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세계를 운반하는 밤의 기사
차는 운전자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품고 있다. 대리운전 기사인 ‘나’는 운전대를 잡는 순간 차주의 성격과 성향, 습관과 강박을 감각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리기사는 자신을 지우는 법부터 배운다. 달리는 차 안은 고요하기 그지없지만, ‘나’는 원치 않아도 들려오는 고객에 대한 정보를 지우고, 자신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자존심을 지우고, 그렇게 자신을 비워 내는 법을 배우려 분투 중이다. 침묵 속에서 치열하게 자신을 지워 나가는 대리기사와, 하루치 삶의 무게를 양어깨 가득 떠안은 고객이 앞뒤로 앉은 차는 도시의 혈관과도 같은 도로를 불빛으로 물들이며 목적지로 향한다. 마침내 고객의 집에 도착한 뒤 차에서 내리면, 도시를 누비던 하나의 작은 세계는 막을 내린다. 핸들을 잡는 대신 걷기 시작한 ‘나’는 또 다른 작은 세계를 만나기 위해, 그 세계를 이곳에서 저곳까지 운반하기 위해, 가벼운 반주를 하는 직장인들이 많은 서울역 인근 순화동, 서소문동, 중림동 일대를 하염없이 맴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동료들을 알아보면서, 그리고 그들을 그저 지나치면서. 도시의 밤은 이토록 길고, 치열하며, 고요하게 이어지고 있다.
■또 하루를 매듭짓는 마지막 표정
‘나’는 대리기사로 일하며 매일 자신을 지우는 훈련을 거듭하지만, 그럼에도 미처 없앨 수 없는 흉터들이 있다. 운전 중 갑작스레 앞 좌석으로 넘어오는 고객들의 무례, 대리기사로서의 평가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접촉사고, 아내의 수술 경과를 기다리던 병원 복도의 냄새. 이처럼 영영 지울 수 없는 상흔들은 뒷좌석의 고객 역시 품고 있는 터라, 기억이 불쑥 고개를 내밀 때마다 ‘나’와 고객의 얼굴은 나란히 외로워진다. 창문에 스치는 야경, 그 안의 수많은 사람과 기억 들을 배경으로 대리기사와 고객은 서로 하루를 끝맺으며 짓는 마지막 표정의 목격자가 된다. 떠올리는 장면은 저마다 다를 테지만 꼭 같은 표정이 되고 마는 이들의 얼굴은 도시가 기나긴 하루를 마치며 내보이는 마지막 모습이기도 하다. 그 눈빛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한 것은 이들의 고독이 곧 우리 자신의, 동시에 우리 곁의 얼굴들이기 때문이다. 늦은 밤 귀갓길 문득 쓸쓸함에 사로잡힐 때면 함께 『핸들』을 손에 쥐어 보자. 서로의 목격자가 되는 것만으로도 해소되는 감정들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