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도 외롭지 않고 혼자라도 혼자가 아닌 사람이었다오”
국민 시인 나태주가 54년간 써 내려간 삶의 노래
허기진 몸을 순하게 감싸는 흰죽 같은 시편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이었다. 사흘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다. “이미 죽었을 사람”이라고 했다. 수술은 하지만 이후는 목숨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했다. 병명은 담즙성 범발성 복막염. 시인이 중환자실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사람들은 장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인은 그런 자신 곁에서 간호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신에게 기도하는 시 한 편을 썼다. 그 시의 제목은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그는 처음 선보이는 산문시집의 표제작으로 이 시를 택했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는 나태주 시인이 1971년 등단 이후 54년간 펴낸 50권이 넘는 창작 시집에서 산문시만을 추려 엮은 기념비적인 책이다. 솎아내고 비워낸 어사를 써온 시인은 간간이 산문시를 써왔는데, 그 산문시들이 한 권의 시집이 되기까지 반세기가 걸렸다. 그리하여 이 시집은 첫 시집을 자비로 출판해야 했던 무명 시절에 쓴 시 〈꽃밭〉부터 유명한 시인이지만 여전히 유용한 시인이 되기를 꿈꾸는 최근에 쓴 시 〈흰죽〉까지 망라하여 그의 시력(詩歷)을 고스란히 응축해 보여준다.
시집은 총 5부로 나뉘어 발행 순으로 구성되었다. 1부 ‘우리가 눈물 글썽여짐은’은 1970~1980년대, 2부 ‘웃을 수밖에 없었네’는 1990년대, 3부 ‘당신이 오셔서 읽어도 좋겠소’는 2000년대, 4부 ‘짧지만 짧지 않은 인생 드라마’는 2010년대, 5부 ‘참 다행한 일이다’는 2020년대에 쓴 시를 담았다. 그중 5부 끝에 〈숲〉〈막동리의 아이들〉〈바다 2〉〈토담집〉〈계수씨 2〉〈편지를 대신하여〉 등 지금껏 어느 시집에도 수록하지 않은 산문시를 수록했다.
어렵지 않은 언어로 어려운 마음을 보듬어온 시편들은 “쓸쓸하고 서글프고 외롭고 적막한”(〈골목길〉) 인생을 노래하면서 동시에 “사람한테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걱정되는 사람〉)을 소망한다. 그것은 “여보, 아는 사람들 만나 끼니때가 되거든 밥이라도 자주 먹읍시다. 우리가 세상에 없는 날 사람들 우리더러 밥이라도 같이 먹어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게”(〈우리가 세상에 없는 날〉)라는 다짐으로 단단해진다.
“여보, 우리가 가진 것 둘이 있다면 그중에 하나는 남에게 돌립시다. 우리가 세상에 없는 날 사람들 우리더러 자기가 가진 것 나눈 사람이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게.// 여보, 무언가 하고 싶은 말 많은 사람 만나거든 그 사람 말이라도 잘 들어줍시다. 우리가 세상에 없는 날 사람들 우리더러 남의 말 잘 들어준 사람이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게.”(〈우리가 세상에 없는 날〉)
“목숨 가진 한 사람이 목숨 가진 한 사람을 알아준다는 것”
다정을 잃지 않는 연약한 존재의 윤리
기꺼이 곁을 내어주는 사람으로서 사는 일에 관하여
우리는 고달플 때마다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으며 위로를 받아왔다. 시인의 시는 가식이 없고 울음이 있기 때문이다. 울었던 시절을 잊지 않고 주변의 “눈물 어린 눈”(〈별〉)을 외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의 시를 통해 “어리고 깨끗하고 사랑스럽던”(〈사범학교 동창회〉) 모습을 반추하고, “이렇게 살아 있는 사람이어서 고마울 뿐”(〈강연 출근〉)임을 깨우치고, 모든 게 하찮고 보잘것없다 여겨질 때 “당신을 사랑해요. 그건 앞으로도 오래 그럴 거예요”(〈바람〉)라는 말을 떠올리고, ‘사람다움’이란 무엇인지 느끼고 자문한다.
우리는 그의 시를 읽으며 으스대는 삶과 겸손한 삶, 끌려가는 삶과 이끌어가는 삶, 사랑하는 삶과 사랑을 등진 삶의 차이를 그리게 된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치욕과 고통을 주는 사람으로 힘겨워 헐떡이는 지구에 너무 오래 빌붙어 사는 목숨인지 심각히 한번 생각해”(〈요절〉)보며, 위에 올라서서 굽어보는 것이 아닌 아래 앉아서 마주 보는 것의 슬픔과 기쁨, “더욱 넓고 환하고 가득”(〈찡코〉)한 사랑이 필요함을 알게 된다.
그간 시인은 기도하듯 시를 써왔고 고해하듯 내면을 풀어놓았다. 궁극에는 따뜻한 인간성과 무해한 식물성을 노래했다. 그는 젊어서 느낀 것, 아파서야 배운 것, 여전히 쓰면서 살아내는 것을 기록하며 그것을 시로 승화했다. 어린아이처럼 “한들한들 살지 못했을까? 몇 줄짜리 시를 쓰고서도 꼬박꼬박 이름 석 자, 끼워 넣어 세상에 날려 보내며 오십 년을 고역으로 버텼을까!”(〈한들한들〉) 반성하며, 너무 잘하려고 잘되려고 잘살려고 애쓰지 말고 좋아하는 대로 살라고 온유한 말을 건네왔다.
이제 자신은 노시인이지만 시를 쓰려고 “늙은 아이”가 되었다고 말하는 시인 나태주. 그의 시집에 해제를 붙이는 것은 언어의 울타리에 시를 가두는 일이 될까 신중해지거니와, 조심스럽게 그의 산문시집을 한 구절로 함축하자면 ‘허기진 몸을 감싸는 흰죽 같은 시’라 적어본다. 화려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고, 도파민을 과하게 분출시키지 않고, 기분 좋게 스미며 지친 몸을 다독이는 시편들 말이다.
“끝내 나는 조그만 시인이 될 수 있었다. 오늘날 길가 보도블록 사이에 버려진 채 피어 있는 저 풀꽃들을 본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산골의 물소리, 새소리를 듣는다. 그들에게 하늘의 축복은 없을 것인가. 아니다. 그들에게도 응분의 축복과 보살핌과 사랑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무 그들을 안쓰럽게 여길 것까지는 없다. 그들도 오늘 그들 목숨의 최상을 살고 갈 뿐이다. 그들도 나처럼 이 땅에 나와 조그만 시인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조그만 시인〉)
“실로 울부짖어야 할 분노의 불길을 맞이하여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게 해주십시오. (……)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짐스러운 것이고 서로 기다리며 생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루하고 오히려 아픈 형벌인지 자각했을 때, 차라리 메마른 땅에 엎디어 몇 날 몇 밤을 혼자 울 수 있는 은혜”(〈낮은 기도〉)를 달라는 시인 나태주. 그 조그만 시인이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물어온 것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사람은 어떻게 사람이 되는가. “목숨 가진 한 사람이 목숨 가진 한 사람을 알아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편지를 대신하여〉)인가. “인생의 끝날, 우리 같이”(〈새벽 감성을 당신에게〉) 미소 지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의 첫 산문시집의 제목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