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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값

꼴값

  • 손정란
  • |
  • GAP(갭)
  • |
  • 2025-04-09 출간
  • |
  • 98페이지
  • |
  • 130 X 195mm
  • |
  • ISBN 9791198415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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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영감(靈感)의 신비성과 그 합리적 해법
- 손정란 시인, 『꼴값』의 충동과 사유의 기표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모던포엠』 주간)



1. 삶의 구조와 빛나는 서정의 지평

일반적으로 누구나 태를 묻은 고향(故鄕)의 서정적 양감(量感)은 바로 모태이면서 미래를 꿈꾸는 자연의 처소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모성(母城)의 소중함을 환기(喚起)시켜주는 생명의 원형으로 식별된다. 또 한편 모두가 감응(感應)하는 고향 회귀의 상징성은, 증오나 이기심과는 별개의 공간, 세상의 고뇌와 갈등도 말끔 치유(治癒)시켜줄 처소이다. 까닭에 항도(港都)인 부산태생으로 첫 시집인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암호를 푼다』를 출간한 이후에 부산 크리스천문학회 회원과 노마드문학 동인으로 활동 중인 손정란 시인의 제 2시집 『꼴값』(모던포엠, 2025)의 평설에 있어 일단 ‘꼴값의 개념이 격에 맞지 않는 아니꼬운 행동을 속되게 일컫는 부정적인 의미임’은 식별할 점이다.
모처럼 화자가 시집의 자서(自序) 격(格)인 「시인의 말」에서 “내 거친 손가락 마디에서 묵은 시간이 떨어진다// 노래 멈춘 나의 사랑이여./ 사랑도 이별도 다양한 꼴값이다/ 교차로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린다//와 같이 그만의 개아적인 차별성은 못내 이채롭다. 그 같은 맥락에서 시집 목차의 편집은 기승전결식(起承轉結式)의 구도처리로 다소 단조로운 「1부(17편), 2부(17편), 3부(16편), 4부(15편)」과 「시집 평설」로 그 결(結) 고운 옷감은 날줄과 씨줄이 치밀한 언어의 그물망으로 직조(織造)된 일례다.
비록 그 자신이 ‘거품 같은 우리도 따라 노래했지 눈물 섞인 노래’인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막연한 넋두리의 운명애(運命愛)로 “푸른 날개로 춤을 추었지/더 높은 꽃밭을 꿈꾸며//노란 가발에 빨간 안경 쓴 광대/몸빼 바지 사이로 색기가 흘러넘쳤지/‘아모르 파티’//니체가 죽었지(영애, 노래하다)”에서 새삼 확인되듯 맞물린 ‘어린 낙타가 달린다(낙타 노래)의 시편과도 끝내 동일시되는 시적 감응과 상상력의 변주(變奏)로 더없이 이채로운 분위기(情調)다.
특히 “낡은 옷 벗어던지고 봄빛 갈아입은 나는/돌계단 민들레 앞에서 걸음이 흔들린다//‘민들레야, 또 다른 시작인 너에게/난 심장이 꽂혔어’(봄날은 창밖에)”도 그렇거니와 또 수사적 기교(craft)로 서술어의 종결어미 ‘-지요’를 반복활용하여 ‘왜 나입니까 파도 앞에서 울었지요’라는 해법을 푸른 식물성 언어로 지상에 갈 앉은 음조(音調)의 “눈물 끝은 어디입니까/꺾인 날개 추스르지 못한 채/눈보라 어둠 속 흐느낌 그칠 날은//혼자선 일어설 수 있는/힘이 없기에 두 손을 모았지요/바람에 기대어 날 수 있는 날개를 달라고(쑥부쟁이 기도)”의 일면은 못내 비장감이 묻어난 심사(心事)다.
또 한편 상이하게도 그 자신은 ‘하늘엔 별, 지상엔 꽃, 그리고 마음엔 시(詩)‘라는 시적 형상화를 일관되게 지켜내기에, ‘눈 깊숙이 박힌 독화살 잠재우려 큐피드 화살을 뽑는’ 심적 정황에서 일체의 시선은 ‘별빛인 솔로몬이 사랑한 연인 그 술람미’처럼 ‘언약적 사랑의 시편’은 “호기심으로 다가간 설렘은/흔들리는 바람꽃이었지/가슴에 핀 야생화 날려 보내고/마음은 이미 고요한 숲이다//게달의 장막 벗고 뛰쳐나온 술람미*/층계를 오르내리기도 하고/오르간 건반을 두드려 본다(아가雅歌)”의 매혹이 신비한 영성(靈性)의 맞물림에 창조주의 눈부신 언약이며 경건한 기탄잘리(Gitanjali)다.
까닭에 가끔 시적 변형을 위해 ’낡은 둥지 벗은 새로운 출발 어스름 하늘에 한줄기 유성이 지나가는‘ 시간대에서 도치법을 기교적 수사로 적용한 “떠날 때 뒷모습은 보이지 않는 거래/허접한 말 접어두고/웃음 짓고 떠나는 거래//여린 심장에 홍수 내고 간 소나기/우듬지에 새겨진 상처 따윈 없어/푸서리 없는 꽃다지 길 찾아 떠나가는 거야(별리)”의 보기처럼 분망한 삶의 일상에서 ’더불어 함께(inter-being)‘라는 공감대를 불러 모으기 위해 ‘어라 웬 수선화, 불꽃 보러 가자’라는 청유형 어미를 자극한 뒤 “어둔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꽃무릇 군무/흘러내리며 손을 뻗치네요/여기저기 터지는 웃음꽃//함께한 불꽃축제 시간여행은/신께서 허락하신/당신과 나의 오로라입니다(시간여행)”라는 ‘불꽃축제’ 뒤 못내 황홀경(怳惚境)의 극광(Aurora)이다.


