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미국을 종합하려는 시도
하트 크레인은 완공된 브루클린 다리를 미국의 신화로 노래했다. 시인은 브루클린 다리를 만든 로블링가(家)의 위대한 상상력과 의지를 세상에 없는 새로운 시 언어로 찬양했다. 시인을 매료시킨 브루클린 다리는 대도시 뉴욕의 랜드마크가 되었고, 오늘날까지 미국 시민들의 통로가 되어주며 미국 토목건설사의 산증인이 되고 있다. 여전히 브루클린 다리는 뉴욕의 매우 중요한 교통로이자 관광지, 구조물 중 하나이며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하트 크레인은 모더니즘 시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엘리엇의 『황무지』의 위대함을 인정하면서도 “완전히 죽어버린”, “특정한 영적 사건과 가능성”을 보기를 거부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하트 크레인이 스스로 정한 작업은 그러한 영적 사건과 가능성을 시적 삶으로 끌어들여 “미국의 신비로운 종합”을 창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야망은 마침내 『다리』에서 결실을 맺게 되는데, 여기에서 브루클린 다리는 이 시의 중심 상징이자 시적 출발점이다.
하트 크레인은 휘트먼의 영향을 받아 낙관주의적이고 모더니즘적인 시를 꾸준히 지었다. 그는 ‘기회와 꿈의 땅’ 미국에 살면서 당시 유럽에서 벌어진 세계대전의 참화를 직접 겪지 않았기에 절망적인 유럽의 엘리엇과 달리 희망과 패기로 가득 찬 미국의 모습이 시적 모토가 되었다. 그런 까닭에 『다리』의 어휘와 분위기는 낙관적인 밝은 미래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는 미국과 그 문명을 찬양하는 시이다. 서시 「브루클린 다리에게」는 브루클린 다리에 대한 기원을 담고 있으며, 시의 도입부에서 시인은 미국 전역을 조망하고, 미국의 역사를 종단하여 콜럼버스 시대의 신대륙 발견 일화로 서사시의 막을 올린다. 이후 립 반 윙클, 이름 모를 뜨내기 노동자들, 인디언들 등 여러 숱한 인물들을 마주하며 그는 꾸준히 신화와 현실, 이상 및 과거 세계와 현대 사이의 간극과 차이를 오가며 동시에 갈등과 아이러니를 양산한 무대로 독자를 초대한다.
전반부를 지나 「해터러스곶」, 「퀘이커 힐」, 「터널」이 이어지고, 마지막 시이지만 시의 초점을 다시 브루클린 다리로 되돌리는 황홀한 시면서 실제로는 이 『다리』라는 원대한 기획의 첫 번째로 집필된 시 「아틀란티스」에까지 시인은 세계의 제국 미국을 그려내면서, 여러 상호대립적 세력들을 통합하고 미래의 새로운 미국을 창조하려는 비전을 모색한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 기반을 둔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신화와 상징과 은유를 이용한 재해석으로 무장한 인물들과 사건들을 어지럽게 지나면서도 그들 시야에 변함없이 솟아 있는 브루클린 다리가 여전히 그들 모두를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시는 그 분량만큼이나 복합적이고 총체적이어서 처음 이 장시를 접하는 이들은 적지 않은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시를 읽을수록 메시지와 흐름은 또렷해진다. 『다리』는 갈등 속에서 항상 새롭게 갱생하는 시인의 비전을 통해 타락한 역사와 파괴된 현대 세계에 긍정과 희망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서사시라는 것, 시인이 분열과 파행의 역사 속에서도 초월적 비전의 순간을 자신의 언어로 제시하며, 이 비전을 통해 끊임없이 역사를 새롭게 하려는 움직임을 『다리』 전편을 통해 이어간다는 것이다.
한국어판 『다리』의 구성과 특징
하트 크레인의 장시 『다리』는 1930년 출간 이후 꾸준히 그 위상을 높여왔지만, 처음에는 달랐다. 몇몇 영향력 있는 비평가들은 『다리』가 출간되자 ‘고귀한 실패작’이라고 낙인찍었고, 이는 서서히 통념이 되었다. 하지만 이 파노라마적인 작품은 이제 20세기 미국 시의 가장 뛰어난 업적 중 하나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다리』는 매우 난해하다. 이 작품은 모호하고 간접적인 암시가 가득하며, 그중 일부는 대단히 세부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1920년대 일상생활에 대한 언급들은 오늘날 독자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시인의 스타일을 특징짓는 정교한 복합적 은유는 다양한 출처들을 한데 묶어 텍스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 시는 설명과 정체성을 요구하는 주제적, 지리적 참조로 가득 차 있고 많은 구절이 관련된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가 버겁다.
한국어판 『다리』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본문인 시와 함께 해설을 갖추었다. 『다리』의 15편의 시는 각각 ‘해설’을 달고 있고, 이 ‘해설’은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처럼 서사의 윤곽을 알려주어 독자가 시의 주제나 방향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또한 시의 배경과 구체적 정황을 소개하고 작품의 전체 맥락 속에서의 의미도 설명해준다.
‘해설’과 함께 이 책은 충실한 ‘주해’를 제공한다. 한 시대와 세계를 재현하는 총체적 장르답게 하트 크레인의 서사시는 서구 세계 전반의 역사, 지리, 종교, 예술 등 다대한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망라한다. 이때 도움이 되도록 옮긴이가 ‘주해’를 마련했다. 또한 책의 말미에는 「하트 크레인과 현대 서사시」라는 제목으로 『다리』의 전체 기획을 소개하고 있으며, 시인의 생애 연보도 수록하여 독자의 충실한 이해를 돕는다.
미궁 같은 복잡성과 촘촘한 암시의 그물망을 연상시키는 하트 크레인의 『다리』를 국내 처음 소개하며, 이 한국어판 『다리』가 낯선 시지만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독서, 편리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