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표현적 글쓰기」의 저자 제임스 W. 페니베이커는 “무언가 당신을 힘들게 한다면, 그때 글을 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가벼워졌는데 글이 솟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2023년 겨울, 제주도에서 한달살기를 했다. 카멜리아 힐에서 찬란한 무지개를 보았는데, 다음 날, 손주 동하가 S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동시를 쓰면서 하지 못한 언어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활개를 펴면서 봇물처럼 터지는 것이었다. 즉흥시들이었다. 내게 이런 감성이 있었던가? 이듬해(2025) 외손자 한결이도 형을 따라 합격했으니, 영광의 제곱은 이런 것인가.
윤동주는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쉽게 쓴 시」 부분)라고 했는데, 이게 부끄러운 일은 아닐까?
누구나 시심詩心은 있겠지만, 시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보아 넘기는 것에도 유의미한 그 무엇으로 전환 시키는 사람이다.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것에도 남몰래 가슴 아파하고 괴로워할 줄 아는 사람이다.
문학은 그런 체험의 산물이다. 그러나 문학은 현실이 아니다. 현실 너머의 현실이거나 비현실의 현실일 수 있다. 어쩌면 바다에 부서지는 눈부신 윤슬 같은 환상일 수도 있다.
백세 시대에 여든은 별것 아닐 수 있다. 동갑내기 트럼프 씨는 미국대통령도 하지 않는가. 헤밍웨이는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조심성이 많아질 뿐이다.’라고 했지만, 일본의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는 98세에 첫시집 「약해지지 마」를 출간하면서,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너도 약해지지 마’라고 했었지.
‘나이 이길 장사’는 없다. 세월은 무자비하게 나이만 던져놓고 내 몰라라 한다. 불안해지고, 다리 힘이 빠지고, 가슴 두근거림이 많아지고, 공허해지기도 한다. 절해고도絶海孤島에 갇힌다는 생각에 ‘섬’을 덧붙이고 보니, 나는 여든의 바다에 뜬 섬이었다.
백팔 편에 맞추니, ‘백팔번뇌’다. 번뇌 아닌 삶이 있는가.
5부로 구성했다.Ⅰ부 ‘휘어진 파도소리’와 Ⅱ부 ‘주름살처럼 검은’은 할아버지로 살면서 느낀 감회와 회한이다. Ⅲ부 ‘눈물에 말아먹은’은 전쟁과 가난을 겪어온 고통과 눈물, 어머니의 삶과 고향 이야기 등, Ⅳ부 ‘별이 뜬 것처럼’은 아내와 가족, 손주와 나누는 사랑과 행복 이야기 등, 그리고 Ⅴ부 ‘ᄌᆞ들지 맙시앙’은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체험하고 느낀 것들이다.
밉다가도 고운 것이 사랑이라는데 곱게 밉게 50여 년을 같이 살아왔다. 눈물겹도록 고맙다. 부모와 같이 산 시간보다 훨씬 많다. 후딱 지나간 바람 같은 세월을 돌아보며 아내의 존재가 내 삶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나라는 예의와 인정의 민족이었고, 노인의 삶과 지혜와 성찰을 존중했다. 이 시집이 할아버지를 이해하는 따뜻한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회가 점점 메말라간다. 공자는 정치는 덕德이라고 했는데, 날 선 비판과 싸움과 질시가 끊이질 않는다. 종교인은 많다는데 사랑과 자비도 이기주의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학이 동심과 사랑과 감사를 회복하는 동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을 되뇌어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날마다 즐거운 소풍날이었으면 좋겠다.
2025. 봄
박 일