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따라 스며든 사랑,
그 끝에 도달한 결실의 순간
거대한 정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느리고 조심스러운 사랑 이야기
소설은 2월의 중순을 넘어간 어느 늦겨울 무렵, 고요한 대저택의 소유주인 ‘나’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저택에는 마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정원이 있다. 야생화와 같이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나에게는 특별한 불만도, 욕망도 없다. 그저 주어진 삶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순응해 살아갈 뿐.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이곳의 새로운 정원사가 되었다며 등장한 낯선 여성, ‘루실’이 ‘나’의 삶에 불쑥 끼어든다. 둘은 천천히, 그러나 여과 없이 서로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매일 만나 정원을 걷고, 오래도록 대화를 나눈다. 지난 자신의 과거를 조금씩 꺼내놓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상대의 삶에 은근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내밀한 마음이 엿보인다. 그러는 동안 계절은 어느덧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흐른다.
계절을 따라 흘러가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얼핏 순항하는 듯하나, 마냥 순조롭지만은 않다. 뜻밖에 펼쳐지는 일련의 사건으로 ‘나’의 삶에 침투하게 된 불안은 관계의 미세한 균열로 이어진다. 풋풋한 봄꽃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여정은 곧 꽃이 시들고 지는 겨울꽃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봄의 경치를 뜻하는 ‘연화’에서부터 마침내 당도하게 된 ‘결실’의 순간까지.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인물들을 둘러싼 계절과 감정의 흐름 속에 흠뻑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 순간, 문득 떠오르는 이름이 있는 당신이라면 지금 즉시 이 한 권의 소설을 꺼내 들길 바란다. 한 계절의 끝머리에서 전하는 『꽃과 말』의 이야기와 함께라면,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 가슴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옛사랑의 조각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