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소설집 『명자꽃이 피었다』는 소설 창작론 시간에 교본으로 써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완미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정확하고 예술성 짙은 문장, 군더더기 없이 딱 떨어지는 구성, 인생과 세상에 대한 만만치 않은 주제의식 등이 소설의 규범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김지수의 소설집 『명자꽃이 피었다』는 그 본령을 잃은 채, 방황하는 오늘날의 한국 소설계에 묵직한 하나의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명자꽃이 피었다』의 그 다채롭고 웅숭깊은 서사가 발원하는 기본 정념은 불안과 무상(無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념은 때로 작가가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인식론적 토대로까지 연결되며, 여기서부터 『명자꽃이 피었다』의 다양한 서사는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중략)
김지수의 『명자꽃이 피었다』는 문학의 경계에 서 있는 작품집이다. 그것은 예술성의 완성을 통해 경계에 도달한 모습인 동시에 삶의 구경을 탐구하는 문학 너머의 모습이기도 하다. 숙명적으로 짊어진 존재의 절대법칙 앞에서 김지수의 인물들은 ‘길 없는 길’을 묵묵히, 그러나 치열하게 나선다. 그것은 이름만으로도 마음속 꽃동산을 가득 채우는 귀향의 여로이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두려운 발걸음이기도 하다. 때로 그것은 은하수 가득한 밤하늘과 가상현실 속 세계를 향한 도약으로도 나타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최종적으로 가닿은 지점은 바로 그들이 본래 서 있었던 지상의 작은 한 뼘 땅이다. 눈 덮인 땅 위에 지닌 것 없는 맨발로 굳게 서는 견인(堅忍)의 모습이야말로 김지수가 『명자꽃이 피었다』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존재의 근원적 무상에 맞서는 삶의 자세였던 것이다. -이경재(문학평론가, 숭실대학교 교수)
『명자꽃이 피었다』는 김지수 작가의 유려하고도 세밀한 문장, 빈틈없는 구성, 인생과 세상에 대한 짙은 사유가 돋보이는 소설집이다. 삶의 불안과 무상함을 안고 살아가는 소설 속 인물들은 길 없는 길을 묵묵히, 그리고 치열하게 걸어나간다. 그리하여 이 책에 펼쳐지는 것은 마음에 드리운 꽃그늘을 안고 세상 한복판에 굳건하게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표제작인 「명자꽃이 피었다」의 중심인물은 ‘명주’와 명주의 고모인 ‘명자’이다. 고향 사람들이 ‘명주’에게도 ‘명자’라고 부르듯 두 사람은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남편과 이혼한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명주는 섬유화증에 걸린 명자 고모를 돌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삶의 무상함을 느끼면서도 동창들이 나누는 따뜻한 정에 꽃 같은 희망을 발견한다. 한편 사업에 실패해 도망치듯 호주로 떠났던 주인공이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내를 찾기 위해 고향인 목포로 돌아온 이야기를 그린 「목포역에 내리다」도 영혼과 육신을 성장시킨 고향이 주는 치유의 힘과 그 따뜻한 속정을 그리고 있다. 고향은 결국 본래적인 내 정체성의 귀착지인 것이다. 가상현실, 즉 메타버스를 통해 현실의 고통을 위로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안녕! 안드로메다」 등의 작품도 주목된다.
생의 불안과 무상함으로부터 겪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이들에게 마음속 꽃동산을 가득 채우는 웅숭깊은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햇볕 같은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