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키워줬는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네.” “어떻게 너 같은 자식을 낳았을까.”
‘세상에 나쁜 부모는 없다’라는 사회적 미신에 가려진
부모의 정서적 폭력은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보통 ‘가정’에 대한 이미지로 화목하고 따뜻한 느낌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단란한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어려서부터 부모 대신 애어른 노릇을 해야 했던 사람도 있다. 즉, 모든 부모가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마치 신앙과도 같은 부모·자식 관계에 대한 미신이 존재한다. 바로 “모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라는 말이다.
이런 연유로 부모에게 상처받은 일을 이야기하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거나 세상에 나쁜 부모는 없다는 등의 한결같은 반응이 돌아온다. 이는 마치 부모에게 상처받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이들에게는 감사할 줄 모른다는 꼬리표가 붙는다. 사람들은 상처받은 그들의 감정에 주목하기보다는 부모의 사랑은 타고나는 것이며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말을 믿으려 한다.
“나 아니었으면 넌 진즉에 길바닥에 나앉았어”,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비참한 거야.” “어떻게 너 같은 자식을 낳았을까. 운도 지지리 없지.” 사람들은 부모가 아이에게 이런 잔인한 말들을 하게 내버려두면서 부모의 말에 악의가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아이에게는 좋은 점만 기억하고 낳아준 부모에게 감사하라고 요구한다.
저자는 수많은 사람이 유년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와 당시 자녀로서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 고충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가정이 어떻게 사소하지만 우리 마음에 사무치는 흔적을 남기는지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가정과 사랑에 대해 품었던 의혹을 솔직하게 말함으로써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게 돕고, 더 이상 자책하지 않도록 안내한다.
자녀들은 왜 항상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치유되기도 전에 용서를 강요받을까?
가정에서 상처받은 사람이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자책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 나쁜 부모는 없다. 모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 1장에서는 사회가 부모와 자식에게 부여한 전통적 역할과 진실을 보지 못하게 우리 눈을 가리는 사회적 미신에 대해 분석한다. 더불어 “남들이 가정의 행복 여부를 판단하는 외재적인 기준이 되는 일들보다 부모의 심정, 진심으로 아이를 신경 쓰고 사랑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라고 말하면서 부모가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는지 아닌지를 아이가 판단하는 법과 진실한 사랑의 정의에 관해 논한다.
한편 가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정서적 폭력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자식을 남들과 비교하고 과도한 요구를 하는 부모, 그들에게 받은 상처를 말하지 못하거나 용기 내서 말하더라도 “부모도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부모를 용서하라고 강요받는 자녀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이런 정서적 폭력에 대한 상처를 말하면 “예전에 우리도 다 그렇게 자랐어”라며 부모 편을 드는 경우도 많은데, 이 말을 요즘 아이들에게 적용할 수 없는 이유를 과거와 현재의 양육 환경 차이를 들어 설명한다.
그 외에 모든 여성에게 족쇄처럼 느껴지는 “딸이 더 세심하고 정이 많아서 부모를 잘 챙긴다”라는 말에 대한 분석과 남아 선호 사상, 남녀 차별에 대한 논의도 빼놓지 않았다.
“상처 치유는 그 상처의 깊이를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2장에서는 부모는 가족이자 타인이고, 이상한 부모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가정에서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야 할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또한 부모로서도 자녀가 독립적이고 성숙하게 자라길 원한다면 내가 무조건 옳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면서, 부모는 이래야 하고 자녀는 저래야 한다는 역할 기대의 부작용에 관해 설명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양육에 대한 책임을 엄마가 떠안고, ‘엄마는 강하다’라는 말로 여성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인데, 저자는 이것이 자녀에 대한 정서적 폭력의 또 다른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엄마가 자기 인생을 살아야 자녀를 통해 보상받으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엄마가 자녀를 통제함으로써 보상받으려는 상황에 대해 “약자인 여성이 자신보다 더 약한 자녀를 통제하는 일종의 ‘동족상잔’이다”라고 꼬집는다.
부모가 아무리 사랑과 배치되는 행동을 해도 그건 표면적인 것일 뿐 그 안에는 사랑이 있다고 믿는 견해가 과연 진실일까? 아니면 그저 일방적인 바람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나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열심히 증명하는 일은 정확하게 그 사랑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일과 같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슬프지만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그들이 준 상처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연약함을 드러내도 약해빠졌다는 비난이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서 나는 그제야 긴장을 좀 풀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고 스스로 몰아세울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3장에서는 저자가 부모에게 상처받은 경험과 거기에서 빠져나오기까지 과정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또한 과거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들을 바탕으로 자녀와 건강하게 소통하고 사랑하는 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사회학적 관점에서 우리가 사는 사회의 환경과 문화를 분석하고, 친자 관계에 특수성을 부여하며 부모의 사랑을 신성시하고 부모는 절대 자식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사회적 미신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한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유일한 첫걸음은 이런 미신에서 벗어나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먼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버려야만 자기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공감을 얻기 위해 괜히 힘 빼지 않고 자신의 상처를 애도하고 치유하는 데 더 집중할 수 있다. 부디 이 책이 상처받은 자녀에게는 위로가 되고, 좋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