2. 갈등 해소(解消)와 직물 세계의 현상

모름지기 “태초에 빛이 있었느니라.”라는 성서(聖書)의 말씀(logos)처럼 우주를 창조하신 절대자는 맨 먼저 진리의 표징인 빛을 허락하였듯 ‘생명의 언어가 존재의 집’인 탓에 정신작업의 종사자는 자기의 족적(足跡)을 남기는 존재이다. 까닭에 “아님, 나처럼 바람에 취해 혼자 춤추거나(흔들리는 꽃)”의 일면처럼 절대고독도 종종 절감될 것이나 ‘어미 잃은 낙타 긴 울음소리, 어딘가에 버려지는 나’일지라도 “​사막에서 동행하던 낙타 몰이꾼이 사라졌다/얼굴이 시리도록 기다려보지만/바람에 실려가 그 어딘가에 숨었을까/모래 속 고요가 두렵지 않은가//사막의 장미로 굳어 기다려서는 안 될 꿈이다(사막의 장미)”라는 기다림의 그 허망함도 호흡을 가다듬고 묵언의 응시(凝視)로 가늠할 일이다.
그렇다. 소소한 삶의 일상에서도 주어진 운명이라 때로는 머뭇거릴 수 없기에 ‘내게 안겨진 빈자리에 아픈 이름이 남았다’라는 깊은 자괴감(自愧感)은 “‘이혼’을 너에게 내밀었을 때/너의 창백한 얼굴은 신음소리를 냈고/어지러운 물결이 출렁이며/검은 잎이 시간을 삼켰지(울타리를 벗다)”에서의 격정(激情)과 울분 또 순리 거역하지 않는 자연에 맡기면 ‘새들이 울며 날아간 서쪽은 구만리라네’라는 스스럼없는 회감(懷感)에 “오는 나뭇잎이 찬란해서 울지요//늙은 벚나무님,/나 같은 매미들 울음 품어주고/목마른 날갯짓 간직하느라 힘드셨죠(울음이 가는 곳)”라는 위안감이 감사하게 주어진다.
또 하나같이 분망한 삶의 일상에서 우연이 지나치는 직물 대상을 통해 ‘여심을 훔치던 그는 아니겠지, 아내 손길 벗어난 남자가 명품일 수 있을까?’라는 반문이 주어지는 시 심리의 정황에서 그 자신의 “파란 턱선과 풀 먹인 흰 상의가 눈이 부시다/그의 향기는 어떤 명품일까/머리끝에서 발끝까지/누군가의 손길이 깊이 닿은 듯/걸음걸이도 명품이다/카페 창가에 앉은 누군가 손을 흔든다(드라마 보다)”의 일면에서 솔직 담백함도 상이(相異)하거니와 ‘잃어버린 나를 찾으려 눈의 나라를 향해 가방을 꾸렸던’ 그날의 기억 떠올리며 ‘백석이 이루지 못한 사랑 그리고 널 향한 그리움에 노을 지도록 울었다’라는 설움 끝의 “아픈 기억 생채기 벗기고 새살이 차도록/먼 후일, 종착역에서 기다리는 날 위해/너와의 이별 없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나를 위한 여행)”라는 담백한 심사는 비장감이 묻어나 못내 다감하다.
