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 서울,
그곳에 뿌리내리는 일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서울은 언제나 ‘중심’으로 기능한다. 수많은 도시에서 사람들이 서울로 향하는 건, 그곳에 더 나은 삶이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에 도착한 지방인들은 곧 깨닫는다. 이곳은 환대의 도시가 아니라,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익명의 도시라는 것을.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고향도 이제는 마음을 붙이기 어렵다. 그렇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청춘들은 부유하고 흔들린다. 『이번 역은 서울역입니다』은 바로 그 경계 위에 선 존재들의 정체성과 소속감,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눌러야 했던’ 수많은 순간을 섬세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작품은 청춘의 상처나 고단함을 비극적으로 과장하지 않는다. 시영은 절망보다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를 택한다. 멀어진 친구와, 감당하기 버거운 노동, 외롭지만 익숙해진 도시의 밤 속에서 시영은 무너지기보다 ‘살아낸다’. 격렬하게 외치지 않는 이 감정은 절제된 장면과 간결한 대사 속에서 오히려 더 깊고 묵직하게 다가온다.
지금 당신이 있는 그곳은 ‘집’인가요,
아니면 아직 도착하지 않은 또 다른 역인가요?
지방인, 성 소수자, 청년 등 사회의 소수자의 삶에 꾸준히 눈을 맞춰 온 근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청년, 서울, 주거, 관계, 성장이라는 동시대적 화두를 따뜻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풀어냈다. 이 작품이 전하는 감정의 밀도는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 더욱 깊어진다. 말보다 침묵이 많은 장면, 대사 너머로 퍼지는 여백, 눈동자 하나에 담긴 주저함 같은 것들은 활자만으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감각이다.
작가는 컷과 컷 사이, 장면과 장면 사이의 호흡을 정교하게 조율하며, 독자로 하여금 시영의 하루하루를 ‘읽는’ 것이 아니라 ‘살아보게’ 만든다. 서울의 색채는 시영의 내면과 서로 맞물려 변화하고, 독자는 어느새 그 변화의 결을 따라 걷게 된다. 진로, 사랑, 가족, 경제적 현실이 얽힌 혼란 속에서도 작품은 조용히, 그러나 다정하게 말한다. “집이란, 살아가며 하나하나 찾아가는 마음의 장소”라고. 작가는 지금도 어딘가를 향하고 있을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집’은 어디냐고. 그리고 조용히 덧붙인다.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삶의 다음 역에 도착하게 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