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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 시대를 연 ‘생명의 설계도’ DNA의 발견,
위대한 발견의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숨은 영웅들’
유전자의 본체인 DNA가 ‘자기 복제가 가능한 이중나선 구조’라는 획기적 발견은 20세기를 생명과학의 시대로 만들었다. 왓슨과 크릭은 이러한 사실을 최초로 발표함으로써 1962년 노벨의학생리학상을 수상했고, 지금까지도 생명과학의 시대를 연 영웅으로서 칭송받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의 업적을 기리기보다는, 그들의 ‘발표’ 이전에 있었던 수많은 ‘발견’의 역사를 추적한다.
애초에 ‘유전자의 본체는 DNA’라는 사실을 밝힌 것은 오즈월드 에이버리였다. 그는 예순을 넘긴 나이까지 직접 시험관을 흔들고 유리 피펫을 조작하며 몸소 실험하는 열정적인 과학자였다. 그의 성실함과 겸손함을 존경한 록펠러대학 사람들은 ‘에이버리에게 노벨상이 주어지지 않은 것은 과학 역사상 가장 부당한 사건이며, 왓슨과 크릭은 에이버리의 무등을 탄 버릇없는 손자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편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과학자가 있었으니, 바로 X선 연구자 로절린드 프랭클린이다. 그녀는 어떤 논리적 비약도 허용치 않고 직감을 배제한 채 관찰 결과에만 의지해 DNA의 모습을 성실하게 그려나갔다. 그 묵묵한 실험으로 DNA의 실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으나, 왓슨과 크릭은 부정한 방법으로 프랭클린의 DNA를 관찰 자료를 입수했고 여기에 자신의 연구를 접목해 ‘세기의 발견’으로 발표해버린다. 그녀는 자신의 발견을 도둑맞고 과학자로서의 영광을 잃어버렸으며, 안타깝게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이처럼 저자는 ‘칭송받지 못한’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최초로 논문을 발표해 ‘발견자의 영광’을 누린 이들만이 생명과학의 발전시킨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나아가 에이버리와 프랭클린이 보여준 명예와 보상에 연연하지 않는 성실함과 겸손함, 자신의 편견에 매몰되지 않는 과학적 엄격함이야말로 생명과학의 시대를 열었음을 시사한다. 그는 과학이 자연에 관한 객관적 진실을 밝히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묵묵히 진리를 탐구하는 인간적 노력의 산물임을 이야기한다. 그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의 답을 추적하며 ‘과학의 성과’는 물론 그 이면에 담긴 순수한 탐구심, 숭고한 노력, 좌절과 극복 등 ‘연구의 질감’을 세밀하게 관찰해야만 알 수 있는 인간적 아름다움을 포착해낸다.
“왜 ‘부품’이 망가져도 생명은 ‘고장나지’ 않는가?”
기계론적 생명관의 한계에서 드러나는 생명의 본질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으로 만들어진 생명의 정의, ”생명이란 자기 복제를 하는 시스템이다“는 생명과학 연구를 지배하는 명제가 된다. 생명체는 DNA 정보에 따라 만들어진 다양한 부품으로 구성된 기계처럼 여겨지고, 이 기계론적 생명관에 사로잡힌 20세기 생명과학은 DNA의 일부를 극소의 ‘외과 수술’로 자르고 붙이는 실험들로 생명의 원리를 밝히고자 한다.
번데기가 나비로 부화하는 신비에 감동하고 도마뱀 알을 채집하며 제2의 파브르를 꿈꾸던 저자도 생명과학의 최전선에서 ‘생명 기계’의 ‘부품’을 조작한다. 그는 췌장의 한 ‘부품’인 GP2 유전자의 기능을 알기 위해 DNA를 조작하여 GP2라는 부품이 결여된 ‘녹아웃 마우스’를 탄생시키는 데 매진한다. 텔레비전에서 소리를 내는 부품을 제거하면 소리가 나지 않듯, GP2 유전자를 제거하면 그에 상응하는 ‘고장’이 발생할 것이고, 이로써 GP2의 기능을 알 수 있다고 짐작한 것이다. 마침내 GP2 유전자가 결여된 녹아웃 마우스를 만들어냈을 때, 그는 생명의 신비를 한꺼풀 벗겨냈다는 설렘에 가득 찬다.