각론하고 소소한 삶의 일상에서도 주어진 운명이라 때로는 머뭇거릴 수 없을지라도 간혹 ‘내게 안겨진 빈자리에 아픈 이름이 남았다’라는 깊은 자괴감(自愧感)에 “치마의 레이스를 뜯어 버리고/긴 속눈썹과 둥근 눈동자를 버리고/내 맘대로 살 거야 삐걱거려도//‘이혼’을 너에게 내밀었을 때/너의 창백한 얼굴은 신음소리를 냈고/어지러운 물결이 출렁이며/검은 잎이 시간을 삼켰지(울타리를 벗다)”에서의 격정(激情)과 울분도 또 순리 거역하지 않는 끝내 자연에 맡기면 ‘새들이 울며 날아간 서쪽은 구만리라네’라는 스스럼없는 회감(懷感)에 “처서 지나 바람도 여위어가니/솟구치는 울음은/오는 나뭇잎이 찬란해서 울지요(울음이 가는 곳)”라는 이처럼 놀랍게도 위안감이 주어질 것이다.
또 한편 최소한 엄숙한 생명 외경심과 당당한 존재감을 지닌 시인이라면,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는 삶의 현상에서도 푸른 식물성 언어나 위대한 맑은 영성(靈性)으로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정신작업의 종사자로서의 소임을 응당 수행할 일이다. 보편적으로 여성상징으로 식물성인 꽃은 그 자체로 심미와 관상의 대상이기에 그 이면(裏面)에는 생존과 종족의 보존에서 치열하고 숭고한 결정체인 꽃을 피워내야 한다. 바로 이것은 죽음과 삶의 엄숙한 교차이며 순환과 재생의 과정이기에 빛남의 형상인 꽃은 생명현상에 기인한 사유를 함축적으로 발현(發現)한 결정체의 맞물림이다.
그 같은 정황에서 비록 묵언수행(默言修行)은 아닐지라도 감성이 다정다감한 그 자신이 호흡을 가다듬고 여백의 틈새를 좁혀가며 ‘언어는 손가락 사이로 꽃이 되어 피어오르고 속내 풀어내는 손끝은 빛남’을 분별하는 “수화로 핀 나의 손짓은 꽃이다/온몸 불태우며 함께 우뚝 서기로 했지/빛을 찾은 베토벤의 의지로/꽃이 별이 되어 열매 맺는 그날까지//어둠을 견뎌야 비로소 꽃이 되지/수화는 밥줄이며 생명이라/버거운 어깨는 수차례 가출을 생각했지/엄마와 남동생은 청각 장애인(꽃 피우다)”이라는 사실 헤아리는 측은지심(惻隱之心)에 따뜻한 정감은 더없이 눈물겹다.
또 한편 사유의 존재인 인간에게 응당 ‘혼자 저무는 해거름의 실루엣(silhouette)’ 같은 아득한 그리움이 기억에 흔적으로 자리해 ‘메리와 콜린이 달리는’ 영화 같은 장면이 가끔은 연출될 것이기에 “달려오는 너의 소리를 듣고 싶어서/한쪽 귀에 보청기를 끼고 있어/가슴에 묻어둔 얼굴들, 떠올리는 네 모습//‘메기의 추억’/허밍 하던 노인의 눈시울이 젖는다/그래, 네가 있어 행복했지/지팡이 쥔 손 떨림(추억)”의 일면도 그렇거니와 못내 만남과 헤어짐에 잇닿은 인용한 시편에서 그 애틋함은 이렇게 클로즈업된다.

