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동학대 가해자 열 명 중 일곱 명이 친부모야.
그게 현실이라고.”
가장 안전한 곳은 집,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엄마?
나의 뿌리가 뒤틀릴 때 다가오는 극한의 공포
서른여섯 싱글맘 영주는 아들 선호가 커 가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점점 힘에 부친다. 그러다 엄마를 이성으로 대하는 아들에게 수치심을 느낀 일을 계기로 한계에 다다랐음을 인정한다. 궁지에 몰린 영주는 이십여 년 전에 떠난 친정엄마를 떠올린다. 꿈과 현실을 잘 혼동하는 딸과 여섯 살이지만 폭력성을 드러내는 손자를 편견 없이 대해 줄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렇게 세 사람은 영주가 어릴 때 살았던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지금의 영주는 달랐다. 선호를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었다. 한편으론 엄마에게 첫 번째 기회를 주고 싶기도 했다. 엄마가 아닌 친정엄마가 될 기회. (73쪽)
평화도 잠시, 매일 거듭되는 악몽에 영주는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진다. 매일 밤 살려 달라고 애원하며 자신을 찾아오는 그 아이는 누구일까? 용기 내 악몽의 흔적을 따라가던 영주는 이 집에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커다란 노간주나무가 있었다는 것 외엔 아무 기억도 남아 있지 않다. 한편 선호의 몸 여기저기에서 학대의 흔적이 발견되고 친정엄마가 사용하는 방에서 동물의 창자, 향, 짚더미 등 수상한 물건들이 나온다. 그때 불현듯 잃어버렸던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과거 친정엄마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일이.
영주는 친정엄마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외쳤다.
“나도 죽이려고 했잖아. 열네 살 때 계단에서 밀어서.” (227쪽)
● “나쁜 기억은 다 꿈이란다.
전부 잊고 새로 태어나는 거야.”
나를 낳은 엄마도, 내가 낳은 아이도, 그리고 나도…
모든 믿음과 예상을 깨뜨리는 예측불허의 미스터리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우리는 세상을 경계 지어 살아간다. 확실한 기준을 갖고 옳고 그름을 구분하면 삶이 더 선명해지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준은 누가 만든 걸까? 기준이 분명할수록 삶은 정말 더 또렷해지는 걸까? 그렇지 않다면…? 『노간주나무』는 너무 단단해서 의심조차 해 보지 못한 믿음을 뿌리부터 흔든다. 가령 엄마는 나를 사랑할까, 집은 나를 지켜 줄까, 내 아들은 나를 엄마로 바라볼까 같은. 작가는“『노간주나무』는 결국 ‘경계’에 대한 이야기다. (…) 경계를 명확하게 나누면 나눌수록 이상하게도 불행해졌다”(「작가의 말」에서)라고 말하며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 왔던 존재들이 예고 없이 나를 공격해도 과연 경계 안에 설 수 있는지 묻는다.
“엄마도… 나 죽일 거야?”
영주는 선호의 침대 밑에서 낯선 동화책을 발견했다. 영주가 읽어 준 기억은 없으니 친정엄마가 읽어 준 모양이었다.
‘노간주나무.’
엄마가 아들을 죽여 수프로 만든다는 엽기적인 내용이었다. (101쪽)
노간주나무가 있는 집에 사는 세 사람을 다루기 때문에 스토리가 밋밋하고 인물도 단순하다고 오인할 수 있다. 그러나 각 인물이 숨기고 있는 저마다의 비밀과 이로 인한 의혹이 차례차례 교차하며 드러나는 과정에서 완성되는 서스펜스는 압도적이고 독보적이다. 어떤 소설과 견주어도 빼어난, 잘 쓰인 미스터리 소설이다. 작가가 겹겹이 쌓아 놓은 스토리가 마침내 폭발하는 순간 독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견고하게 쌓인 일상의 안온함에 균열이 가고 부서지는 과정을 치밀하게 펼쳐내는 작가의 솜씨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 심사평
한집에 사는 가족들의 관계가 부딪치면서 가족들만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이 열지 말아야 할 어둡고 잔혹한 과거의 기억까지 들추고 만다.
- 소설가 서미애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또 믿어야 하는 존재인 엄마를 의심해야 하는 딜레마를 극적으로 몰고 가는 압도적이며 저돌적인 이야기.
- 소설가 주원규
비틀린 애정과 집착, 두려움을 탁월한 심리 묘사로 풀어낼 뿐만이 아니라 오컬트까지 더해져 더욱 서늘하고 긴장감 있는 서스펜스가 완성된다.
- 콘텐츠 제작사 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