그러나 GP2 유전자가 없는 녹아웃 마우스는 건강하게 태어나 여느 쥐처럼 2년 남짓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GP2 유전자가 없음에도 녹아웃 마우스는 평생 아무런 문제를 겪지 않았다. 왜 ‘부품’을 제거했는데도 왜 생명은 ‘고장나지’ 않는가? 저자는 이 쓰디쓴 실패에 좌절하면서 직감한다. 바로 여기에 ‘생명의 본질’이 있음을. 즉 생명은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부품’들로 이루어진 기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무엇인 것이다.
“우리는 한 개의 유전자를 잃은 마우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낙담할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워해야 한다. 동적평형이 갖는 유연한 적응력과 자연스러운 복원력에 감탄해야 한다.”
_본문에서
“생명은 매 순간 자신을 파괴하면서 재생하는 하나의 흐름이다”
치밀하고 경이로운 생명, 그 아름답고 위태로운 ‘동적평형’의 세계
저자는 기계론적 생명관을 입증한 왓슨과 크릭에게서 벗어나, DNA 이중나선의 발견보다 10년 앞선 시기의 과학자 루돌프 쇤하이머를 조명한다. 쇤하이머는 생명은 ‘조립식 장난감처럼 부품으로 이루어진 분자 기계’가 아닌 매 순간 자신의 일부분을 버리고 또 재생하는 ‘다이내믹한 흐름’이라는 이론을 펼친다. 우리 몸에서 세포가 사멸하는 동시에 생성되고 있듯, 생명은 항상 새롭게 균형을 맞추고 있는 하나의 ‘흐름’인 것이다.
그러니 GP2 유전자가 없더라도, 어떤 부품이 누락되어도 생명이라는 흐름은 그 결함을 채우는 방향으로 유연하게 변화하고 전체의 조화를 유지해 ‘고장나지’ 않는다. 부품과 기능이 일대일로 대응하는 기계라는 고정적 실체와 달리, 생명은 다이너미즘을 갖는 하나의 흐름으로서 존재한다. 우리가 장난감과 기계를, 나아가 로봇과 인공지능을 생물로 감각하지 않는 것은 바로 생명이 지닌 다이너미즘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생명이란 동적평형상에 있는 흐름이다. 생명을 구성하는 단백질은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파괴되기 시작한다. 이는 생명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생명은 끊임없이 파괴되면서도 어떻게 원래의 평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그 답은 단백질의 형태가 몸소 보여주는 상보성에 있다. 생명은 내부의 얽히고설킨 형태의 상보성에 의해 지탱되며, 상보성으로 인해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동적인 평형 상태를 유지한다.
_본문에서
저자는 쇤하이머의 이론에 ‘시간’의 개념을 더한다. 생명은 탄생하는 그 시점부터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며 시간 축을 일방통행하는 존재다. 기계와 달리 생명은 ‘시간이라는 이름의 돌이킬 수 없는 종이접기’로 인해 늘 변화한다. 덕분에 부품 하나를 잃어버린다고 하여 기계처럼 고장나지 않는 유연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외부의 작은 개입에 의해서도 균형이 무너져 사멸할 수 있는 위태로운 존재인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생명관을 ‘동적평형’이라고 명명한다.
동적평형의 생명관은 기계론적 생명관이 예정하는 한계, 즉 생명은 그 설계도에 따른다는 오류를 반박하는 것을 넘어 개체의 고유성과 개별성을 증명한다. 모든 생명은 태어난 순간부터 각자의 ‘균형’을 유지하는 고유한 흐름이며, 자연은 무수한 생명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더 거대하고 유기적인 흐름이다. 그러니 이 기나긴 탐구 끝에 저자는, 또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연의 흐름 앞에 무릎 꿇는 것 외에, 그리고 생명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