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아버지 차례입니다.”
다윈 이후 진화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모성 연구의 대가 허디의 최신작
ㆍ《뉴스테이츠먼》 선정 2024년 ‘올해 최고의 책’
ㆍ〈텔레그래프〉 선정 2024년 ‘올 여름 꼭 읽어야 할 책’
ㆍ〈데일리익스프레스〉 선정 2024년 ‘올해 최고의 책’
ㆍ 2025년 ‘PEN/E.O. Wilson 과학저술상’ 후보작
ㆍ 2024년 PROSE Award 수상작
“생물학자들은 왜 그토록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소홀히 했을까?”〈텔레그래프〉는 허디의 책 서평을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사냥꾼 남성’이라는 빈약하고 편향된 패러다임에 갇혀 방치되다시피 한 진화생물학의 남성과 아버지 역할 논의에 던지는 도전적 메시지인 것이다. 집 밖으로 나가 사냥을 해서 고기와 음식을 제공하고 부양하는 사냥꾼 남성과 집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여성 사이에 일종의 ‘계약’이 이른바 진화론의 성 선택의 기본 가정이었다. 그렇다면 생물학자들이 소홀했던 아버지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 책은 바로 이런 질문에서 시작해서 오래 인류 진화사로의 여정을 떠난다. 다윈 이후 진화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손꼽히는 모성 연구의 대가 허디가 일생의 지적 여정을 정리하면서 주목한 주제는 바로 ‘남성의 양육 본능’이다.
잃어버린 남성의 ‘양육 본능’을 재발견하다.
허디는 인류가 진화하는 동안 남성의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진 ‘양육 본능’이 있음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과학적 연구결과와 함께 자신이 자라온 성장환경, 연구자로서의 삶, 이후 임신과 출산 등 자전적 이야기를 함께 서술한다. 학문과 삶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 이분법이 얼마나 강고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1950~70년대 백인 중산층의 삶에서, 또 다윈주의 생물학에서는 ‘육아는 어머니의 일’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과학을 공부하면서 또 성장 과정에서 어머니 중심의 육아가 과연 당연한 것인지 의심하게 만든 것은 없었다.”(20쪽) 거의 모든 포유류가 어미가 자식을 양육한다는 점에서, 또 여성은 체내 수정, 임신과 출산, 모유수유를 고스란히 짊어진 ‘포유류’라는 점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여성의 몫’이라는 진화생물학의 가정은 당연한 듯했다. 지은이도 지적하듯이 어미의 뇌와 몸은 이미 자식 양육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다면 남성은 어떨까? 영장류 수컷에서 보듯 아이를 돌보기보다는 살해하고 위협을 가하는 존재에 가까운 것일까?(연구에 따르면 수컷 중 5퍼센트만이 새끼를 돌본다고 한다.)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양육하는 남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1세기에 두드러진 남성 양육은 단순히 문화적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차원으로 깊숙하게 들어간다는 것을 허디는 양육하는 남성에게서 발견되는 (옥시토신과 프로락틴 등) 호르몬 변화, 아이를 돌볼 때의 양육 반응 등 신경과학적 내분비학적 연구결과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류학적 증거를 통해 보여준다. 간단히 말하면, 남성의 몸과 마음 안에는 이미 양육 본성이 내재해 있다는 이야기다. 지은이는 아이 양육은 어머니만의 몫이 아니며, 현대 인류의 기원인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에서 협력 양육은 필수적이었고, 수컷(남성)의 돌봄과 양육은 문화적 차원을 넘어서 신경학적 내분비학적으로 아주 오래전에 진화한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지위와 짝을 놓고 싸우고 경쟁하는 남성? 여성은 타고난 양육자?
