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와 현대의 풍경이
잘 어우러진 감동의 시편
돌아가는 자者의 젖은 목소리가 노을빛처럼 쓸쓸하다. 잠들지 못한 밤은, 생각을 물고 달빛을 물고 새벽까지 시를 짓는, 그 노경老境의 지혜가 빛난다. 쇠락해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고뇌가 불면의 몸부림으로 가득하다. 그녀의 시는, 불계공졸不計工拙의 꾸밈없는 서투름이 오히려 아름다운 울림을 전하다. 잃어버린 한국인의 인정과 풍속은, 시 행간 속에서 흑백사진처럼 추억으로 물들게 한다. 번거로운 속박에서 벗어난 그녀의 시는, 텅 빈 미학으로 승화된다. 두 손은 허위와 가식을 내려놓고, 두 귀는 하늘의 말씀을 듣는 노老시인의 경지가 허허롭다. 그녀의 시는 몇 가지 재료로 언어를 주물럭거려, 억지로 대상을 구부리지 않는 시법에 닿았다. 자연스레 바람의 언덕을 넘다가 숨이 차면, 잠시 행과 연 사이에 앉아 쉬기도 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고통과 비명을 지나, 기억의 지문을 지우는 경계에 서 있다. 시는 고독한 작업이지만, 견디기만 하면 좋은 시가 수북이 쌓인다. 서정시는 천지 만물의 감정을 떨림으로 전하는 시법이다. 사물의 말을 곡진하게 들을 때 명시가 태어난다. 누구에게나 말 못할 심연의 통곡이 있다. 그녀의 어떤 시는 들썩이는 울음소리가 너무 깊어 마음이 아프다. 또 어떤 시는 신비로운 지혜로 가득한가 하면, 그녀만의 독특한 음색이 곱기도 하다.
정춘자의 시집 『빈 의자』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놓쳐 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운 정서를 들 수 있다. 가난과 굶주림이 다반사이던 근대의 풍속과 사람살이는 눈물겹다. 그녀의 삶의 노정은, 해방 전후, 6·25전쟁, 70년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한편, 가슴속에 한숨으로 남은 지난 시절의 추억과 회한의 목소리가 들린다. 늙어 가는 것에 대한 연민과 사라져 가는 것들의 서글픔이 묘하게 시로 뒤얽혔다. 그리고 현실의 부조리와 비틀린 인간을 향한 풍자를 묘사하였다. 시는 개인적 체험일 수도 있고, 타자의 행위가 시 속에 투영된 것일 수도 있다. 좋은 서정시를 구분 짓는 일은 별 의미가 없다. 시인마다, 독자마다, 개성이 천차만별이어서,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행복하면 그만이다. 그녀의 시 「빈 의자」에서도 유추되듯, 객관적 상관물 ‘의자’를 통해, 버려진 노인 문제를 환유의 시법으로 찔렀다. 무릇 좋은 서정시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시가 일품이다. 익숙한 시어들을 잘 닦아 자신만의 특별한 이미지를 입혀 새로운 감각으로 치고 나와야 한다. 그녀의 시가 지금 불려지는 까닭은, 사람이 겪는 보편적 정서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시는 삶의 구체적 장소에서 태어나며 실존을 감각화할 때 빛난다. 그녀의 서정은 사람과 길이 만나 시가 되며, 그 시는 다시 ‘허무’의 노래로 울려 퍼진다. 그녀의 시는 밤하늘 달빛의 순행을 따라 도는, 인간의 영고성쇠를 깨닫게 한다. 어떤 작품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어떤 시는 답답하던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그녀의 언어가 기교를 버린 점은, 그만큼 시와 삶이 순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좋은 시인은 세계를 향해 자신의 이야기를 속삭일 줄 안다. 그녀의 시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시적인 인식, 사물에 대한 시각, 서정의 빛깔을 독창적 방식으로 그려 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