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 최초의 단행본 『생명의 과실』 출간 100주년 기념 작업
결락된 부분 보완해 사료적 가치 높여
수록된 소설 중 「의심의 소녀」는 김명순이 1917년 월간 잡지『청춘』의 문예작품 현상공모에 당선한 단편소설로, 김명순에게 ‘한국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라는 타이틀을 쥐여준 작품이다. 1926년 8월 17일부터 9월 3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김명순의 대표작 「나는 사랑한다」는 연재 중 순서가 엉기는 일련의 편집 사고가 있었는데 이번 작업을 통해 박소란 시인이 작품의 내용을 살펴 순서를 바로잡았다. 김명순이 오래 천착해온 주제인 ‘사랑’을 절규하는 마지막 장면은 한창 작품활동을 하던 당시 자유로운 사상으로 세상과 싸워야 했던 작가 본인의 애절한 부르짖음으로 들리기도 한다.
근대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작 「외로운 사람들」은 1924년 4월 20일부터 6월 2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경장편 분량의 소설로, 놓치지 말아야 할 수작이다. 특히나 이 소설은 마지막 부분인 43회가 결락되어 그간 그 끝을 확인할 수 없었는데, 박소란 시인의 노력으로 이번 기회에 해당 부분을 찾아 마지막 장면을 보완했다. 또한 김명순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어로 쓴 소설 「인생행로난」을 찾아 문학평론가 권선영의 번역으로 이번 소설집에 함께 묶은 것도 특이할 점이다. 이 소설집에는 김명순의 작품으로 연극 무대에 오른 적이 있는 배우 옥자연이 추천의 글을 덧붙였는데, 현대의 촉망받는 배우가 백 년 전 배우로도 활동했던 김명순과 글로써 조우하며 뜨거운 감상을 전한다.
배우 옥자연 추천! “김명순의 글은 불더미 속에서 사랑한다, 사랑한다 외치는 소리 그 자체이다.”
한국문학의 든든한 자부심, 김명순의 재발견
김명순이 “시대가, 사회가 허락하지 않는 것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그치지 않는 이유”는 “영혼을 채우고 오롯한 한 존재로서 삶을 바로 세우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었다. 김명순의 이토록 큰 사랑을 이제라도 나눌 수 있어 다행이다. 김명순의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조금 더 큰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문학을 지속하게”(박소란, 엮은이의 말) 될 것이다. 백 년 전부터 우리에게 ‘김명순’이라는 작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의 한국문학에 든든한 자부심으로 전해진다. 김명순의 작품을 읽어야 하는 여러 역사적인 당위성을 차치하고 그저 한 작가의 숭고한 내면과 아름답고 뜨거운 문장, 그 안에 담긴 거대한 사랑을 들여다보기 위해 독자들은 이 책을 집어 들게 될 것이다. 이 책에 마음을 쏟고 쏟게 될 것이다.
만일에 봄이 나를 녹이면
돌 틈에서 파초 열매를 맺지요 맺지요
만일에 만일에.
만일에 좋은 때를 얻으면
바위를 열어 내 마음을 쏟지요 쏟지요
만일에 만일에.
-「돌아다볼 때」 수록 시 「만일에」 전문(190면)
엮은이의 말(부분)
언니의 사랑은 설움을 들쓰되, 끝내 강고합니다. 세상이 믿지 않는 믿음을 품고, 실현되지 못할 꿈을 붙들고 꿋꿋이 걸어갑니다. 온 마음을 쏟아, 쏟아…….
이 큰 사랑의 이야기를 이제야 비로소 나눌 수 있다니요.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한 김명순, 언니의 ‘첫’ 소설집! 언니의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조금 더 큰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겠지요, 문학을 지속하게 되겠지요. 문득 「돌아다볼 때」 속 소련의 방 머리맡에 족자로 걸려 있다는 롱펠로의 시 「화살과 노래」가 떠오릅니다. 그 시에는 허공에 쏘아올린 화살도, 허공을 향해 부른 노래도 땅에 떨어져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아주 오랜 뒤 한 그루 참나무 속에서/나는 그 화살을 찾았네, 여전히 부서지지 않은 채로/그리고 그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한 친구의 마음속에서 다시 찾았네.” 언니의 지극한 사랑은 언니를 아끼는 독자들께, 친구들께 조금도 부서지지 않은 채로 처음부터 끝까지 남김없이 가닿으리라 믿습니다.
-박소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