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지키는 존재를 위해
삶을 지탱할 원동력을 주는 이야기
주인공 리쓰코는 어릴 때부터 사람을 좋아했지만 지나치게 내성적인 성격 탓에 혼자서 무리를 지켜보는 삶을 살아왔다. 리쓰코는 독감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환자가 많은 것을 보고 그대로 발길을 돌리는, ‘기침 때문에 괴로운 자신보다 더 아픈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여기’(p. 60)는 인물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아픔은 묵묵히 견뎌내는 리쓰코의 모습을 보면 지나치게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나보다 다른 존재를 먼저 생각하는 착한 마음은, 리쓰코만의 용기이자 삶을 가치 있게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고양이는 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귓가에 울리던 환청이 진짜라면, 이 아이는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해 리쓰코에게 겨우 돌아왔으니 괜히 또 죽을 생각은 없을 것이다.
리쓰코는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자신도 죽을 수는 없다. (p. 62)
아픈 길고양이를 돌보며 집안의 화초를 살피고,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온 리쓰코의 삶은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그녀가 돌봤던 무수한 존재를 떠올리면 경이로운 마음까지 들게 한다. 나와 다른 대상을 보살핀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소설 속 리쓰코는 그 일이 정말 좋아서 하는 게 느껴지는데, 좋아하는 밀크티를 끓이고 달달한 디저트를 준비하며 아픈 고양이까지 돌보는 리쓰코의 모습은 생동감이 넘친다.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나와 다른 것을 소중히 하는 마음이 리쓰코의 세상을 지탱한다. ‘보이지 않아도 별이 저곳에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어.’(p. 311)라는 리쓰코의 독백처럼, 세상에 가려진 무수한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이 책은 삶의 의미를 다시 새겨볼 순간을 선물할 것이다.
생명에 대한 공감이 이 소설의 시작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이상한 카페 네코미미’
아동문학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작가답게, 장면마다 동화적 상상력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특히 그림책 《아기 고양이 토토》, 《레미 할머니의 서랍》, 《왕의 과자》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구라하시 레이의 삽화는 소설의 여운을 더욱 짙게 한다.
무라야마 사키만의 섬세한 묘사는 삶의 흔적이 베인 집안의 풍경과 그 안에 스민 향마저 생생하게 떠올리게 하며 맛과 긴밀하게 이어지는 기억까지 연결시킨다. 특히 리쓰코가 준비하는 요리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음식의 식감과 향이 머릿속에 맴도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작가는 맛을 통해 기억을 떠올려 본 경험을 소중히 느끼게 하며, 인물이 내면을 직면하는 순간까지 탁월하게 배치한다.
“생각지도 못한 병이 유행하면서 좀처럼 상황이 수습되지 않고, 바다 건너에서는 비참한 침략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일 많은 생명이 사라지는 것. 그걸 너무 가볍게 취급하는 것에 고뇌하고 신음하는 일이 많은 날들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사소하게 여겨지는 우리의 삶에 의미가 있다고 쓰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p. 350) _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의 말"에서 보다시피, 이 소설은 전쟁과 생명의 가치에 대한 고뇌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라는 걸 추측할 수 있다. 《밀크티와 고양이》는 마법사와 고양이, 요괴와 유령에서부터 신까지 나오는 소설이지만 그 누구도 악한 캐릭터가 없다. 이들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세상을 지키고 보살피는 존재들이다. 이처럼 우리와 다른 존재를 특이하거나 특별하다고 구분 짓지 않고, 보편적 존재로 여기는 마음가짐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든다.
씁쓸한 마음을 위로하고 내일을 향한 용기를 전해줄 《밀크티와 고양이》와 함께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지며 따뜻하고 향기로운 시간을 만끽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