“대부분의 독자들이 들어본 적도 없고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여성 소설가들의 위대한 유산을 찾아냈을 때, 스펜더는 기존 영문학 연구가 크나큰 상실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_본문에서
스펜더는 여성 문학의 유산을 되찾기 위해서는 “여성 소설이 제인 오스틴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기존 문학계의 통념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에 대한 사회·문화·제도적 혐오와 차별, 멸시가 만연하던 시대에도 여성들은 글을 썼다. 글쓰기야말로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은 집 밖 출입도 마음 편히 할 수 없었던 헤이안 시대에 여성들은 글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 사랑과 우정을 쌓아 나갔다. 또한 ‘중세 수녀원 문학’이라 하면 더없이 보수적인 성격을 띠었을 것 같지만 사실 그야말로 ‘시스터 액트’라 할 정도로 스스로 사유하고 행동·실천하는 여성들의 문학이었음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여성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다는 현실조차 이들에게 장벽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독학을 통해 기존 관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문학을 선보임으로써 이 세상을 풍요롭게 한 것이다.
혹자는 질문할지 모른다. 오늘날에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T. S. 엘리엇은 “역사란 과거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함께 현재에 자신감을 갖고 미래를 의심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 문학의 성취에 대해 비판적 감각과 자긍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성취를 잊으면 현재를 긍정하기도, 미래를 낙관하기도 요원해진다. 따라서 여성 문학의 찬란한 미래를 낙관하고자 하는 이라면, 여성 고전의 존재를 알고, 읽어야 한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여성 문학의 역사와 전통을 아는 지식이 여성 문학의 현재를 풍성하게 하고 그 미래를 열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비록 기록되거나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해도 우리보다 앞서 살다 간 여성들이 분명 있었음을 확신하게 된다. 그들은 글로써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주장하고자 했으며, 이 세계가 무엇으로,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비포 제인 오스틴』을 통해 우리보다 앞서 살다 간 여성 작가들의 투지와 끈기, 강인한 생명력이 독자들에게 전해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