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 출간 후 32년
일본어 원서가 ‘이와나미신서(岩波新書)’로 1993년 10월 출간된 지 32년이 지났다. ‘21세기의 교양신서’라는 이와나미신서의 다짐처럼 일본의 근대건축사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로서 건축 전공자는 물론 일반 대중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로서 꼽히는 책이다. 번역의 저본으로 삼은 2019년 출간본이 20쇄라는 것에서 근대건축 통사를 다룬 이 책의 독자층이 어느 정도로 두터웠고 지금도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건축 역사·이론 연구자들도 대부분 이 책을 읽었거나 알고 있다.
저자인 후지모리 테루노부(藤森照信)는 도시와 건물의 이모저모를 탐색하는 ‘도시·건축 탐정’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도쿄의 서양식 건축물 탐사 기록인 《건축 탐정의 모험(建築探偵の冒険)-도쿄 편》(1986),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하지만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패턴을 분석한 《도쿄 거리 박물지(東京路上博物誌)》(1987)가 출간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그의 탐정 여정을 흉내 내며 자신만의 도시 탐사 방법을 확장해갔다. 또한 나무 위에 올린 독특한 차실(茶室)이나 정형화된 틀을 벗어난 미술관, 주택 등을 디자인한 건축가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물론 그는 건축사를 주 연구 분야로 삼은 연구자이다. 현재는 에도도쿄박물관 관장으로 있다.
건축 잡지 《미로》의 박정현 편집장은 두 번째 호인‘일본’ 편을 엮으면서 “일본은 한국 헌대건축의 가장 큰, 동시에 가장 감추어진, 또는 감추고 싶었던 타자였다”고 밝히면서 지난 세기 한국건축의 주요한 분기점에는 일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말한다. 굳이 이 글을 인용하지 않아도 우리의 근대를 제대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흔적을 함께 언급할 수밖에 없다. 현존하는 건축물 가운데에서도 한국은행 화폐박물관(다쓰노 킨고, 1912) 문화역 서울284(남만주철도주식회사, 1925), 신세계 헤리티지(히라바야시 킨고, 1935) 등 일본인 건축가 손에 의해 지어진 건물이 여전히 우리 도시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박동진이나 박길룡처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근대건축가로 꼽히는 이들 역시 일본에서 경성에서 설립한 경성공업전문학교 출신으로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건축 기술교육을 받았다.
이 책이 일본의 근대건축 통사이지만 우리의 근현대건축을 이해하기 위한 참고도서로 삼아야 하는 이유이다.
한국어판에만 있는 내용
상[바쿠후(幕末)·메이지(明治) 편], 하[다이쇼(大正)·쇼와(昭和) 편]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원서를 연속성이 깨지지 않도록 한 권으로 통합 출간했다. 그림 설명에서는 건물의 위치와 현존 여부, 건축 연도를 표기해 본문을 뒤적이지 않아도 어느 시대의 어떤 특징을 가진 이미지인지 바로 알 수 있게 했다. 또한 일본의 근대사, 정치 사회에 이해를 돕기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옮긴이 주 형태로 설명을 추가했다.
무엇보다 부록으로, ‘책에 나오는 일본의 근대건축’, ‘책에 나오는 주요 인물’을 표 형식으로 덧붙이고 언급된 쪽수를 명기하였다. 근대건축 부분에서는 현존 여부는 물론 현재 명칭, 주요 특징을 추가해 건물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구성했다. 인물 부분은 일본인과 일본 이외 나라 인물로 구분해 생몰년과 교육 경력, 주요 역할을 정리해 놓아 부록 부분만으로도 일본 근대건축의 주요 건축물과 인물을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일본인들은 이제 막 개항한 거류지에 처음 등장한 베란다 콜로니얼을 보았을 때, “이것이 서양인가?”라는 강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때의 기억은 1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며, 대다수는 베란다가 딸려 있는 서양관을 유럽에서 건너온 멋진 건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파리나 런던에는 없다.
_29쪽에서
지구를 동쪽으로 돌아온 루트에서는 ‘베란다 콜로니얼’이, 서쪽으로 돌아온 루트에서는 ‘비늘판 콜로니얼’과 ‘목골석조’가 각각 상륙하며, 결국엔 베란다와 비늘판이 결합하여 ‘비늘판 콜로니얼’이 탄생한다. 이 네 가지 건축군이야말로 일본인이 처음 만난 서양관이다.
_79쪽에서
이제 막 에도에서 도쿄로 이름을 바꾼 이 도시에서 두 작품(쓰키지 호텔관, 제일국립은행)은 일본 기요우후우 건축의 출발점이 된다. 시미즈 키스케가 요코하마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도쿄에 내놓은 기요우후우의 영향은 결정적이었다. 이를 통해 도쿄 시민들은 새로운 시대의 이미지를 볼 수 있었다.
_122쪽에서
콘더가 일본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전하고자 한 것은 건축의 본질에 대한 통찰로, 그는 이를 ‘미’라고 보았다. 그리고 ‘미’는 고딕이나 클래식 같은 역사적 건축양식 속에 있으며, 그것을 제도판 위에 구현할 수 있는 자가 바로 ‘아키텍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_205쪽에서
1세대 건축가들은 각자 새로운 국가가 태어나는 과정을 내부에서 직접 체험한다. 그들에게 메이지 국가는 그들의 인생과 밀접하게 얽힌 존재였다.
_301쪽에서
2세대는 자신들의 기반과 내면을 주시하며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내성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사회와 건축’, ‘기술과 표현’, ‘미국적 실용성’이라는 테마를 탐구하고 새로운 감성에 눈을 떠서 ‘아르누보’를 다룬다. 또한 전 세대로부터 이어받은 유럽건축의 갱신에도 매진한다.
_310쪽에서
메이지 말년 이후 일본의 역사주의는 유럽과 마찬가지로 모던 디자인의 등장에 의해 위협받기 시작하지만, 이 시기에 건축계의 주력인 2세대와 3세대는 모던 디자인의 동향을 강하게 의식하면서도 역사주의에 머물면서 어떻게든 새로운 활력을 얻기 위해 활기찬 미국으로 눈을 돌려 배운다.
_388쪽에서
모던 디자인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2세대 이후 다이쇼에 등장한 청년 건축가들이다. 이들은 선행 세대가 아르누보에서 한 것처럼 단순한 감각만으로 모던 디자인에 무턱대고 뛰어들지 않았다. 그들은 건축을 축하는 마음의 본질부터 새롭게 바꾼다.
_477쪽에서
일본의 표현파는 독일과 네덜란드의 표현파를 비롯한 제체시온 등 유럽의 모던 디자인에서 많은 것을 배우지만, 단순히 흉내 내거나 베끼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까지 깊이 파고들어 공명하면서, 거의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_487쪽에서
마치 세탁 후 다린 듯한 순백의 평탄한 벽이 빛을 반사하며 빛난다. 인테리어는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빛이 풍부하게 들어오도록 해서 하얗고 밝고 청결함만을 강조하고 있다.
_523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