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방개 아저씨』는 한국 전쟁의 상흔과 사회의 외곽에 밀려난 사람들, 그리고 그들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따뜻함을 깊이 있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 권길주는 주인공 방개 아저씨라는 한 떠돌이 인물을 중심에 놓고, 한국 전쟁 이후의 농촌 마을과 그 속 사람들의 삶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며, 우리가 종종 잊고 사는 인간 존재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주인공 방개 아저씨는 어릴 적 소년병으로 전쟁터에 끌려갔다가 살아 돌아온 인물이다. 전쟁의 상처는 그를 정신적으로도 황폐하게 만들었고, 가족에게조차 외면당한 그는 끝내 집을 떠돌며 남의 집 일을 하며 밥을 얻어먹는 삶을 살게 된다. 짚가리를 겨울 잠자리 삼고, 밥 한 끼를 얻기 위해 열두 집을 돌아다녀야 하는 그의 삶은 극한의 가난을 상징하지만, 정작 방개의 말투나 표정, 행동에서는 삶에 대한 절망보다는 유머와 온기가 느껴진다.
작가는 방개를 단순한 비극적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 방개는 오히려 농담을 잘하고, 일에 성실하며, 남몰래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진달래꽃을 꺾어가는 로맨티스트다. 심지어 산에서 벌어진 성폭행 위기 상황에서는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여학생을 구하고, 자신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 청소년들과 맞서 싸운다. 이런 장면에서 방개는 비록 떠돌이지만 도리와 정의를 아는 사람, 진정한 용기를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소설 속 방개 아저씨 주변 인물들도 다채롭다. 덕구와 엉가, 그리고 엉가 엄마, 작가가 꿈인 청년 기환 등을 통해 작가는 각기 다양한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며 자신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다양하고 친근하게 보여준다. 특히 방개와 함께 이 소설의 근간을 이루는 덕구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알고 실천하며 사는 방개를 동경하고 지지하는 따뜻한 친구이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덕구와 방개의 우정은 우리에게 잔잔한 평안을 준다.
그 밖의 소설 속 많은 삶,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새벽부터 일하는 과부 박 권사나 술과 화투에 빠져 가족을 피폐하게 만든 유 씨, 눈 덮인 새벽에 소도둑을 쫓아 나서는 한 씨 어르신 그리고 자신의 고통을 웃음으로 감추며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 이들은 모두 전쟁 이후의 가난하고 피로한 삶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작게나마 돕고 살아간다. 여기에서 작가는 이들의 일상을 통해 그 시대의 공동체가 가진 따뜻한 온기와 인간애를 포착해 낸다.
이 소설은 방개 아저씨의 삶을 따라가며 과연 ‘존엄’이란 무엇인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독자에게 묻는다. 작가는 방개와 그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온기를 나누고, 사랑하며, 웃고 울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말하고자 한다. 전쟁과 가난이 인간성을 짓밟았던 시대에도, 어떤 이들은 끝내 그것을 놓지 않았고, 그들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소설 속 방개 아저씨의 삶을 통해,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작가는 방개의 삶을 빌려 조용히 말한다. “사람은 사람 곁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