만나지 못한 만남을 위해/간디가 차창 밖에 벗어던진 신발이/잃어버린 한 짝을 찾는다/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며//
기차가 떠난 자리에 민들레가 흔들린다//
헤어짐과 만남이 교차하는 역에서/표정 잃은 몸들이 스쳐 지나가도/서로 얼굴을 모르는 사람끼리/기차가 싣고 올, 발자국 소리 를 기다린다//
-〈간이역〉에서

위에 인용한 시편 〈간이역〉의 선명한 이미지의 형상화는 ‘만남→신발→기다림→흔들림(민들레)→교차(헤어짐과 만남)→발자국 소리→신발’의 연계 추이(推移)로 간이역(簡易驛)의 그 휴지부(休止符) 뒤의 엇갈림은 다소의 아쉬움이 주어질 것이다.
특히 다양한 생명체의 추이(推移)를 유추하지 않더라도, ‘변전이며 흐름인 생명의 원천인 ‘물(水)의 종교적 상징성’은 만물을 소생·성장시키는 ‘정화(淨化)와 회생을 뜻한다. 차제에 그 자신이 주의 깊게 바다(海)나 배(船)를 시적 질료로 삼아 ‘푸른 노을이 물든 파도 앞에서 시위대에 합류해 다친 교회 오빠 부축하며 함께 바닷길을 걷는’ 현재의 정황에서 “제 길로 떠난 무너진 파도의 사연/각자 앨범 속에 묻어둔다/또 다른 노을은 피어나고/오해 띤 시간 속 일들은 희미해진다(푸른 노을)”의 일면이나 그와는 대조적으로 ‘바다가 그리우면 떠나야 하는 게 그의 박제된 일상’인 연유로 “닻을 내린 묘박지/먼 길 돌아온 배는 종아리가 깨지고/파김치가 된 몸을 파도 위에 뉜다(기관사 심 씨)”에서 확증되는 삶의 일상은 이처럼 피로에 지친 무거운 삶의 중량감(重量感)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짧은 고요’라는 언어의 뉘앙스(nuance)도 이채롭지만, 시의 본말(本末)은 순수서정시인 까닭에 따듯한 감성의 손정란 시인이 모던(modern)한 시를 축(軸)으로 줄곧 윤무(輪舞)하면서 시의 본질을 이탈하지 않은 일체감은 다음의 시편에서 한층 더 가늠된다.

‘아빠 사랑해요’/흩어진 디아스포라 지구 땅끝까지/화상 속 아이들의 울부짖음/푸른 호수 빛 눈 감는다//
마지막은 싫어 나도 갈 테야/여자는 눈물 말리려 창밖을 본다/떠난 이의 눈빛이 하늘에 걸려 있다//
짧은 분침 긴 여운/바람도 쉬고, 우주가 고요하다//
-〈짧은 고요〉에서

모름지기 “시인이란, 재빠르고도 날개 달린 그리고 신성한 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이기”에 한 편의 시는 미국의 유대학자 루이스 긴즈버그(Louis Ginzberg)의 지적처럼 “심신의 최고 순간을 신비적인 계시에 의한 표출이기”에 가장 행복한 심성의 최고 열락(悅樂)의 순간이 기호화된 기록이어야 한다. 모처럼 그 자신의 시편 〈오늘은 유난히 새롭다〉의 일면처럼 한순간의 번개 같은 시적 영감의 포착에 연유한 시 심리는 밝고 명백하게 구명될 것이다. 그와 같이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귀가하는 시간대에 가끔 ‘그녀의 손은 따뜻하다 누굴 기다리고 있니?’라는 반문(反問)이 주어져도 “고양이 닮은 여자가 날 쳐다본다/우울한 그림자에 갇혀있는 노래에/눈물이 뒤따라와 울컥하고(집으로 가는 길)”에 때로는 ‘불 꺼진 집은 뒤돌아 보지 말아야 할 일’이나 익숙한 습관의 뒤돌아보는 일은 지나쳐온 삶의 여적(餘滴)에 아쉬움이 묻어나는 탓이리라.
까닭에 그 자신의 시집에 수록된 시편 중 유일하게 비교적 호흡이 긴 산문시 형식의 골격을 갖춘 ‘복지관 담을 넘어 장미들이 뒤집어졌지.’라는 역설적(逆說的)인 시 의미의 다양성이 가미된 “자식들이 ‘엄마 무식해’ 해서 C학교 석사, 우쭐대는 여자들에게 기죽기 싫어 D대학원 박사, 평생에 가방끈만 길어졌지 뭐야. 살려고 그랬던 거야. 공부가 오아시스였지. 그 가방끈도 명품이 아니고, 머리만 벗어졌어.(가방끈)”의 일면에서 그 정체성이 확증되듯 평상심의 회복에 의한 생명의 충만감에 합일된 따뜻한 감성의 발현에 그 존재감은 한층 더 다채로운 연유로, 종교적 신앙심에서 비롯된 놀라운 전위차(電位差) 또한 “개념과/창조 사이에/감정과/반응 사이에/그림자는 자리한다.”라는 엘리엇(T. S. Eliot)의 시적 표징이며, 또 하나의 신비스런 동반자로 확증된다. 이처럼 그 자신이 시 짓기 작업에 주저함 없이 일체감을 지니고 이 시대의 충직한 독자에게 지혜로운 삶의 잠언(箴言)을 일깨워 불안과 불행으로 가슴앓이하는 이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안겨줌은 한층 더 미덥다.


