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한다는 것은 언제나 마법의 선을 따라가는 것이다.” (들뢰즈와 가타리)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 지구 종말이 운위되는 한편, 그것의 증상처럼 한편에서는 전쟁 위기, 경제 시스템의 붕괴, 민주주의 붕괴 등 체제의 몰락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신흥 종교가 등장하거나 종교가 정치와 경제에 더 깊숙하게 개입하려 하는 현상이 발생하거나, 대안적 삶을 강구하기 위해 생태철학이나 인간과 비인간을 모두 아우르는 새로운 존재론 등의 신사상이 출현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 같다. 이 책 〈암흑 유물론〉도 그 흐름에 참가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사상이건 대안적 사상이건 그것은 둘 중의 하나다. 하나는 기존 세계에 불만을 갖고 그 체제의 붕괴를 가속화하는데 가담하되 전전의 가치나 체제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강력한 보수적 경향을 가진다. 가령, 신봉건주의와 같은 것이나 남성의 강력한 리더십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지배체제로 회귀하고자 하는 사상과 같은 것이 있다. 다른 하나는 소위 말하는 진보적 경향이다. 기존 세계에 불만을 갖는 것은 동일하지만, 위기와 붕괴를 막아낼 수 있는 사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현 시대는 이 두 경향이 어지럽게 경쟁, 병존하고 있다. 굳이 〈암흑 유물론〉을 분류하자면 후자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출발점은 진보적 경향과 조금 다르다. 〈암흑 유물론〉은 우리의 종말이 예정되어 있으며, 그 필연적 붕괴를 오히려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끝난 듯하고, 우리는 최후의 인간으로서 대지 위에 서 있다는 인식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최후의 인간이 할 일은 무엇일까? 저자는 인간 이후에 전개될 세계의 가능성을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을 주장하며, 우리가 잘 붕괴되고 잘 사라지기 위한 마지막 시도를 생각한다. 그 시도는 아마도 진보보다는, 인간 보다 더 나은 존재의 진화를 위한 예비적 돌연변이의 길이 될 것이다.
〈암흑 유물론〉은 밀교적 사유, 원시 의례, 고딕 예술, 애니미즘 등 기존의 유물론적 철학에서 도외시해왔던 것들을 탐구하면서 현대 유물론을 재구성한다. 저자는 ‘머리 없는 기사’를 중심 모티프로 삼아 세계와 인간의 비전을 잃어버린 존재가 어떻게 세계에 대한 ‘믿음’을 얻고 다시 세계와 교섭하고 계약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암흑 유물론의 전개를 통해 드러낸다.
저자 채희철은 조르주 바타유의 기저 유물론을 시조로 하여 물질과 정신, 생명과 비생명, 유기체와 무기물 등의 구분을 해체함과 동시에 물질성과 물질적 관계성 전부를 ‘계약’으로 규정한다. ‘계약’은 끈적하게 들러붙음, 묶기, 매듭 등의 연결-행위를 의미함과 동시에 전략과 계략 등 환경 적응력으로서의 물질의 적극적 행위주체성을 내포하는 개념이다. 즉, 암흑 유물론에 따르면 계략과 고뇌, 그에 따르는 속박과 매듭이 없는 물질이나 관계성은 없다. 이는 동물이나 무기물, 사물, 기후, 에너지, 인공물까지도 그 관계성을 물질의 적극적 행위로, 환경 적응력을 위한 계약의 일종으로 볼 것을 요청하는 사유다. 또한 고딕과 사도마조히즘을 국가-금융 자본주의 사회에서 만들어진 삶 일반을 구속하는 계약의 일종으로 분석한다.
더 나아가 〈암흑 유물론〉은 우리의 존재가 전체 환경에서 기생충적인 존재임을 오히려 적극 긍정하면서, 암흑 물질에서 태어나 결국 분해되고 소멸되어 다시 암흑 물질로 돌아가는 엔트로피의 압박을 받는 존재일 뿐임을 주장한다. 바타유의 소모의 경제, 선물, 희생 제의, 축제 등의 개념은 이 분해되는 암흑 물질의 존재론을 구성하는 원리로써 긍정된다. 모든 물질은 완전히 소모되어 우주 생성의 희생물 즉, 암흑 물질이 될 때 신성함을 획득한다.
〈암흑 유물론〉의 자본주의 비판도 그 점에 착안한다. 자본주의는 불멸의 영구화와 자동화를 추구하며 계급사회를 만들고 빈부격차를 만들고 노예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축적된 것의 완전한 소모를 통해 붕괴, 분해, 소멸되는 암흑 물질로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더 이상 생성도 창조도 일어나지 않으며 사회적 결속, 자연적 결속, 우주적 결속은 해체된다. 자본주의는 축적을 지속하고 체제를 지속하며 특정 주체가 세계를 여전히 지배하기 위해 전쟁, 공황, 화폐 조작에 의한 파산을 관리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반선물이고, 반축제이며, 반희생 시스템이다. 저자는 희생 제의, 선물 경제의 유물론적 현재성과 삶의 감각적·영성적 전환 가능성을 제안한다. 썩지 않는 화폐 대신 썩고 부패되고 암흑 물질로 돌아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경제 원리가 필요하며, 그것의 일례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보편적 기본소득이다.
〈암흑 유물론〉의 장점 중 하나는, 사유의 변화를 촉구하고 대안 사상을 구축하려는 기획들이 대체로 유물론을 표방하지만 자본주의 분석을 건너 뛰거나 일반론적 비판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는 것에 반해 자본주의 체제의 변화를 추적하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즉, 이 책은 최근의 유물론을 주장하는 이들과 달리 ‘돈’의 문제를 간과하지 않는다. 또한 저항운동과 현실 정치의 흐름을 비껴가지도 않는다. 이 책의 미덕은 존재론적·윤리적 차원의 실천과 객관적 실재적 현실 차원의 정치를 구분하고 양자간의 교합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비록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구상과 비전에 비판적이지만, 그 비판은 양의적이다. 저자는 그들이 충분히 무정부주의적이지 않으며, 또한 충분히 사회 민주주의적이지도 않다고 지적한다. 또한 뒤늦게 반자본주의 결벽증과 사회주의 정치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경향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저자는 커먼즈 공동체의 창조와 사회 민주주의적 시장 사회주의를 촉구한다. 쿠데타, 파시즘, 그리고 ‘남태령’과 ‘키세스’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특히, ‘남태령’과 ‘키세스’는 가능성의 우주와 실존적 영토를 구성하는 새로운 주체의 등장으로 분석한다.
이 책은 유령과 괴물 중 유령보다 괴물의 편을 든다. 좌파의 멜랑콜리가 소환하는 유령학을 완전히 소거하지는 않지만, 연금술의 본질은 괴물의 생성에 더 친화적이라 주장한다.
〈암흑 유물론〉은 암흑 물질, 기생충, 사도마조히스트, 변태성욕자, 돌연변이, 괴물들이 만들어가는 미래 신화다. 저자는 썩고 부패되는 것이 최고 원리로 작동하는 즉, 주권을 갖는 우주를 구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