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나’는 대기업 회장의 딸로, 존재가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엄마의 명령에 태어날 때부터 저택에서만 살고 있다. ‘엄마’가 이끄는 대기업은 해마다 획기적인 신약을 발표하며 유수기업으로 우뚝 섰고, 최근에는 ‘영생 약물’을 개발하며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다. ‘엄마’는 한눈에 봐도 냉정하고, 감정이라는 게 눈곱만큼도 없어 보일만큼 차가웠으며, 남의 목숨 따위는 신약 개발의 실험체 정도로 생각하는 인물이다. ‘엄마’는 ‘나’에게 “너를 낳은 건 역겨워. 너는 역겨운 존재야”라는 말을 달고 살았으며, ‘엄마’의 삶보다는 회사를 이끄는 ‘대표’의 삶에만 몰두한다.
부모 대신 가정부와 가드들의 보호를 받고 살아가는 ‘나’는 언제나 ‘엄마’의 사랑에 목말랐다. 그 ‘사랑’이란 ‘엄마’의 정반대 모습이며, ‘나’가 꿈꾸는 이상적인 엄마이자 ‘엄마’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정함이었다. 다정한 말만 들을 수 있다면, 그 품에 한번 안겨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랑’이라 생각한 ‘나’는, 그렇게 ‘사랑’이라는 감정에 잘못된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그런 ‘나’가 생각하는 ‘사랑’을 마음껏 줄 수 있는 존재는 방 한쪽에 숨겨진 인형뿐이었고, ‘나’는 사람을 대하듯 ‘인형들’을 가지고 노는 데 재미를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사교성을 길러야 한다며 또래 아이들이 집으로 초대되었고, ‘나’는 자신에게 무조건적으로 친절하고 제 말을 명령처럼 따르는 아이들 가운데 ‘은희’를 발견한다. ‘은희’는 자기주장이 굳세고, ‘나’ 앞에서 주눅 들지 않았으며, 거침이 없고 당찬 아이였다. ‘은희’와 친해진 ‘나’는 아끼는 인형을 보여주며 “닮았어”라고 말했는데, ‘은희’는 “그것은 나를 닮은 것이지, 내가 아니야”라고 답한다. ‘은희’의 등장으로 ‘나’는 삶의 주체성에 대해 본능적으로 고민하게 되는데, 그러던 중 ‘은희’가 가드 한 명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리고 그들은 지옥이나 다름없는 이 저택을 탈출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결심이 실행되기도 전에, ‘은희’는 ‘엄마’의 명령에 어딘가로 끌려가고, 죽임을 당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은희’의 부모가 ‘엄마’에게 ‘은희’를 맡기는 대가로 치러야 했던 일을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는 ‘은희’를 돌볼 필요가 없어진 ‘엄마’는 ‘나’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은희’를 죽이고 화장까지 시켜 그의 존재 자체를 없애버린다. 이러한 ‘엄마’의 무자비한 행동이 결국 ‘나’의 속에 감춰진 사이코패스 본능을 건드리고 말았다.
‘은희’를 잃은 ‘나’는 엄마에 대한 증오심이 커져갔고, ‘나’는 인형놀이를 할 때처럼 저택의 사람들을 감정 없이 다루기 시작했다. ‘은희’의 뒤를 잇고자 다시 선별되어 온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바닥에 과자를 던져주고 먹으라고 시키는 등 악질적인 행위를 아무렇게나 일삼았으며, ‘엄마’의 눈에 들기 위해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의 소중한 존재가 된 ‘기재’가 또다시 어딘가로 끌려가고 신체실험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의 삶의 목표는 ‘엄마’를 죽이는 것이 되었다. 아주 간절하게, ‘엄마’의 모든 흔적이 사라지도록.
그렇게 ‘나’는 ‘엄마’를 죽였다. 그러나 달라진 점은 없었다. 모두가 ‘엄마’의 죽음에 당황하지 않았으며, 그 순간에도 오로지 회사를 위한 경영권과 신약 개발의 앞날만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엄마’가 되어 잠시간 회사를 이끌 것을 제안한다. ‘나’는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자신을 가둬두어야만 했던 어른들의 세계를 알고자 ‘엄마’처럼 꾸미고 ‘엄마’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가 되어봄으로써 ‘나’는 ‘엄마’의 행동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엄마’를 용서할 수 있던 건 아니었지만. ‘나’는 어렴풋하게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중얼거린다. “엄마, 나에게 조금 더 말해주지 그랬어. 그랬다면 죽이지는 않았을 텐데.” 과연, ‘나’는 또 다른 ‘엄마’가 되어갈까, 아니면 ‘엄마’의 탈을 벗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