다른 영장류와 달리 호모 사피엔스의 자식은 양육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며, 이유(離乳)가 빠르고, 뇌가 엄청나게 크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행동하는 등 상호 이해가 가능하다. 이 호모 사피엔스의 독특한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허디는 플라이스토세에 주목한다. 플라이스토세의 급격한 기후 변동은 호모속 유인원을 멸종 위기로 내몰았다. “우리 조상은 한때 번식 가능한 성체가 2만 명도 채 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초라한 호모 에렉투스 개체군에서 나왔다.”(225쪽) 혹독한 환경 변화로 위기에 처한 인류는 서로 협력하면서 공동 양육을 하고, 음식을 나누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알게 되고, 명성과 평판을 중시하는 남성이 그리고 사회적 처벌이 진화했으며, 남성과 여성이 함께 상호 의존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할 수 있었다. 허디에 따르면 짝과 지위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남성의 성 선택뿐만 아니라 사회적 선택이 중요한 자연선택의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기나긴 플라이스토세를 거치면서 인간 남성은 친척이 아닌 사람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집단 구성원을 지원하고 부양하기 시작했고, 아이는 부모뿐만 아니라 다양한 양육자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성장하게 되었다.”(360쪽)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과 진화는 ‘협력 양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다.
남성이 자녀에게 투자하는 것은 ‘부성 확실성’이 보장되었을 때만 가능하다?
다윈의 성 선택은 짝과 지위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남성과 자녀 양육에 들어가는 자원과 부양을 필요로 하는 여성의 계약에 의해 자연선택이 원리가 작동한다. 비용이 많이 드는 자식을 키우기 위해서 남성의 존재가 아이의 생존에 필수적인데, 여성이 ‘부성 확실성’을 보장함으로써 남성의 부양을 끌어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허디는 여성(암컷)이 생존과 생식 전략으로 부성 확실성을 혼란스럽게 하는 다양한 사례가 영장류에서도 또 인간 사회에서도 수없이 많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여성이 자손을 번식하고 양육하려는 본능은 제2, 제3의 아버지를 복수로 마련해두고 양육을 보장받으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연구결과와 함께 다양한 민족지적 증거(모계사회, 부성 공유 문화 등)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남성에게도 ‘친자 확실성’이 양육의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한다. 유전적 친자 여부와는 상관없이 양육하는 동성애자 커플이나 마을사람들 모두가 아이 돌봄을 하는 다양한 민족지적 사례를 통해 이를 뒷받침한다. 허디는 결국 유전적 친자 여부보다는 남성의 양육 본성 그리고 ‘아기와 얼마나 친밀하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느냐’가 양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정착해 농경을 하면서 인류의 거의 보편적 패턴으로 자리잡은 가부장적 문화와(20세기 중반에 나온 인류학적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70퍼센트에 달한다), 산업화 이후의 핵가족의 신화를 깨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가족은 유전적 관계로 맺어진 특정 유형뿐만 나이라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적 보살핌이다. 아이에게는 함께 살며 보살핌을 제공하기만 하면 모두 ‘가족’이다.”(361쪽)
지금은 ‘더 독한 남성성’이 아니라 남성의 ‘돌봄 본능’을 일깨워야 할 때이다.
오늘날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 임신과 피임, 수유 등 새로운 생식 기법의 발달, 여성의 생식 자율성, 여성 운동의 확산 등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문화는 이에 반발하는 가부장적 남성성, 보수주의, ‘더 독한 남성성’을 부르짖는 백래시를 불러일으켰다. 정치적 보수주의와 가부장적 이념과 극우적 세계관이 결합한다. 한편에서는 “아이들의 기저귀를 한 번도 갈아본 적 없고, 애를 키우는 것은 아내의 일이며, 나는 충분한 ‘돈을 대준다’고 으스대면서 … 우리는 인간이고 ‘남자는 가장 사나운 동물’로서, ‘끝없는 전투 속에서 승리하거나 패배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된다.(35쪽) 다시 한번 이분법적 성역할 관념이 득세하고 남성과 아기의 전례없는 만남이라고 지은이가 말하는 21세기적 상황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허디는 책에서 단순히 양육하는 남성의 생물학적 의미를 재발견하고 오늘날의 육아 풍경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남성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함께 전 지구적인 위기를 헤쳐 나갈 방법을 모색한다. 단서는 바로 남성의 양육 본능이며, 거기서 발견하는 ‘돌봄’의 가치이다.
추천사
“모성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허디만큼 부성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남성도 여성만큼 아기를 세심하게 잘 돌볼 수 있으며, 아이를 돌봄으로써 남성의 뇌는 어머니의 뇌와 비슷하게 변화한다. 허디는 가족 내에서 성 역할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가 결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프란스 드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