3. 삶의 구조(構造)와 엄숙한 생명감

모름지기 「삶의 구조(構造)와 엄숙한 생명감」에 있어 『豫言者』의 저자 칼릴 지브란(Khalil Gibran)은 “모든 시인은 예언자다.”라고 언급하였듯 분망한 삶의 시간대를 여유롭게 만보(漫步)하며 삶의 고뇌를 절감한 그 자신이 이처럼 일상의 감응(感應)을 알맞은 정신기후로 조성한 감동의 파상은 아득한 한 폭의 정신풍경화로 변형될 따름이다. 까닭에 진정한 예언자로서 시대적 소임을 담당한 시인이라면, 생명의 기표를 조탁하여 실상이 흐려 있는 영성을 밝혀내어야 할 점이다. 특히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인식되는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시편 〈불안에게〉는 비교적 깔끔한 연작시 형태로 구도 처리된 “하프가 오월의 소리를 낼 때 둥글어지는 불안을 다독입니다.”라는 천상의 층계 오르는 과정은 아니어도 ‘닳고 닳아 주름진 계단의 나이를 세면서 오르막 계단도 무릎관절 탓한다’라는 그 자신의 시적 변명처럼 “어느 해부터, 한 남자 항상 아코디언을 켠다/계단 중앙에 앉은 그는 아예 자리를 잡았다/추위에도 더위에도 우수에 잠긴 파리한 모습//비 오는 날에 그에게 말을 걸었지(사십 계단)”도 예외일 수 없다.
까닭에 금속성의 언어는 타자의 육체나 마음에 상처를 안겨줄 것이다. 〈나의 못〉 또한 ‘다롱이를 묻고, 울며 산에서 내려오자 몸에 박힌 못들이 하나씩 뽑혀 나갔다’라는 충격의 일면도 끝내 “뜻대로 안 되면 왜 날 낳았냐고/부모 가슴에 못을 친 적이 많았다/어무이 잃은 설움 겨운 두 오빠는/장대비 맞으며 어머니 관에 못을 치고/나는 엄마 데려간 예수를 믿느니, 내 주먹을 믿으라며/예수의 십자가에 대못을 쳤다(나의 못)”처럼 영혼의 닻줄 움켜잡는 삶의 교시(敎示)는 유의미할 것이나 그리스도 두 손바닥 대못의 관통함은 뚜렷하다. 또 한편 미국의 신평론 운동의 기수인 존 크로 랜섬(John Crowe Ransom)이 “시는 자연미의 표현이며, 상상이라는 훌륭한 기능이 시의 작인(作因)이다.”라는 이 같은 지적은 ‘내면의 성찰과 시적 응시’로 풀이해도 결단코 지나치지 아니하다.
비록 그 자신의 시적 교시(敎示)는 다소 냉소적이고도 불안한 비정한 시대의 늪을 건너며 살아가는 모두가 직면한 불행이라면, ‘나는 물결에 갇힌 잠수부’를 자인하고, 수사적 기법으로 활유법을 수용하며 ‘종소리 따라 새벽이 걸어오고 있음’을 인식하되 “살점들은 네 손톱으로 떨어져 나간다//‘자궁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어머니 기도, 십자가 종탑이 나를 찾는다/빛이 오는 길목에서 사슬은 풀리려나(어둠에 빠지다)”의 보기도 그렇거니와 시집 모처럼 말미의 시편에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거리에서 가방 가득 주워온 병과 폐지들 산을 이룬 쓰레기를 돈이라 여긴다’라는 착각과 모순의 몽환적인 삶을 어릿광대(pierrot)에 견주어 “뿌연 거울 속에 비치는 얼굴/파리하고 찌든 주름살투성이다/옥수수수염 같은 머리 매만지며/눈썹 짙고 입술 붉게 화장한 여자(피에로, 거울이 설레다)”라는 이미지의 형사는 해학적이라 시적 감흥을 자극할 따름이다. 따라서 비교적 시편에서 확증되듯 그 자신의 의중이나 따뜻한 감성이 철저하게 배제된 관찰자적 태도에 맞물린 손정란 시인의 시편의 특이성은, 객관적 상관물(相關物)을 통한 궁극적 관심의 표출로 타자 간 사유의 틈새를 좁혀낸 아득한 유년의 수채화(水彩畵)로 가끔은 삶의 일상화랄까? 시적 형상화는 끝내 생명의 역동성으로 빚어내는 결과물이다.
결론적으로 매개적 정신 능력의 범주(範疇)에 속한 시적 상상력의 확장은, 따뜻한 감성의 편린(片鱗)으로 신선한 감동을 회복시켜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따라서 절명(絶命)의 한순간도 그 자신은 한결같이 푸른 식물성 질료를 시적 대상으로 확정하고 그 축(軸)을 중심으로 일관되게 실험·도전하는 투명한 존재감이 요청된다. 까닭에 그 자신이 심상의 미적 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삶의 일상에서도 시의 자주·독자성을 끈질기게 담금질하며, 구도적(求道的)인 자세로 전통의 틀을 쌓고 허물며 아우르기를 반복하는 일념은 자못 극명하여 외경(畏敬)스럽다. 모쪼록 극단주의로 치닫는 삶의 일상에서도 독일의 실존철학자 니체(Nietzsche)가 “세상에서 그래도 우리를 견디게 하는 것은 예술(藝術)뿐이다.”라는 역설처럼 삶의 일상에서 동질성을 지닌 집념의 일체감과 지고지순한 시혼으로 ‘불멸의 초상(肖像)’을 켜켜이 지켜줄 엄숙한 역할을 새삼 기대한다.

