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고 귀여운 게 최고
모두가 작고 귀여운 것을 선호한다. 단, 조건이 있다.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보기에 좋아도,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워도, 통제할 수 없는 존재 앞에서 느끼는 것은 애정에 앞서 미움과 분노다. 이 소설은 작고 귀여운 것들을 사랑하되, 자신의 통제 밖으로 조금만 벗어나도 지금까지 줬던 사랑을 모조리 거두어들일 수 있는 ‘조건부 돌봄’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돌봄의 목적은 일방적 시혜나 의존적 상태의 고착화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돌봄의 받는 상대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과 훈육이 핵심이다. 그럼에도 돌봄이 의존과 고립의 동의어로 취사 선택되며 교육과 훈육의 역할이 사라져 가는 현상은 만성적인 문제로서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한다. 이 소설은 잘못 유통되고 있는 ‘돌봄’의 의미와 실행에 경종을 울린다.
■ 햄스터 3부작
『작고 귀엽고 통제 가능한』은 5 편의 연작소설로 구성되었으나, 각각의 작품은 정교하고 드라마틱하게 연결되어 있다. 큰 주제 안에 느슨하게 연결된 여느 연작소설과는 차원이 다르다. 독자의 시선을 먼저 사로잡는 것은 「돌아온 햄스터」, 「햄스터 잠들다」, 「달려라 햄스터」, 이른바 햄스터 3부작이다. 이 3편은 돌봄에 내재된 권력 관계를 ‘소설 속 소설’ 형식으로 보여 준다. 주인공 현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잃어버린 동물에 대한 소설을 쓰기 위해 글감을 찾던 현수는 우연히 햄스터를 잃어버린 여자 혜원을 만난다. 혜원과 가까워진 현수는 자신의 집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고급스러운 혜원의 아파트를 부러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월세방보다 그 집의 햄스터 케이지가 더 좋다고 생각하던 현수는 혜원의 햄스터가 ‘된다’.
햄스터가 된 현수는 안락한 케이지 생활이 만족스러우면서도 아직 완성하지 못한 소설이 자꾸 눈에 밟혀 쓰던 작품을 이어 간다. 그러나 혜원은 그가 쓴 소설에 분노하며 햄스터가 된 현수에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소설을 쓰라고 강요한다. ‘현수 햄스터’가 반항하자 혜원은 그간 현수 햄스터가 누리던 것들을 빼앗는다.
현수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쓰고자 하는 욕망과 계속해서 달콤한 돌봄을 받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현수는 어떤 소설을 쓰게 될까? 그 소설은 어떤 내용이어야 할까? 현수와 혜원의 이야기, 현수가 쓰는 소설, 이 두 개의 현실이 뒤섞이는 이야기로 이어지는 ‘햄스터 3부작’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돌봄의 의미를 비유적으로 보여 준다.
■ 어느 초등 교사의 진술, 혹은 절규
7년 차 초등 교사로 재직 중인 현수의 사촌형이 교실을 찾아온 아동학대 조사관에게 가르치는 일에 대해, 아이들과 그 부모에 대해 진술한다. 부모가 원하는 교육과 교사가 생각하는 교육이 어긋나고 그 갈등이 곧장 ‘법적 조치’ 단계로 넘어가기 십상인 현재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보여 주는 이 교사의 진술은 그동안 억눌려 왔던 많은 교사들의 비망록처럼 비장하고 절망적이다. ‘햄스터 3부작’이 주고받는 권력관계 속에서 돌봄의 작동 방식을 보여 준다면, 4장에서는 한 교사의 진술을 통해 가르침을 행하기 힘든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 징그럽고 통제할 수 없는 진실
초등학교 4학년인 미주는 아버지와 단둘이 산다. 엄마는 어린 동생을 데리고 오래전에 집을 나갔다. 학교에 가던 미주는 어미 햄스터와 갓 낳은 새끼들이 들어있는 상자를 발견하고 아빠 몰래 가져와 키운다. 햄스터를 학교에 데리고 간 미주는 이웃에 사는 불량한 형제에게 햄스터를 빼앗긴다. 형제는 아이 특유의 무심함으로 햄스터를 해부하고, 햄스터를 돌보는 미주에게는 점점 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나 마냥 ‘작고 귀엽고 통제 가능한’ 줄로만 알았던 범주에서 벗어난 햄스터를 알게 되면서 미주는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며 자립의 세계로 한 걸음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