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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게 한 일

내가 네게 한 일

  • 이영아
  • |
  • 고래뱃속
  • |
  • 2025-04-21 출간
  • |
  • 48페이지
  • |
  • 190 X 247 X 4mm
  • |
  • ISBN 9791193138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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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엄마 아빠는 가을이가 우울증에 걸려 죽은 줄 안다. 아니다. 가을인 스스로 죽었다. 아니 내가 죽였다._본문 20쪽

내 앞의 대상이
무분별한 대상화가 될 때
초등학생 지만이는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 최가을에게 괴롭힘을 당합니다. 그 앞에서는 차마 제대로 맞설 용기를 내지 못했던 지만이는 스스로 그 분함을 못 이겨 집에 있는 두 살짜리 강아지, 백두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지만이는 백두에게 "가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제 속이 상했을 때마다 발로 마구 차고 괴롭히며 답답했던 속이 시원해지는 걸 느낍니다. 이때의 지만이에게 백두는, 내가 원하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 내가 하는 대로 다 받아 줘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나의 감정이 내가 아닌 또 다른 생명을 얼마든지 괴롭히거나 마음대로 대할 수 있는 핑계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아홉 살 지만이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알지 못한 채로, 자신을 괴롭혔던 "최가을"의 행동을 거울처럼 반영한 지만이의 행동은 결국 한 생명의 불을 꺼뜨리고 지만이의 마음속에도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내가 두들겨 패도 가을이는 아무렇지도 않아야 하는 게 아닌가? 왜? 개니까. 나는 주인이고._본문 25쪽

그림자처럼 비치는 과거와
과거를 따라가지 않는 내일
그 흔적은 지만이의 속에서뿐 아니라 바깥에서도 하나의 그림자 같은 형체, 하나의 실체가 되어 지만이의 눈앞에 등장합니다. 바로 거짓말처럼 가을이와 똑 닮은 강아지, "똘이"입니다. 똘이는 얼마 전 사고로 불이 나 홀딱 타 버려 폐허가 된 집에 홀로 남겨진 강아지입니다. 생김새부터 하는 행동까지, 이상하리만치 가을이와 닮은 그 강아지를, 지만이는 외면하지 못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지만이의 행동은 그 전과는 다른 궤적으로 나아갑니다. 화재로 인해 심한 상처를 입고도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남겨진 똘이가 동네 아이들에게 괴롭힘까지 당하자, 지만이는 남들이 굳이 나서지 않는 일까지 자처해 가며 똘이를 보살피고 챙겨 줍니다. 버려진 개에게 왜 "그렇게까지" 하냐며 말리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지만이에게만큼은 그 동기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똥개가 어떻게 어려운 이웃이야? 어려운 이웃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아빠 귀찮게 하지 말고 신경 끄세요. 백두는 나 몰라라 했으면서.”
거드는 엄마가 미웠다.
“똥개 아니라니까!”_본문 27쪽

너의 눈동자가 보여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내가 가진 권력과 영향력으로, 또 다른 생명을 쉬이 무력화시키는 것이 불러올 내일은 당장의 감정적 해소가 불러일으키는 환상처럼 달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내가 마주하게 될 것은 씁쓸함을 넘어 고통스럽기까지 한 상처와 안팎에서 나를 떠나지 않고 마주 바라볼 누군가의 눈동자라는 것을 지만이는 이른 나이에 가을이를 통해 깨우쳤습니다. 언제 어딜 가더라도 지만이를 따라다니는 가을이의 두 눈을 불가항력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지만이가 선택한 내일의 모양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맞습니다. 이제 지만이는 자신이 가진 힘을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분별없이 휘두르기보다, 꺼져 가던 생명조차 다시 살려낼 만큼 강한 힘을 가진 "작은 선의"로 손을 내미는 쪽을 선택합니다. 바로 이 순간, 너에게서 나에게로, 나에게서 너에게로 이어졌던 폭력의 반영이 깨어집니다. 언뜻 보면 작은 변화일지 몰라도, 누구에게라도 손쉽게 이어졌을 법한 사슬을 끊어 낸 지만이의 행동은 사실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했던 작은 혁명입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려 씩씩대며 노려보는데 늘 낑낑대고 머리를 바닥에 처박던 가을이가 다른 날과 달랐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거였다. 그동안 내가 했던 거로 봐서는 증오의 눈빛이어야 하는데······ 아니었다. 기분이 묘했다._본문 21쪽

내가 네게 한 일,
내가 내게 한 일
전작 『편의점』, 『그 형』, 『겨울나기』를 통해 언제나 우리의 가슴속에 지지 않는 흔적을 남겨 온 이영아 작가는, 사람들이 쉽게 외면해 버리는 그림자 위에 아이들의 목소리 단 한 줌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햇살을 비추어 왔습니다. 그 햇살은 정유진 작가의 손끝에서 다시금 가슴 한쪽이 저릿해질 만큼 선명한 온기를 지니고 피어나 우리에게 스며듭니다. 그 안에서 가만 눈을 감고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우리는 작지만 강렬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힘과 권력, 특히 폭력의 거울 같은 반영이 쉽게 이루어지기 쉬운 사회 구조 안에서도 우리의 두 손안에는 언제나 그 거울의 방향을 거꾸로 돌려 "다른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더 커다란 힘이 쥐어져 있다는 것을. 그 힘이 향하는 방향과 그 힘이 뿌리를 둔 근원은 나만의 안위가 아니라 "우리의 공존"에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 그와 같은 힘이 발휘되는 바로 그 순간, "내가 네게 한 일"이 곧 "내가 내게 한 일"과 다름이 없는 이 유연하리만치 견고한 세계 속의 연결은 "저주"가 아닌, 축복이자 희망이 된다는 것을.

아저씨가 울면서 하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미안하다, 똘이야! 미안하다, 똘이야!"
나는 아저씨처럼 울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가을이를 불렀다._본문 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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