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이전에 ‘삶’을 다시 묻고, 인간 이전에 ‘존재’를 다시 느껴야 할 시간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질문을 던지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정작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사라져가고 있다. 무엇이 인간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세계는 왜 이토록 고장 났는가-그런 물음들은 정치나 기술, 경제의 언어로는 채 다 말해지지 않는다. 기후 위기와 생명의 파괴, 인공지능 기술의 확산과 인간 정체성의 불확실성, 고립된 자아와 해체된 공동체. 우리는 지금 지구적 차원에서 하나의 존재론적 문턱 앞에 서 있으며, 더 이상 이전의 문명 언어로는 이 시대를 해석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해 있다. 철학은 여기에 응답해야 했다. 그러나 오히려 철학은 점점 더 개념의 미궁 속으로 침잠해 버렸다. 삶을 해석하던 철학은, 이제 삶에서 멀어진 학술 체계의 일부가 되었다. 인간은 존재를 묻지 않게 되었고, 책은 더 이상 사유의 공간이 아니라 정보의 통로로 소비되고 있다.
인간과 문명의 사유방식 자체를 다시 짜려는 느리고 깊은 저항
현대 철학은 전문화, 파편화, 속도화의 흐름 속에서 점점 더 세분된 이론들의 전시장이 되었고, 출판 역시 독자의 ‘즉각적인 이해’와 ‘빠른 전환’을 위한 콘텐츠 생산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철학은 원래 그렇게 작고 가벼운 언어가 아니었고, 책은 그렇게 한 번 읽히고 끝나는 소비재가 아니었다. 『마고는 이렇게 말했다』는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역행한다. 이 책은 철학을 다시 존재의 물음으로 되돌리고, 책을 다시 우주의 리듬과 닮은 느린 호흡의 사유 공간으로 복원하려 한다. 그것은 철학이 다시 존재의 문턱을 넘어서려는 시도이자, ‘생명’이라는 가장 오래된 물음으로 되돌아가려는 문명사적 반성이다. 이 책이 다루는 사유는 단지 사고의 구조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식, 우리가 서로와 세계를 대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되묻는 시도이며, 바로 그 점에서 이 책은 단지 하나의 대안적인 철학서가 아니라, 삶의 형식과 존재의 언어를 재구성하는 새로운 사유의 실험장이다.
하나의 서사 속에 신, 세계, 인간, 의식을 재배치하며, 동서양 사유를 생명 아래 재통합
이 책은 총 3부 9장으로 구성된 철학적 서사 작품이다. 서양 철학의 개념 체계와 동양 사유의 생명적 직관, 그리고 신화적 상상력과 시적 언어를 통합하여, 존재와 세계, 인간과 의식, 신성과 생명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한다. 서사는 환안이라는 구도자의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기존 문명의 위기를 통과한 자로서, 새로운 진리를 향한 탐색을 시작하며, 태고의 지혜를 지닌 존재 ‘마고’와 조우하게 된다. 이 둘의 만남은 단순한 대화의 연속이 아니라, 문명과 존재, 시간과 우주, 죽음과 탄생에 대한 총체적 사유의 장으로 확장된다. 이 책의 구성은 외부 현실을 다루는 사회비평이나 철학적 이론 전개와는 달리, 이야기 안에서 사상과 존재론이 살아 움직이는 ‘사유의 서사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나 단테의 『신곡』과 같은 고전적 서사철학의 계보에 서 있으면서도, 그 형식은 한층 더 느리고 조용하며, 문장의 리듬과 감응을 통해 독자와의 내면적 접촉을 시도한다.
제1부, 신의 해체와 회복을 주제로, 인간과 신성의 관계를 다시 묻는 이야기
제1부 ‘신들의 황혼’은 전통적인 신 개념에 대한 해체와, 생명 그 자체로서의 신성을 재발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환안은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삶과 죽음, 진리와 고통에 대한 사색에 잠기며, 세계를 지탱하는 원리들이 무너졌음을 체감한다. 이때 나타나는 존재가 바로 ‘마고’이다. 마고는 신화를 넘어선 생명의 원형으로 등장하며, 환안에게 신이란 외부의 절대자가 아니라 존재의 내면에 흐르는 생명력 그 자체임을 가르친다. 마고는 우주의 창조를 단일신의 행위로 보는 서구적 관념과 달리, 삼위일체적이고 순환적인 동양적 우주론을 설명하며, 일즉삼·삼즉일의 ‘마고 코드’를 소개한다. 이 코드에 따르면, 존재는 천·지·인 셋으로 분화되지만 결국 하나이며, 모든 존재는 서로를 반영하고 구성하는 관계 속에 놓여 있다. 환안은 이 가르침을 통해 신이 죽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으로 돌아왔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제1부의 사유는 신의 해체와 복원을 동시에 수행하며, 종교적 절대성과 철학적 무신론을 넘어선 생명 기반 신성의 철학적 기초를 형성한다.
