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이란 삶이다.
: ‘생명(生命)’이라는 건 우리가 사는 ‘삶’이다. 이 삶에는 인간의 삶도 있고 인간 이외 타 생명체의 삶도 있을 것이다. 타 생명체라는 건 다시 말해, 인간을 둘러싼 자연이다. 자연에서 서식하는 식물이나 동물들의 생명과 인간의 생명을 생각할 수 있다. ‘인간과 타 생명체와의 관계’라는 것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선인들은 자연과 인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
서양의 자연관은 대개 이분법적 자연관으로 ‘인간은 인간이고 자연은 자연이다’라며 자연을 객관화하고 대상화한다. 즉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고 보기 때문에 자연을 연구한다. 자연이 어떤 법칙에 따라서 생성, 발전하고 있는 것인가 연구하고 관찰함으로써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려고 하는 건 서양의 자연관이다. 그런데 법칙을 발견하고 난 뒤에는 이 법칙을 이용하여 자연을 개조하고 정복한다. 말하자면 자연을 인간의 소비 목적이나 생산 수단으로 파악한다. 이를 이용해 인간 생활을 풍요롭게 하며, 이로 인해 옛날보다 훨씬 더 생활이 풍족하게 된다. 자연을 객관화시켜서 대상화한 뒤, 관찰하고 연구하기 때문에 자연과학이 발달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인간의 역사는 자연 정복의 역사’, ‘위대한 역사’라고 한다. 인간에게 험난한 재앙을 줄 수도 있는 자연, 그 자연의 법칙을 잘 알아서 자연을 정복해 나가는 게 바로 인간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이분법적인 자연관에 따르면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인간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개조하고 자연을 정복한다. 인간의 이익을 위한다는 건 곧 인간 생활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으로 이것이 서양의 자연관이다.
이에 비해 동양의 자연관은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해서 보지 않고 연속된 것으로 파악한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고 본다. 인간 사회의 법칙과 자연의 법칙은 하나의 일관된 원리에 의해서 통일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일관된 원리가 바로 성리학에서 말하는 천리(天理)다. 성리학자들이 ‘자연과 인간을 공(共)히 설명할 수 있는 큰 법칙이 뭐가 있나?’라는 고민에서 발견한 것이 바로 ‘천리’다. 천리라는 큰 법칙 또는 우주의 법칙을 발견해서 ‘인간은 이 법칙에 따라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즉, ‘천리에 순응해야 된다’고 하는 것이 동양적 자연관 중에서도 성리학자들이 생각하는 자연이다.
『시경』 「대아」 ‘한록편’에는 성리학의 슬로건이라 할 수 있는 ‘연비여천(鳶飛戾天) 어약우연(魚躍于淵)’이라는 구절이 있다. ‘연비여천’을 직역하면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다’이다. ‘어약우연’, 즉 ‘물고기는 연못에서 뛴다’라고 한다. ‘약(躍)’은 ‘뛰다’이고 ‘연(淵)’은 연못이다. 이 시는 주자(朱子)의 재해석을 거친 이래로 성리학자들의 슬로건이 된 것이다. ‘왜 솔개는 하늘에서만 나는가?’ ‘왜 물고기는 연못에서만 뛰는가’, ‘왜 물고기는 하늘을 날 수 없는가?’ ‘왜 솔개는 물속에서 헤엄칠 수 없는가?’ ‘천리가 그렇기 때문이다.’ 자연의 현상 앞에서 시인이 깨달은 것은 ‘이는 천리요, 천리는 곧 우주의 법칙이다’였다. 따라서 인간도 이 법칙에 따라야 된다.
인간 사회의 법칙에 천리를 대입해 보면,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해야 하는 일과 통한다. 만약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이는 물고기가 하늘을 나는 것과 같다.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하지 않으면 솔개가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과 다름없다. 모두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니 신하는 임금에게 반드시 충성해야 되고, 자식은 부모에게 반드시 효도해야 된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과 인간 사회의 법칙을 동일시하는 성리학자들의 세계관이다.
성리학자들은 자연으로 들어가 자연의 운행을 본다. 봄이 되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나뭇잎과 가지가 무성하며 가을이면 단풍이 들고 겨울이 되면 눈이 오는 자연의 계절 변화를 체감하면서, ‘아, 우리 인간도 자연의 저 엄격한 원리를 배워야겠다’ 이렇게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인간, 자연 그리고 기술 사이에서 어떤 관계를 선택할 것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천지간 만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가장 귀하다[天地之間 萬物之中 唯人最貴]”라는 성리학적 통찰은 인간을 중심에 두되, 자연을 존중하고 기술을 인간성을 위협하지 않는 방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자연을 단순히 인간의 이익을 위한 자원으로 보는 것을 넘어, 자연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동시에 기술은 인간의 삶에 유익한 도구로 남아야 한다. 또, 인간의 존엄성과 연결된 철학적 중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동아시아미래가치연구소 생명학 CLASS〉를 기획하며
: 오늘날 우리는 ‘생명’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지만, 그 의미를 깊이 성찰할 기회는 많지 않다. 근대 과학과 서구적 사유 속에서 정립된 ‘생명’ 개념은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들었지만, 동시에 인간과 자연, 기계와 생명의 경계를 엄격히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기후 위기, 인구 구조의 변화, 첨단 기술의 발전, 인공지능(AI)의 등장과 같은 거대한 전환을 맞이하면서, 기존의 생명관은 더 이상 충분한 설명력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다시금 묻는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생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가? 생명과 생명을 잇는 관계 속에서 돌봄과 책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기술 발전과 함께 생명윤리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미래가치연구소의 생명학 CLASS 시리즈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고자 기획되었다. 동아시아미래가치연구소는 동아시아적 전통 속에서 생명 개념을 탐구하고, 현대 과학기술 및 인문학적 사유를 융합하여 생명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시도를 이어가고자 한다. 이 강연록은 다양한 학문 분야의 연구자들이 주축이 되어 학술적,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생명을 해석하고, 현대 사회가 직면한 생명 관련 난제들을 조망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특히, 현재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돌봄(care)’과 ‘생명윤리(bioethics)’의 가치에 주목하며, 생명과 생명 사이의 관계성을 조명한다. 이 시리즈를 통해 우리는 근대적 생명관의 한계를 넘어, ‘돌봄’과 ‘생명윤리’를 중심으로 자연과 인간, 기술과 생명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한다. 생명에 대한 철학적, 윤리적, 사회적 논의를 확장함으로써, 보다 지속 가능하고 공생적인 미래를 설계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