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숙의 소설은 존재의 모서리와 가장자리에 웅크린 마음들을 주목한다. 모호하고 수상한, 그래서 자칫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받기 쉬운 감정의 옹이들을 찾아내 그 응달진 세계를 자신의 문학 공간으로 점유한다. 그렇게 김동숙의 이야기들은 일렁이다 흘러가고, 스며들어 물들이는 마음의 행로를 따라 고요하게 만개한다.
두 번째 소설집 『고요의 코끼리』에 실린 일곱 개의 이야기에도 환대, 적의, 모욕, 수치심, 슬픔, 상실감, 불안, 공포, 고독과 같은 친숙한 감정들이 관계의 변화와 이행을 따라 매 순간 낯선 표정을 지으며 위태롭게 출렁거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삶의 매 국면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예리하고 심원하게 묘파해내는 김동숙의 단단함과 정갈함은 여전하다.
김동숙 소설의 변칙적이고 다면적인 감정 작용을 ‘정동(Affect)’의 관점에서 포착해보고 싶어진 것은 순전히 이런 이유에서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감정이 단일하고 통합된 정서를 일컫는 반면, 감정의 역동성, 수행성, 관계성에 정초한 스피노자-들뢰즈적 개념으로서의 정동은 하나의 감정 안에 존재하는 상이한 정서들의 집합이자 외부의 자극을 감지해 촉발되는 정서적 반응 상태를 의미한다. 나아가 이것은 한 개체의 심리적 범주를 넘어 주체와 대상 혹은 이를 둘러싼 모든 요소들, 즉 이질적인 것과의 마주침에 호응해 변화되는 ‘감응’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김동숙은 존재의 마주침이 야기하는 감정 작용과 이들의 불협화음을 정동의 형식으로 조직해내는 데 능숙하다. 작가의 이런 특기가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는 『고요의 코끼리』에서 감정은 하나의 실체로 고정된 명사로 수렴되지 않는다. 감정은 생성·변형·유동하는 동사로, 타자와 관계 맺게 하고 다른 차원의 사유로 옮겨가게 하는 정동적 전회를 통해 역동적이고도 실제적인 힘으로 수행된다. -임정연(문학평론가, 안양대 교수) 해설 중에서
김동숙 작가는 두 번째 소설집 『고요한 코끼리』에서 반듯하고 치밀한 문장으로 환대와 적의, 상실감, 고독 등 삶의 한 국면에서 마주하는 감정들을 예리하고 세밀하게 그려낸다. 세상의 고요함을 진동시키는 역동적인 이야기들이 이 소설집에 펼쳐진다.
이 소설집에서는 취약하고 고립된 존재들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표제작인 「고요한 코끼리」는 동명의 두 사람이 등장한다. 텅 빈 통장 잔고 앞에서 살길이 막막한 ‘유희’는 새 직장을 찾는 동안 빌라 아래층 여자를 대신하여 뇌병변 장애 2급의 32세 남성인 동명의 ‘유희’ 씨를 돌보는 일을 맡는다. 남은 삶을 코끼리와 지내고 싶다며 낡은 다마스 한 대만 남기고 떠난 아버지, 폭설이 내린 어느 날 사라진 유희 씨와 길고양이 등 일련의 사건들로 유희는 자신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고양이가 유희 씨가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깨닫게 된다. 한편 비릿한 ‘짠바람’이 부는 항구를 배경으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을 그린 「짠바람이 불고 있다」, 수학여행을 떠났던 학생들이 침몰된 배에서 결국 돌아오지 못한 딸과 ‘보상’을 운운하는 잔인한 눈길들을 그린 「노란색 삼선 슬리퍼」 등이 눈길을 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긴 터널 앞’에 서 있는 이들에게 사려 깊게 반응하고, 그들의 내밀한 마음에 귀 기울이는 저자의 모습이 따뜻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