제2부, 생명을 중심에 둔 문명과 세계의 재구성,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
‘생명의 놀이’라는 이름이 붙은 제2부는 존재의 양상을 ‘놀이’라는 은유를 통해 해석한다. 여기서 생명은 목적과 결과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를 발생시키는 자율적 장(場)이다. 환안은 문명과 사회, 과학과 기술, 정치와 종교가 생명의 흐름을 멈추게 하고, 기능화시키고, 조작하려 했던 방식들을 돌아본다. 그는 과거의 체계가 모두 무너진 자리에 서서, ‘벌거벗은 생명’으로서 세계를 다시 바라본다. 생명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공통된 속성이며, 그에 따라 새롭게 요청되는 정치와 윤리, 문화는 ‘생명권’, ‘생명문화’, ‘생명정치’로 요약된다. 이 장에서는 존재가 단순히 자기 보존의 투쟁이 아니라 상호 돌봄의 연대임이 강조된다. 인간은 단독자로서가 아니라 서로에게 감응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명을 나누는 존재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제시되는 ‘마고성’, ‘강물’, ‘정원’, ‘구구가’ 등의 상징은, 생명이 단절이 아니라 순환이고, 개인이 아니라 전체임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생명은 신비한 힘이 아니라, 세계 그 자체를 조직하는 원리이자 현실 그 자체의 깊이로 제시된다.
제3부, 자아와 우주의 일치로 의식의 귀환 모색과 존재의 근원을 향한 회귀 서사
제3부 ‘영원으로의 회귀’는 철학적 귀결이자 영적인 종결에 해당한다. 환안은 자기 자신과의 거리, 문명과 우주의 상호작용, 존재의 탄생과 소멸을 통과하며, ‘무주(無住)의 덕’, ‘생존의 빚’, ‘카르마의 그물’과 같은 깊은 개념들을 경험하게 된다. 이 장에서 자아는 더 이상 고립된 주체가 아니라, 우주 전체의 한 진동으로서 재정의 된다. 마고는 최종적으로 환안에게 "존재여, 마침내!"라는 선언을 던지며, 존재는 외부에 있거나 추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현존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철학적 용어로 보자면, 이 책의 마지막은 ‘무위이화’, ‘자재성’, ‘영육쌍전’, ‘성속일여’와 같은 동아시아적 개념들이 살아 움직이며, 인간 존재를 삶과 죽음, 유한과 무한, 고통과 환희가 함께 깃든 전일적 존재로 끌어올린다. 독자는 이 장면에서 사유의 끝에 다다르지 않고, 존재의 현장에 되돌아오게 되는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이 책은 하나의 철학서이면서도, 문학적 서사이자 존재론적 선언
이 책은 철학서로 분류되지만, 형식과 내용, 문체 모두에서 기존 철학서의 범주를 넘어서 있다. 이야기 형식이 철학을 품고 있으며, 문장은 논증이 아니라 감응을 이끌어낸다. 이 책은 개념을 설명하지 않고 개념이 생겨나는 감각을 체험하게 하며, 존재를 분석하지 않고 존재의 울림을 듣게 만든다. 저자는 철학, 종교, 과학, 신화, 문학을 오가며 생명을 중심에 둔 전인적 사유를 구성하고 있으며, 개념 간 연결이나 비판적 논증이 아니라 세계와 세계 사이의 틈을 연결하고 새롭게 감응시키는 방식을 택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어떤 외부적 문제에 대해 해결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인식의 방향 자체를 전환시킴으로써 문제를 새롭게 ‘보는 방식’을 제안한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해답을 얻는다기보다, 질문을 구성하는 방식을 다시 배운다. 그 질문은 누가 대신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내면에서 생겨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독자에게 사유의 무게를 다시 지우는 동시에, 존재의 자유를 회복시키는 철학적 체험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이해가 아니라 머무름, 분석이 아니라 감응
이 책은 서사이지만 이야기책이 아니며, 철학서이지만 논증서도 아니다. 이 책을 읽는 가장 좋은 방식은, 빠르게 넘기지 않는 것이다. 서사는 전체적으로 느리게 전개되고, 문장은 겉으로는 간결하지만 그 내부에 다중적인 의미층을 숨기고 있어 독자가 내용을 서둘러 파악하려 할수록 본질에서 멀어지게 된다. 한 문장씩 천천히 머물고, 대화 속 말과 말 사이의 여백에서 무엇이 말해지지 않았는지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생명, 신성, 존재, 문명 같은 거대한 개념들이 조용한 어조로 반복해서 떠오르며 독자에게 새로운 호흡을 요청한다. 독자가 머무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많으며, 스스로를 느리게 만들 때에야 비로소 문장 너머의 리듬, 단어 사이의 여백, 의미의 무게가 체감된다. 이 책은 빠르게 정리되거나 요약될 수 없는 방식으로 독자 내면의 질문을 끌어올리고, 그 질문에 사유를 붙들도록 하는 일종의 사유 훈련의 장이자 감응의 책이 된다.
