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원의 큰글자도서는 글자가 작아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모든 분들에게 편안한 독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글자 크기’와 ‘줄 간격’을 일반 단행본보다 ‘120%~150%’ 확대한 책입니다.
시력이 좋지 않거나 글자가 작아 답답함을 느끼는 분들에게 책 읽기의 즐거움을 되찾아 드리고자 합니다.
“로아는 유기되었다. 내가 방치되었듯”
엄마의 ‘유기’와 ‘방치’에서 시작된 학대와 폭력
『로아』는 폭력의 연쇄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묻는 소설이다. 그런데, 언니가 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동안 그들의 부모는 무엇을 했는가. 한때 군중의 폭력을 응시하는 사진작가로 주목받았던 아버지는 상은과 다툼을 벌인 뒤에 죽음을 선택한다. 세상에서 자신 외에 소중한 것이라곤 없는 엄마는 태어난 지 몇 달밖에 안 된 로아를 지인의 집에 보내고 상은마저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그렇게 아버지의 돌연한 죽음과 엄마의 방기와 무관심 속에 자라온 상은은, 극도의 불안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괴물’이 되어간다.
7년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온 천진하고 해맑은 로아를 보면서 상은은 “공격하지 않으면 오히려 공격당한다고, 아름다운 것은 짓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에서 표면적으로 폭력의 주체는 언니 상은이고, 객체는 동생 로아이지만 이 모든 상황은 이를 방관하는 양육의 책임자, 즉 엄마에게서 비롯된다. 엄마 기주는 상은의 학대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합리화한다. 상은은 말한다. 로아는 ‘유기’되었고 자신은 ‘방치’되었다고. 기주가 제대로 된 관심과 사랑을 기울였더라면, 아버지가 상은의 말에 집을 나가 죽지 않았더라면 결과가 달랐을까. 어떠한 폭력 행위도 이해받을 수 없다. 그러나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짚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상은의 경우 폭력 행위는 양육자의 방치에서 비롯된다. “딸을 희생양으로 바치고도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도 없이 살아온” 엄마 기주가 폭력의 진짜 가해자이자, 가장 큰 학대자가 되는 것이다.
‘누가 나 좀 말려줘!’
무한히 증식하는 증오와 분노의 연쇄
그리고 로아는 폭력의 희생양이 된다. 상은에게 직접적인 폭행을 당하기 전부터, 이
미 로아는 가족으로부터 버려졌다. 로아가 집으로 다시 돌아온 것도, 기주가 새로 만난 남자 때문에 상은과의 사이에 갈등이 생겨서였다. 태어나자마자 유기된 아이가 이 세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란 없었다. 로아는 제가 당한 일에 의문을 표하기보다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인다. 미소만이, 들어주는 이가 없기에 함구하는 침묵만이 로아의 생존방식이었다.
날이 갈수록 상은은 로아에 대한 폭력의 수위를 높여간다. 성난 자신을 달래려고 로아를 때린 손에 용돈을 쥐어주는 엄마에게 복수라도 하는 듯이. 로아가 오기 전 어둠 속에서 홀로 눈물을 흘리던 상은은 제가 겪은 처절한 외로움을 로아를 통해 다 되갚아주리라 다짐한다. 누군가 자신을 돌아봐주는 유일한 순간이 바로 폭력을 행사할 때이고, 스스로의 존재감을 가장 강렬하게 확인하는 순간이 바로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힘을 가할 때라는 걸, 상은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상은은 통제와 지배의 권한이 주는 강렬한 쾌감에 전율하며 멈추지 못한다. ‘누가 나 좀 말려줘!’ 비명을 지르면서, 그렇게 자신 또한 폭력의 제물이 되어가고 있음을, 스스로 제 삶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나는 네가 되어본다. 너의 눈으로 나의 세상을 본다”
기억할수록, 내가 네가 될수록
나를 일으키는 뜨겁고 강렬한 폭발음
오랜 시간 학대받은 아이는 반항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고, 죽음에 가까운 어느 순간에 이르렀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겪어온 일들을 떠올린다. 기억을 불러온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던 시간을 뒤로 하고, 고통의 기억을 마주하기로 한다. “고통이 삶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없애려는 노력이 삶을 속”여왔음을 깨닫는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마침내 로아는 언니의 말을 거역하지 않는 착한 동생과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는 다정한 딸이라는 자신에게 씌워진 굴레가, 가족이란 이름의 창살조차 없는 끔찍한 감옥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폭력이 내린 뿌리는 길고도 깊었고, 불시에 닥치는 사고와도 같이 예기치 않은 순간 일상을 뒤흔든다. 지금까지의 로아의 삶이 정지된다.
이 소설은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도, 폭력의 속성을 주체와 객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 입체적으로 통찰하고 있다. “모두가 다 피해자인데 도대체 누가 가해했다는 말인가?”라고 말하며, 작가는 저마다 피해자를 자처하는 세상 속에서 자신이 겪은 고통과 슬픔에만 함몰되어 더 큰 폭력에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묻고 있다. 기주가 상은과 로아를 방치하고, 상은이 로아를 폭행하며, 또 학대받은 로아가 또 다른 폭력을 일삼는 지경으로 나아가는 장면 속에서, 어느 순간 우리 자신을 닮은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이 소설을 통해 폭력이 폭력으로 대갚음되는 연쇄를 끊기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기를 바란다. 폭력의 피해자이면서도, 어쩌면 가해자일지도 모를 우리 모두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