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 문학사 혹은 시사를 기술하는 데 있어서 빚어지는 관점의 혼선과 더불어 또 하나 주목해야할 것이 근대의 기점에 관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 문학계에서 근대의 기점은 크게 세 층위로 논의되어 왔는데, 영정조 기점론과 갑오경장 기점론, 개화기 기점론 등등이 그러하다. 근대의 시작점에 대한 이 관점들은 모두 그 나름의 정합성을 갖고 있기에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문학이 갖고 있는 장르론적 관점에 기대게 되면, 가장 설득력있는 근대의 시작은 아마도 영정조 시대가 아닌가 한다. 이런 단정의 근거는 시대 환경과 문학 양식의 변화들이 모두 근대적인 것과 어느 정도 부합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근대란 생산 양식의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의 진행과 시민 계급의 등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물론 영정조 시절에 자본주의의 완전한 성숙과 시민 계급의 형성이 완료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기점이란 흔히 시작이나 단초를 말하는 것이고, 그런 입론에 설 때, 영정조 시기는 근대 자본주의가 서서히 싹튼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