목차

시인의 말 ● 3


제 1 부

영애, 노래하다 ● 10
낙타 노래 ● 11
노을을 마시고 싶어 ● 12
봄날은 창밖에 ● 13
쑥부쟁이 기도 ● 14
살살이 꽃이 되다 ● 15
시린 봄날 ● 16
여러 개의 아침 ● 17
아가雅歌 ● 18
미로 ● 19
안갯속 바다 ● 20
별리 ● 21
부메랑 ● 22
시간 여행 ● 23
장미 여사 ● 24
겨울 낙조 ● 25

제 2 부
흔들리는 꽃 ● 28
사막의 장미 ● 29
앵무가 앵무에게 ● 30
울타리를 벗다 ● 31
기다림 ● 32
배는 떠나고 ● 33
울음이 가는 곳 ● 34
연하 남자 ● 35
키싱구라미 ● 36
다시 너에게 ● 38
바닷가 설화 ● 39
나를 위한 여행 ● 40
전위예술을 지우다 ● 41
강물을 따라 ● 42
겨울 남자 ● 43
꽃 피우다 ● 44

제 3 부

첫눈 ● 46
로맨스그레이 ● 48
추억 ● 49
날개를 펴다 ● 50
위무하는 달 ● 52
간이역 ● 53
물줄기로 소문난 목욕탕 ● 54
푸른 노을 ● 55
태풍 지난 뒤 ● 56
샘바리 ● 57
빗금 치다 ● 58
기관사 심 씨 ● 59
짧은 고요 ● 62
부판 벌레 ● 63
외출 ● 64

제 4 부

번개, 저편 ● 66
사십 계단 ● 67
뻐꾸기 울다 ● 68
광안 대교 ● 69
나의 못 ● 70
집으로 가는 길 ● 71
어둠에 빠지다 ● 72
동굴에서 나오다 ● 74
오일장 ● 75
고샅길 어딘가에 ● 76
가방끈 ● 77
구멍 ● 78
바닥 ● 79
피에로, 거울이 설레다 ● 80
바다에 목마른 날 ● 82

l 시집평설
영감(靈感)의 신비성과 그 합리적 해법
- 손정란 시인, 『꼴값』의 충동과 사유의 기표 ● 84
엄창섭(가톨릭관동대학 명예교수, 월간 모던포엠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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