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식으로 삶을 이어나가려 애쓰는 사람들이다.
표제작이자 등단작인 「팽이」는 엄마가 집을 떠난 뒤, 어린 오빠와 함께 남겨진 소녀 ‘재이’가 자신의 세계를 인식해가는 이야기이다. 떠날 날을 알 수 없고 “아무 균형도 규칙도 없는” 곳이지만 자신을 둘러싼 전부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작은 방에서 재이는 조금씩 성장한다. 소설은 한 아이가 무너짐 없이 세상을 버텨내는 모습을 ‘팽이’라는 상징 안에 압축하며, 간명하고 정직한 문장과 놀라운 몰입감으로 삶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간다.
첫번째 작품 「주단」 역시 통제할 수 없는 어둠과 그늘을 온전히 껴안고 성장한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쌍둥이 형제 중 병약한 동생 ‘단’과 그의 욕망, 그리고 죄책감과 혐오 사이에서 고통받는 형 ‘주’의 심리가 성인 화자의 회고 형식으로 펼쳐진다. 작가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그것이 남긴 상흔을 섬세하게 더듬으며, 문학이 슬픔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청소년 화자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첫사랑」은 처음 사랑에 빠질 때의 몽글몽글한 감정을 서정적으로 담아낸다. 강렬한 작품들 사이에서 유독 여리고 투명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이 단편은, 어떤 것으로부터도 구속받지 않은 사랑의 감정을 통해 삶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동력을 환기한다.
아직은 다 헤아릴 수 없는 감정과 갈등으로 가득 찬 세계 속에서 무언가를 버티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애틋하고 서글픈 빛을 띤다. 그러나 삶은 그 애틋함을 오래 붙잡아두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혼자 힘으로 세상을 살아내야 할 어른이 된 이들은 더없이 냉혹하고 건조한 현실과 마주한다. 「월드빌 401호」와 「창」은 청년들이 처한 생존의 현실을 폭력적으로, 혹은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거대한 폭력을 경험한 뒤 집에서 나오지 못하게 된 「월드빌 401호」의 주인공은 과거의 학대자 ‘괴물’이 감옥에 들어가 있음에도 과거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던 반려견조차 끝내 폭력의 희생양이 되는 서사는, 트라우마의 반복을 그야말로 가혹하게 그려낸다.
「창」의 주인공은 비정규직 여성이다. 성희롱과 따돌림을 견뎌온 끝에, 자신을 향한 모멸의 언어들이 적힌 메신저 대화를 목격한 그는 충동적으로 회사 창문을 부수고 집으로 돌아온다. 우연히 이웃 커플의 사랑의 기척을 접하고 잠시 설렘을 느끼지만, 곧 그 작은 방조차 자신에게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절망에 이른다. 두 작품은 사회 속 개인이 감당해야 할 폭력과 고통의 무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알레고리적 장치를 통해 청년 세대가 느끼는 막막함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엘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속에서 살아가는 청년과 코끼리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불안한 내면과 허망한 행복의 틈을 날카롭게 짚으며, ‘꿈’조차 생존의 언어가 되는 삶의 비의를 드러낸다. ‘코끼리’로 상징되는 환상과 꿈은 주인공의 희망에 대해 망연한 감정이 들게 만들다가도, 끝내 스스로를 놓지 않기로 결심하는 이 태도를 과연 허무하고 가벼운 것으로 여겨 넘길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도착한다. 독특한 형식과 설정이 돋보이는 또 하나의 작품 「새끼, 자라다」는 사막에서 태어난 자라와 펭귄이 각자 자신의 진짜 자리를 상상하는 이야기이다. 소설은 우화적 설정을 통해 세계의 잔혹한 단면과 그 안에서 꿈틀대는 생의 욕망을 동시에 포착해낸다.
상처 위에 삶을 세우는 이야기,
좁은 방의 침묵을 깨고 더 밝은 쪽으로 나아가는 첫 발걸음
한편, 가장 가까운 관계의 민낯과 인간으로부터 오는 미묘한 불편함을 예리하게 그려낸 작품은 「돈가방」과 「남편」이다. 이 두 작품은 속도감 있는 이야기 구조 위에 정교하게 쌓아 올린 인물의 내면과 현실의 모순을 통해, 독자의 깊은 몰입과 사유를 이끌어낸다. 「돈가방」은 형제 부부가 3억원이 든 돈가방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탐욕과 죄책감, 그 사이의 이기심을 세밀하게 그린다. ‘약속’은 결국 배신으로, ‘가족’은 이기적 선택으로 무너진다. 「남편」은 남편이 여고생 강간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아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안쓰러운 존재였던 남편은 순식간에 강력범죄자로 낙인찍히고, 아내는 다니던 마트에서도 해고된다. 가정의 파괴와 주변의 낙인, 경제적 붕괴, 신뢰의 균열까지 모든 것이 단번에 무너진 세계 속에서, 그럼에도 남편을 믿고자 유치장을 찾아간 아내는 ‘억울하다’는 남편의 말보다 자신의 분노를 먼저 마주하게 된다.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터져 나오는 갈등과 심리의 균열을 날카롭게 포착한 이 소설들은, 우리가 어디서부터 엉켜버렸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나’의 자리를 묻는다.
마지막 작품 「어디쯤」에서 주인공은 “어디쯤이냐”고 반복하여 받는 질문을 통해 사회로부터 조금씩 밀려나는 자신의 모습을 인지한다. 애인도, 가족도, 사회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를 묻지만 그의 혼란을 책임지지 않는다. 교류를 시도해도 좀처럼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스산한 타인들, 깊은 밤과 함께 밀려오는 알 수 없는 공포 속에서, 결국 주인공을 기다리는 것은 “아직이냐” 묻는 아버지의 질문뿐이다. 이 무심하고 공허한 물음은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렸는지’를 되묻는 독자의 자리를 남겨둔다.
일관된 속도와 긴장을 유지하는 최진영의 문장들은 작품 전체에 고유한 결을 형성하며, 독자를 강하게 빠져들게 만든다. 나아가 온통 의문으로 가득한 세계의 그림자를 기어이 끌어안도록 이끈다. 작가는 우리 시대의 가장 연약한 영혼들을 발견해내고, 한 세대를 함께 살아내는 품이 되기로 결심한다. “현재를 살아서 과거라는 그릇을 만들어야 미래의 내가 의미를 채워 넣을 수 있다”고 믿으며, “희망을 지속적으로 가꾸고 살리기 위해”, 그리고 “쓰러져도 팽이는 팽이”(새로 쓴 작가의 말)라는 믿음을 위해, 그는 계속해서 쓴다. 어두운 시대가 변하지 않을 것 같고 절망이 계속되어도 최진영의 이야기가 여전히 어둠 속에서 뚜렷하게 빛을 발하며 우리 문학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