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일단 현존성의 사라짐이라고 잠정적으로 정의해본다. 그렇다면 실종의 의미에 대해 묻는 것은 현존의 방식, 그것의 의미를 묻는 작업과 나란히 간다. 사람들은 어떻게 현존하는가?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절대명제에 의거한다면 그것은 같이 있음으로써이다. 같이 있는다는 것, 그것은 너와 내가 서로 보고 말하고 듣고 더듬는 등의 감각적 접촉의 범위 안에 같이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사람의 존재의 의미와 정체성이 나와 타자의 공존과 교환으로 수립되는 것임을 감안할 때 현존성이란 모든 사람에게 필수적인 실존의 범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감각적 접촉의 장으로만 제한된 현존성이란 우연한 현존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필연이 되고, 또 이 필연을 바탕으로 너와 내가 유의미한 간주체적 실존을 이루기 위해서 그 현존의 장은 언어를 매개로 하는 의사소통의 장으로 옮겨져야 한다.
그러나 의사소통의 장이 현존에 주어진 약속의 장이라 해도 현존에서 실존으로 나아가는 길이 언제나 넓고 시원하게 뚫려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존의 장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는 일상성의 공간에서 그 길은 다름 아닌 일상성 자체에 의해 언제나 닫혀 있고 가려져 있다. 일상성의 공간으로 축소된 현존의 장에서 언어는 존재를 가리키는 개시(開示)의 도구이기를 그치고 존재 망각을 부추기는 은폐의 도구로 전락한다는 것, 이와 더불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말 또한 요설과 잡담으로 타락해버림으로써 현존에서 존재로 나아가는 길은 더욱 진한 어둠에 잠겨버리고 만다는 것은 우리가 하이데거의 철학을 통해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거울로 삼아 우리의 삶의 모습, 그리고 이에 겹쳐 있는 일상성의 모습을 비추어보아야 한다는 실존적, 윤리적 명제를 마주하게 된다. 우리의 일상성의 공간은 어떠한가? 과연 그것은 우리의 실존적 도약을 약속하는 성취의 장인가, 아니면 그것을 좌절시키는 감옥인가? 만약 후자라면 거기서 벗어나 존재의 전환을 이룰 수 있는 해방의 통로는 있는가? 과연 어떤 방식의 삶이 그 탈출구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인가? 『플라나리아』에 수록된 전상국의 소설들이 긴밀한 내적 연관을 통해 집요하게 추궁하는 물음들은 대략 이렇게 정리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념적인 논의가 아니라 전상국의 소설들에 입각하여 이러한 문제의식이 어떻게 구체화되어 있는가를 살펴보고, 문제 제기 수준을 뛰어넘는 문학적 실천의 지향점에 대해 성찰해보는 일일 것이다.
나날이 비속해지는 일상과 천박해지는 언어 현실, 그리고 그 속에서 흐려져가는 존재의 의미라는 우울한 현대의 풍경을 배경으로 삼아 전상국은 ‘실종’의 테마를 통해 그것으로부터의 탈출과 존재 회복의 가능성을 꾸준히, 단계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이 실종의 테마를 인물들의 행위에 뒷받침된 의지의 실천적 관점에서 해석할 때 그것은 주변화의 의지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매화 사랑」에서 여자는 도시와 가정이라는 중심을 버리고 산골 마을로 찾아온 것이고, 남자 또한 생의 끝자락이라는 변두리에 처해 있는 인물이다. 다시 실종의 테마와의 연관에서 볼 때 이 변두리의 의미는 실종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장소로서, 현존도 아니고 부재도 아닌, 현존과 부재가 서로 겹치며 어른거리는 흔들림의 지점으로서의 의미일 것이다. 그것은 어떠한 안정성도, 확실성도 지니지 못한다. 그 지점을 매개하는 사물-언어 또한 마찬가지다. 그것은 나에게만 들리는 내면의 음성을 통해 전달되는 언어가 아니라 나와 타자 사이에 걸쳐 있으면서 그 사이를 모호하게, 그러나 그럼으로써 더욱 충만하게 열어젖혀주는 언어다.
“「물매화 사랑」 「소양강 처녀」 「플라나리아」 「온 생애의 한 순간」 「이미지로 간다」 등 다섯 편의 단편이 바로 이제까지의 두터운 외투를 벗고 가벼운 걸음으로 창의의 신바람을 찾고자 했던 작품들이다.
중편 「한주당, 유권자 성향 분석 사례」도 세태를 빙 둘러 찔러 얘기하고 싶은 그 능청에서 앞의 작품들과 결을 같이할 것이다.
때맞춰 「플라나리아」로 현대불교문학상과 이상문학상 특별상 등 한 해에 두 개의 문학상 수상이란 그 우연찮은 일이 글쓰기의 즐거움을 크게 보탰다.
떠나거나 사라지기, 그리하여 그 생사를 알 수 없는 잠적 혹은 실종은 연고자는 물론 제삼자들을 고문하고 각성케 한다. 사라진 것에 대한 그리움 혹은 절실한 애탐에서 그 일의 개연적 진실 찾기, 그 긴장으로 내 소설 미학의 때깔을 얻고자 했다.
실종, 미제의 미스터리에 맞는 낮고 어두운 서사 톤을 찾아 이것이 내 마지막 작품이 될 수 있다는 회심으로 쓴 「너브내 아라리」 「실종」 등 두 편의 중편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네 지난한 현대사의 그렇고 그런 역사성 그늘 뒤지기라는 면에서 링반데룽, 그러나 그 걸음이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는 나름의 자위만은 유효하다.” _‘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