독자에게 묻지 않고 물음을 기다리는 책
이 책은 독자에게 무언가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 어떤 신념도 관념도 강하게 내세우지 않으며,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끌고 가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스스로 삶의 구조를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여백을 조용히 마련해 둔다. 그 여백 안에서 독자는 문장과 문장 사이, 사유와 사유 사이를 거닐며, 자신이 이미 던졌거나 던지지 못한 질문들을 되새기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사색의 권유’가 아니라, 사유의 양식을 바꾸는 요청이다. 독자는 스스로 책에 자신의 존재를 비추어 읽어야 하며, 외부로부터의 강제된 통찰 대신 자기 내면에서 자라나는 인식의 조짐을 관찰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저자와 마주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과 오래 머물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강한 철학이 아니라 깊은 철학이며, 강요 없는 철학, 그러나 그 어떤 철학보다도 강력한 내면의 작용을 일으키는 드문 철학이다.
이 책의 사유는 읽는 순간을 넘어, 이후의 존재 방식 전체에 흔적을 남긴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독자는 단지 한 권의 철학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구성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사유의 현장을 통과한 것이다. 그 통과는 일회적인 경험이 아니라, 이후의 삶 전반에 질문을 남기고, 응답을 기다리며, 사유의 태도를 바꾸어 놓는다. 이 책은 어떤 메시지를 기억하게 하기보다,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꾸도록 만든다. 즉, 독자에게 정보나 주장을 주입하지 않고, 어떻게 세계와 존재를 다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감각 자체를 변형시킨다. 『마고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런 점에서 하나의 책이기 이전에 하나의 존재적 사건이다. 그것은 ‘읽는 책’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사유’의 형태로 독자와 이어지게 될 것이다. 독자는 이 책을 덮은 뒤에도 그 내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문장 하나하나가 남긴 울림을 일상의 감각 속에서 되풀이해 감지하게 될 것이다.
하나의 문명론이자 새로운 신화, 시대의 상상력 자체를 다시 쓰는 서사시
이 책은 인간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다. 이 책은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내면의 문제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문명의 체계 자체를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생명의 위기, 관계의 파괴, 영혼의 상실이 일상화된 이 세계 안에서 이 책은 생명을 중심에 둔 새로운 세계 인식과 문명 구조를 상상하도록 요청한다. 그것은 ‘다른 문명’이 아니라 ‘다르게 인식된 세계’를 만들어내는 문명적 사유이다. 이 책이 구성하는 세계는 논리적 체계가 아니라 우주의 구조이며, 논증이 아니라 신화적 상상이다. 마고는 인간이 잃어버린 생명의 언어를 되살리는 신화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지금 여기’를 다시 말하게 하는 철학적 은유이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철학적 언어의 한계를 넘는 동시에, 새로운 신화가 어떻게 사유의 확장과 문명의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체감하게 된다.
과거의 사상과 미래의 철학 사이에서, 동서양을 가로지르며 사유의 지도를 다시 그린다
이 책은 동서양 사상의 통합이나 융합을 넘어서, 각기 다른 사유 체계가 어디에서 만나고 어디에서 균열되는지를 통과하며 사유의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이 책은 불교의 공사상과 도가의 무위이화, 동학의 지기일원론, 서구 형이상학의 존재 개념, 현대 과학의 양자론과 복잡계 이론에 이르기까지 고금의 철학적 사유들을 소환하고 대화시킨다. 그러나 단지 학문적 비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 구조 자체를 새롭게 정립하기 위한 사유적 시도이다. 이 책에서 인용되는 사상과 개념들은 외부 인용이 아니라 내면화된 구성요소로 통합되어 있으며, 모든 사유가 ‘생명’이라는 중심 감각에 수렴되면서도 각자의 뿌리를 드러낸다. 『마고는 이렇게 말했다』는 이러한 방식으로 과거 사유를 반추하고 미래 철학을 예비하는, 지금 시대에 드물게 목소리를 얻은 철학적 기획이자 인류 보편 지성에 대한 미세한 개입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